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후는 깊이 숨을 들이켰다. 눈앞의 적세는 하늘을 뒤덮을 만큼 거대했고 그 힘은 도저히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조용히 사태의 흐름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서라차 마왕의 불안이 단숨에 현실이 되어버렸고 이천후의 생각이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찰나 외부에서는 급변하는 이변이 벌어졌다.
우우우웅...
시천마군은 입술을 달싹이며 고대 마언으로 된 주문을 중얼거렸고 동시에 두 손으로 극히 복잡한 고대 마인의 인계를 맺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온몸을 감싸고 타오르던 마염이 폭풍처럼 일어났으며 타오르던 마염은 어둠의 에너지로 변모하여 검은 홍수처럼 제단을 향해 폭풍처럼 쏟아져 들어갔다.
그러자 제단 꼭대기에 우뚝 서 있던 수십 장에 달하는 거대한 혈사마사 조각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육중한 비늘 위로 선혈빛이 무수히 번뜩이며 점화되었고 텅 빈 눈구멍 속에서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마염 두 줄기가 번개처럼 튀어나와 타올랐다. 마치 살아 숨 쉬는 듯 거대한 뱀의 몸통이 미세하게 꿈틀거렸고 그 움직임 하나에서 뿜어져 나온 점성의 마기는 실체를 가진 것처럼 짙고 무거웠다.
이제 이 마기는 단순히 퍼져나가는 혼란스러운 기운이 아니었다. 생명이라도 깃든 듯 포효하고 으르렁거리며 하늘과 땅을 꿰뚫는 선혈빛 폭풍으로 뒤바뀌었다.
순식간에 혈육이 흩날리는 진창의 하늘 위로 천지가 사라졌다. 피의 광풍은 하늘과 땅을 이어붙이듯 일어나더니 광폭하게 회전하며 만물을 찢어발겼고 그 안에서 망령들의 울부짖음과 악귀의 절규가 섞인 듯한 괴성이 들끓었다.
마기는 그 폭풍에 휩쓸려 들어가 혈룡으로 변했고 이 수많은 혈룡들이 백 리를 덮는 공간을 파괴의 회오리로 바꾸어놓았다. 이 공간은 더 이상 세상의 일부가 아니었다. 그곳은 오로지 혼돈과 파멸 그 두 가지로만 이루어진 이계의 심연이었다.
비록 이천후와 서라차는 신장 공간 안에 몸을 숨기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이 세상을 삼켜버릴 듯한 파괴의 위압은 고스란히 그들에게 전해졌다.
눈앞의 시야는 붉은 폭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