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49장

그 순간 공작 성녀가 이천후를 향해 봄꽃처럼 밝게 웃었다. 그 웃음은 화려하면서도 아름다웠고 옆에 있는 꽃들이 한순간에 빛을 잃고 하늘과 땅조차 놀랄 만큼 눈부셨다. 그 뒤로 사람들은 각자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작을 패는 이는 장작을 패고 물을 끓이는 이는 물을 올렸다. 호숫가엔 군데군데 모닥불이 피워졌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중 주연을 비롯한 몇몇 여자 무사가 현장에서 흥겨운 춤을 추자 탁재환과 몇몇 남자들은 눈을 반짝이며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휘파람까지 불었다. 황촌 전체가 웃음과 이야기로 가득 찼고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롭고 따스한 공기가 감돌았다. 이천후는 풀밭에 드러누워 이 모든 풍경을 바라보며 말할 수 없이 편안함을 느꼈다. 살벌하고 피비린내 가득한 천로 위에서 황촌은 그야말로 마음의 항구였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진짜 집 같은 존재였다. 밖에서 싸우다 지쳐 세상 모든 짐을 짊어진 채 돌아왔을 때 이곳 황촌의 풀밭에 누워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온갖 위장과 가식을 다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 순간엔 아무리 쌓였던 피로도 단숨에 날아가 버렸다. 하지만 모두가 웃고 떠드는 그 한가운데 단 한 사람 외따로 떨어져 앉은 이가 있었다. 그는 이 세상과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듯 조용히 홀로 있었는데 바로 김치형이었다. 그는 몇 시간이나 호숫물에 몸을 담근 끝에 겨우 물 밖으로 나왔고 지금 막 풀썩 주저앉은 참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말 그대로 처절하게 ‘손봐졌다’. 그것은 그에게 악몽이나 다름없는 일이었고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졌다. 솔직히 말해 김치형의 눈에 황촌 사람들은 악당, 도적, 무뢰한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원한 같은 건 품고 있지 않았다. 김치형은 그런 타입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싸우고 싶었을 뿐이었다. 비록 상대가 떼로 몰려들어 한 명에게 맞붙는 방식은 공정하다 할 수 없었지만 결국 그는 졌고 제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