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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정해은 씨, 지금 정해은 씨와 성수혁 씨의 부부 관계가 멀어졌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정해은 씨의 생일날에 성수혁 씨가 인기 여배우인 백유라 씨와 심야 데이트를 하는 모습이 포착됐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정해은은 표정도 눈에 띄게 굳어졌다. 기자들은 항상 날카로운 질문으로 상대의 심장을 찔렀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옆에 선 남자의 옆모습을 쳐다봤다. 남편 성수혁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짜증이 나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정해은 씨, 성수혁 씨와 결혼한 지 7년이 됐습니다. 3년 전 사고가 났을 때 성수혁 씨가 기억을 잃고 떠돌아다니다가 한 여자 어부와 2년간 함께 지냈고 심지어 그 집의 데릴사위가 될 뻔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사실입니까?” “성수혁 씨, 잠시 인터뷰 가능하신가요? 인기 배우 백유라 씨와는 어떤 관계십니까? 마음까지 터놓을 수 있는 그런 사이인가요?” 성수혁이 돌아서자 한 무리의 기자들이 바로 뒤쫓아갔다. 인파에 밀린 정해은은 따라가기는커녕 오히려 발목을 삐끗하고 말았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오른손을 내밀었다. “수혁 씨...” 손끝이 허공을 갈랐다. 손가락을 움츠리며 자리에 멍하니 서서 점점 멀어지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성수혁은 그제야 아내를 놓쳤다는 걸 깨달은 듯 다시 정해은에게 돌아가려 했다. 바로 그때 경쾌한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에 성수혁이 발걸음을 멈췄다. 정해은은 인파 속에서 이리저리 밀리며 남편에게 다가가려 애썼다. 발목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수혁 씨, 나...” 그런데 걷기 힘들다는 말을 채 하기도 전에 전화를 받은 성수혁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하더니 망설임 없이 자리를 떠나는 걸 봤다. 아주 급한 일이 생긴 듯했다.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정해은은 도무지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입을 벌렸지만 멀어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볼수록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졌고 가슴을 칼로 도려내듯 아팠다. 조금 전의 전화가 그 여자의 전화임이 틀림없었다. 기억을 되찾은 후 성수혁은 그 여자와 관련된 일이라면 항상 모든 걸 제쳐두고 그녀를 우선시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성씨 가문의 체면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성씨 가문의 안주인으로서 이대로 가버려서는 안 되었다. 내일 헤드라인에 어떤 기사가 실릴지 뻔했으니까. 정해은은 숨을 깊게 들이쉰 다음 다시 품위 있고 우아한 미소를 짓고는 차분한 표정으로 기자들을 마주했다. “백유라는 수혁 씨의 오랜 친구예요. 제 생일날에 유라가 몸이 좋지 않아 함께 병문안을 갔던 거예요.” 정해은의 목소리가 한없이 부드러웠다. 공격적인 기자들 앞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고 당황한 기색이라곤 없이 대응했다. 그녀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그날 저도 함께 있었지만 파파라치 카메라에 찍히지 않았을 뿐이에요. 그 외의 소문들은... 전부 루머입니다. 전 제 남편을 믿고 현명한 분이라면 그 소문을 믿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딱 여기까지만 말했다. “이제 가도 될까요?” 그녀의 태도는 시종일관 차분했고 목소리도 아주 나긋했으며 기자들에게 어떤 비난도 쏟아내지 않았다. 그 모습에 기자들은 잠깐 멈칫했다. 정해은의 기세가 강렬하거나 날카롭진 않았지만 오히려 부드러움이 그들을 압도했다. 어느새 기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그녀에게 길을 터주었다. 해 질 녘 하늘이 금빛으로 물들었고 부드러운 저녁 바람에 치맛자락이 흔들렸다. 그런데 하늘 저편에 먹구름이 짙게 드리운 걸 보니 그쪽은 비가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공기 중에 습한 기운이 감돌았다. 정해은은 시선을 늘어뜨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긴 속눈썹이 쓸쓸한 눈빛을 가렸다. 집으로 돌아와 외투를 벗자마자 쟁반을 들고 어색한 표정으로 서 있는 가정부 안정숙과 마주쳤다. “왜 그래요, 아주머니?” 안정숙은 왜 하필 지금 들어왔냐는 듯 당황하고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심지어 말도 잇지 못했다. “수혁 씨 들어왔어요?” 정해은이 위층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안정숙은 그녀와 눈을 마주하지 못한 채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은 이미 들어오셨어요. 저기 사모님... 잠깐 밖을 둘러보시는 게 어떨까요?” 안정숙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져 가까이 가지 않으면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였다. “집에 손님이 왔어요?” 눈치가 기가 막히게 빠른 정해은이었다. 안정숙의 시선이 자꾸 2층으로 향하는 걸 보고는 단번에 상황을 파악했다. 기자들이 언급한 인기 배우 백유라가 이 집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2층의 많은 게스트룸 중 하나는 늘 그녀를 위해 비어 있었다. 역시나 성수혁이 급히 떠난 건 백유라 때문이었다. “손님이 왔으면 나한테 알려야죠. 올라가 볼게요.” 정해은은 차분하게 말한 후 위층으로 올라갔다. “사모님...” 안정숙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큰일 났다, 이제. 평범한 손님이 아닌데. 대표님도 참. 다른 여자를 안방에 들이면 어떡해? 사모님한테 들키면 뭐라 설명하시려고.’ 정해은이 위층으로 올라와 보니 게스트룸이 굳게 닫혀있었다. 그런데 그녀와 성수혁의 안방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왜 게스트룸에 있지 않고 내 방에 있는 거지?’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했음에도 문을 열자마자 표정이 굳어졌다. 기자들이 말한 그 인기 배우 백유라가 그녀의 잠옷을 입고 안방의 큰 침대에 누워 있었던 것이었다. 벽에 걸린 결혼사진 속 정해은의 환한 미소가 지금 이 순간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어머, 해은 언니 왔어?” 백유라가 침대에 누운 채 배시시 웃으면서 그녀를 쳐다봤다. 일어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정해은이 뭐라 말하려던 그때 성수혁이 잔을 들고 나타났다. “왔어?” 성수혁이 차가운 얼굴로 덤덤하게 말했다. “유라가 우산을 안 가져와서 비를 맞았거든. 원래 몸이 약한 애라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데려왔어.” 그러고는 백유라에게 다가갔다. 순식간에 걱정 어린 말투로 바뀌었고 약간의 책망도 섞여 있었다. “감기 걸리면 안 되니까 빨리 약 먹어. 다 큰 애가 왜 이렇게 덜렁대? 다음부터는 좀 잘 챙기고 다녀.” 백유라가 장난스럽게 혀를 날름 내밀었다. “알았어. 오빠는 정말 잔소리가 많아.” 두 사람의 모습에 정해은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주먹을 꽉 쥔 채 성수혁을 뚫어지게 노려봤다. “유라는 어린애가 아니라 성인이에요. 비 오는 날 우산이 없으면 알아서 비를 피하면 되잖아요.” ‘다 큰 어른이 우산이 없다고 어쩔 줄을 몰라 한다는 게 말이 돼? 그리고 비를 몇 분 맞았다고 무슨 큰 병이라도 걸려?’ 성수혁이 고작 이런 일 때문에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정해은을 홀로 내버려 두고 떠났다는 생각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저렸다. 백유라의 입가에 걸렸던 미소가 굳어지더니 눈빛에 불안과 억울함이 가득해졌다. “미안해, 언니... 내가 신경 쓰인다면 지금 바로 갈게...” 그러고는 이불을 젖히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척했다. 초조해하는 데다가 눈가에 눈물까지 살짝 맺혀 무척이나 가여워 보였다. “그만해.” 성수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해은아, 다른 때는 이해심이 많더니 왜 갑자기 이렇게 매정해졌어?” 대놓고 그녀를 비난했고 눈빛도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 정해은이 이를 악물었다. “유라 지금 내 옷 입은 거 안 보여요? 집에 새 옷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아주머니한테 새 옷을 가져다 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성씨 가문이 재벌이라 저택에 게스트룸이 수도 없이 많았다. 게다가 백유라가 가끔 ‘손님’으로 오기 때문에 성수혁은 그녀가 입을 옷을 계절 별로 전부 신상으로 준비해줬다. 그런데도... 하필 부부의 안방에 머무르다니. 정해은이 몇 마디 반박했을 뿐인데 매정하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억지 부리지 마. 유라 아직 어려서 나한테는 그냥 여동생이야.” 성수혁의 표정이 어둡기 그지없었고 온몸에서 싸늘한 기운을 내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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