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8장

겨우 1초 전까지도 희망고문을 했었다.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솔직하게 말해줄 거라는 기대를 품으며. 되려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니 겨우 남아있던 정마저 싸그리 사라져 버린다. 한때 보기만 해도 심장 뛰었던 남자의 얼굴을 보며 고연화가 쌀쌀맞게 쏘아 붙였다. “내 눈 앞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거슬린다고! 꼴도 보기 싫다고!” 허태윤의 눈빛 역시 온기 하나 없이 얼음장처럼 서늘해졌다. “꼴도 보기 싫어? 고연화, 넌 내가 그렇게 싫은 거야?” “그래요! 싫어서 죽겠거든!” 고연화가 비꼬듯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저기요 선생님, 맨 처음에 강제로 키스한 건 내 잘못 맞아요. 그래도 난 더는 빚진 거 없고 책임도 다 졌는데 당신은? 관심도 없는 여자 갖고 노는게 재밌나? 난 이젠 그런 놀이라면 신물이 나는데!” 허태윤이 처음으로 날카롭다 못해 뾰족한 눈빛을 한 채 고연화를 노려봤다. “갖고 놀아? 넌 내가 줄곧 널 가지고 놀았다고 생각해? 그런 거야?” “아니에요? 흥미진진해 하는것 같던데! 이젠 싫증 났으니까 게임 끝이지!” 1초라도 그 얼굴을 보기가 싫었던 고연화가 남자의 팔을 뿌리치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허태윤은 이번에도 다시 한번 고연화를 확 끌어 당기더니 차갑게 손을 놓으며 소리 쳤다. “넌 아무데도 못 가! 꼴도 보기 싫으면 내가 나갈 테니까!”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남자가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귀청 째질 듯한 육중한 문소리와 함께...... 문이 부서질 정도의 엄청난 굉음에 깜짝 놀란 고연화가 얼굴을 찡그렸다. 외로움과 적막만이 깃든 허망한 눈빛으로 한 채. 보일러를 빵빵하게 틀었음에도 웬 일인지 몸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두 사람이 싸우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할머니가 문을 두드렸다. “연화야? 안에 있어 연화야?” 아무리 허태윤에겐 실망을 했더라도 무고한 주변인들에 그 화풀이를 할수 없었던 고연화는 마음을 추스린 채 겨우 억지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었다. “할머니, 늦었는데 아직도 안 주무셨어요?” 창백하면서도 핼쓱한 고연화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