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하연은 한때 청담고에서 가장 부러움을 많이 받던 여자애였다.
단지 맑고 수수한 외모 때문도, 성적이 좋아서도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그녀의 뒤에 언제나 황성민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소꿉친구인 두 사람은 같은 대학에 가자고 굳게 약속했다. 장난으로 미래에 낳을 아이의 이름까지 지어두었을 만큼, 그들에게 ‘함께’가 아닌 미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찬란했던 세계는 단 하루 만에 무너져버렸다.
황성민의 아빠와 남하연의 엄마가 옷매무새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한 침대에 누워 있던 그날... 그 현장을 목격한 황성민의 엄마는 베란다 밖으로 몸을 던졌다.
붉은 피가 황성민의 깨끗한 교복 위로 점점이 튀었다.
하룻밤 사이 집안은 풍비박산 났고 두 사람의 관계 또한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되었다.천국에서 지옥으로 추락한 황성민의 눈동자에는 남하연을 향한 뼛속 깊은 증오만 남았다.
그는 복수하듯 남하연을 밀어냈다. 둘이 함께 찍었던 사진을 찢어버리고 소중히 쌓아온 약속들을 모조리 짓밟아 버린 뒤 차갑게 말했다.
“내 세상에서 영원히 꺼져 버려.”
남하연은 그가 바라는 대로 떠났다.
가장 완벽하고도 잔인한 방식으로 그의 세계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췄다.
...
그리고 십 년 뒤, 황성민은 보란 듯이 성공했다.
그는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견고한 삶을 일궈냈고 곁에는 집안과 외모를 모두 갖춘 약혼녀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모교의 옛 교실에서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빛바랜 종이 위에는 잊으려 애썼던 남하연의 글씨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편지의 마지막 문장은 이러했다.
[성민아, 난 목숨으로 죗값을 치렀어. 이제... 나를 용서해 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