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퇴원 후, 안서연은 집으로 돌아와 송민규와 관련된 모든 물건을 정리했다.
소년 시절 쓴 일기장과 사랑 편지, 몰래 모아둔 그의 사진, 그에게 주고 싶었던 선물, 그를 위해 준비했던 서프라이즈...
이것들은 원래 그와 함께하게 된다면, 자신의 짝사랑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려줄 생각으로 모아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그와 절대로 다시는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 물건들도 더는 쓸모가 없어졌다.
그것들을 모두 버리고 돌아서던 그녀는 마침 안나연을 데리고 돌아오는 송민규와 마주쳤다.
그는 쓰레기통을 흘끗 보더니 다시 그녀를 차갑게 쏘아보았다.
안나연도 이 물건들을 보더니 그의 팔을 감싸 안고 애교를 부리듯 웃으며 말했다.
“민규 오빠, 서연이가 이번에는 정말 정신차렸나 봐요. 앞으로 다시는 오빠를 귀찮게 하지 않을 거예요. 어쨌든 제 친동생인데 그렇게 차갑게만 대하지 말아요.”
송민규는 안서연을 담담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차가운 게 당연하지 않아? 좋은 척할 이유가 없잖아.”
안서연은 조용히 그의 말을 들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숨을 깊이 들이쉬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삼키고 방으로 돌아갔다.
다음날은 안나연의 생일 파티였다.
홀 안은 손님들로 북적였는데 다들 모여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송씨 가문 도련님이 약혼녀를 위해 연 생일 파티라 정말 성대하네요. 이 꽃들은 오늘 아침 솔라리스에서 공수해 온 거라던데요? 곧 사흘 밤낮으로 불꽃놀이도 한다고 해요. 안나연 씨의 목걸이는 수백억 원대라는데, 송씨 가문 도련님이 직접 소더비에서 낙찰받았다고 해요!”
“여신을 기쁘게 해주려고 송씨 가문 도련님이 정말 온갖 노력을 다했네요! 송씨 가문 도련님과 결혼하다니, 안나연 씨는 정말 복이 많네요. 안씨 가문도 덕분에 한 단계 도약하겠어요. 아쉽게도 집에는 안서연이라는 시한폭탄이 있대요. 날마다 형부를 탐내고 있다는데 얼마나 뻔뻔해요!”
“맞아요. 친자매인데 어째서 안서연은 안나연 씨에게 매번 지는 걸까요? 외모나 성격이야 좀 떨어진다 쳐도, 송씨 가문 도련님에게 집적대고 도덕 관념까지 뒤틀렸어요! 제가 만약 그런 집안 망신시키는 딸을 뒀다면 집에서 쫓아내고 싶을 지경인데, 안씨 가문 부부도 참 마음이 착하시네요.”
이런 험담을 들으면서도 안서연의 마음은 파도 하나 일지 않았다.
그녀는 투명인간처럼 구석에 앉아 누구의 주의도 끌고 싶지 않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안진우, 김혜원, 그리고 송민규는 안나연의 주위에 모여 별처럼 그녀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의 치맛자락을 정리해주고, 잔을 대신 받아주고, 생일 초에 불을 붙여주고, 웃으며 그녀를 위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그들의 화기애애한 장면을 보며 안서연은 과거 자신의 생일을 떠올렸다.
그때 안나연은 언제나 핑계를 대고 부모님을 데리고 나갔고, 그녀는 홀로 집에서 생일 초를 불며 축하해야 했다.
송민규와 함께했던 몇 년 동안, 그가 함께 소원을 빌고 케이크를 먹었다.
그가 준 선물을 받았을 때 그녀는 더는 외롭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잠시 가졌던 조금의 관심과 따뜻함마저 이제 완전히 빼앗겼다.
그녀는 더는 미련 두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북적거리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안나연은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고, 사람들은 차례로 선물을 보냈다.
그녀는 선물을 하나씩 풀었는데 명품 가방부터 온갖 정교한 보석들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선물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마지막 두 개의 선물은 안진우 부부와 송민규가 준비한 것이었는데 공개되자마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아내와 저는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나연이를 안진 그룹의 후계자로 결정했습니다. 안씨 가문의 모든 자산을 상속받게 될 것입니다!”
“제가 나연이에게 주는 선물은 송림 그룹 지분 50%, 그리고 송씨 가문의 대물림 보배인 결혼반지입니다. 할머니께서 항상 제게 말씀하셨어요. 이 반지를 낀 부부는 반드시 서로 의지하며 백년해로할 것이라고. 나연아, 넌 내 평생 유일하게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야. 나에게 와줘서 고마워.”
만인의 시선 속에서 송민규는 직접 안나연에게 반지를 끼워주고 그녀를 품에 안아 키스했다.
홀 전체가 순식간에 소용돌이치는 파도처럼 떠들썩했고, 사람들은 박수와 환호성을 보내며 축복했다.
안서연은 멀리서 지켜보며 억눌린 마음이 더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쥔 채 떠나고 싶었지만 안나연이 그녀를 불렀다.
“서연아, 네 선물은 어디 있어? 언제 줄 거야?”
순식간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안서연에게 쏠렸다.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가방에서 미리 준비해둔 선물을 꺼내 건넸다.
안나연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선물을 풀더니 비꼬는 말을 하려 했다.
그때 옆에 있던 송민규는 시선을 멈추고 안서연이 올린 손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네가 왜 이 팔찌를 가지고 있지?”
안서연은 그의 물음에 고개를 들더니 믿기지 않는 듯한 그의 눈빛과 마주치고는 무의식적으로 팔찌를 만졌다.
송민규가 눈이 멀었던 시절, 그녀는 그가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예쁘게 꾸미고 그를 찾아갔었다.
그때, 그녀는 종종 이 팔찌를 하고 갔었고, 그는 그녀의 손을 잡을 때마다 그것을 만지며 팔찌에 박힌 보석들이 무엇인지 물어보곤 했다.
그녀가 말을 하지 않자 송민규는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붙잡으며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말해! 이 팔찌가 왜 네 손에 있는 거야? 너 대체 누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