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화

“그럼 소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심화영은 눈치껏 자리를 피해주었다. 백세민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빤히 보면서 전강훈에게 다가가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께서는 화영 낭자가 갑자기 딴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신지요? 혹 화영 낭자가 먼저 전하를 찾아온 겁니까?” 전강훈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확실히 백세민의 말대로 심화영은 딴 사람이라도 된 듯했다. 예전이었다면 오늘 그 소란에서 혼서를 찢어버리고 씩씩대며 화를 냈을 것이다. 그러면서 죽는 한이 있어도 그와 혼인하지 않겠다며 난리를 피웠을 테지만 방금은... 그는 그녀가 했던 말들을 떠올려 보았다. 거기에다 조금 전 본 수줍은 모습을 떠올리니 그의 가슴이 다시 요란하게 뛰었다. 정신이 든 그는 백세민을 보며 물었다. “자객이라니. 누군지는 알아냈느냐?” 백세민은 고개를 저었다. “소인이 전하를 뵈러 온 이유도 이 일 때문입니다. 이것은 제가 그 자객의 몸에서 뜯어낸 것입니다. 허나 소인은 이런 표식을 살면서 단 한번도 본 적 없습니다.” 말하면서 그는 품에서 나무패를 꺼내 전강훈에게 건넸다. 전강훈은 나무패를 빤히 보며 무언가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자객이 화영 낭자의 침소에 들어갔다니 화영 낭자의 침소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이지... 혼서는 둘째치고 절대 낭자에게 무슨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느니라. 그래, 오늘부터 네가 낭자를 따라다니면서 안전을 지켜주어라.” 그의 말을 들은 백세민은 눈을 크게 떴다. “허나 낭자가 동의할까요?” 전강훈은 말문이 막혔다. 예전의 심화영은 그와 백세민을 보기만 해도 혐오스러운 눈빛을 하면서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했다. 그랬으니 백세민이 그녀를 지켜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딴 사람이 된 것같은 오늘의 모습에 그는 다시 시도해 보고 싶었고 다칠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 “시도는 해 보아야 알지 않겠느냐.” 백세민은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았지만 자신이 모시는 전강훈의 표정과 그가 오랫동안 한 사람만 연모했다는 사실이 떠올라 결국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