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8화

“내 몸도 이제는 맛이 갔나 봐.” 김설아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마치 낡아버린 기계처럼 고쳤다 망가지기를 반복하면서 이제는 완전히 수리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른 거지.” 이런 말을 듣자 유하연은 속상하기만 했다. 사실 김설아의 이런 모습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렇게 오래 버텨오셨는데 앞으로도 계속 버틸 수 있을 거예요. 어쩌면 어느 날 능력 있는 사람이 나타나 한 번에 고쳐줄지도 모르는 거잖아요.” 유하연이 입술을 꽉 다물며 말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해요. 나으면 고통도 사라질 테니까요.” “좋아. 네 말 들을게.” 김설아는 얼굴색이 창백하고 입술마저 자주색으로 변했지만 미소는 여전히 따뜻했다. 유하연은 항상 그녀에게서 박미자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유하연은 김설아 손에 든 약병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거 뭐예요?” “유명한 의사분이 나한테 준 비상약이야.” 김설아는 유하연에게 숨김없이 솔직하게 말했다. “발작할 때마다 이걸 먹으면 많이 나아지는 기분이야. 이 약이 없었더라면 생명에 위험이 있었을 수도 있었어. 그래서 어디를 가든 꼭 가지고 다녀.” 이 말에 유하연은 바로 미간을 찌푸리며 진지하게 말했다. “정말 조심해야겠어요.” 유하연은 그제야 신수아가 왜 그녀를 함부로 외출시키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신수아의 심정을 백번은 더 이해했고, 지금 당장이라도 김설아를 집에 보내거나 병원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저희 돌아가요.” 유하연이 김설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얼른 해결하고 돌아가요.” 사실 아까부터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지만 지금은 더욱더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유하연의 다급한 모습에 김설아는 약간 웃기긴 해도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악!” 이제 막 자리로 돌아왔는데 차를 들고 있던 웨이터와 부딪힌 김설아는 비명을 지르며 미간을 찌푸렸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너무 급하게 움직이다 보니 잘 보지 못했나 봐요. 죄송해요. 손님...” 스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