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90화

한편, 주채희가 살던 집에는 늘 여나연 곁을 지키던 남자가 찾아왔다. “사모님, 아가씨께서 전해드리라고 하신 물건입니다.” 주채희는 비교적 정신이 맑은 상태였다. 그녀는 남자가 건넨 물건을 받아 들고 앞에 놓인 노트를 힐끗 바라보았다. 노트 속에는 여나연이 예전에 썼던 일기가 담겨 있었다. 주채희는 인정해야 했다. 그녀는 이 딸에게 단 한 번도 진심 어린 애정을 준 적이 없었다. 그녀는 늘 냉정했고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여자였다. 노트는 오래된 것이었다. 안에는 여나연의 어린 시절 기록이 빼곡히 남아 있었다. “4월 26일, 엄마가 내 손바닥을 때렸다. 아팠다. 하지만 엄마가 사탕을 줬다. 나는 금세 엄마를 용서하기로 했다.” “사람들은 모두 엄마가 나를 싫어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믿지 않는다.” “8월 6일, 내가 열이 났는데 엄마는 병원에 데려가 주지 않고 혼자 버티라고 했다. 어쩌면 정말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10월 7일, 나는 더 이상 누구의 사랑도 바라지 않을 거야. 나는 그 자리만 원해.” 일기는 여러 해에 걸쳐 쓰인 것이었다. 유년기에서 십 대까지 중간중간에는 몇 년씩 공백이 있었다. 주채희는 페이지를 넘기며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그때, 남자가 갑자기 품에서 칼을 꺼내 그녀의 가슴에 그대로 꽂았다. “사모님, 아가씨께서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예전에 아가씨께서 제게 당부하셨죠. 만약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사모님도 함께 보내드리라고요. 아가씨가 살아계실 때는 겨우 사모님을 지킬 수 있었지만 이제 형제들이 분명 사모님을 괴롭힐 겁니다. 차라리 모녀가 저세상에서 재회하는 게 낫다고 하셨습니다.” 주채희는 고개를 숙여 가슴에 꽂힌 칼을 바라보았다. 손을 들어 그 칼을 잡아 뽑자 피가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그녀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 듯 평온한 얼굴로 물었다. “여원훈의 명을 받고 나를 죽인 거야, 아니면 여나연의 부탁받고 한 일이야?” 사실 여원훈은 한때 남자에게 주채희를 처리하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