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자신이 살 수 있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안서연은 소독약 냄새를 맡으며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점차 정신을 차렸다.
의사가 그녀의 몸을 진찰하며 다행이라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열 시간 넘게 살리려고 애써서 겨우 환자분을 저승에서 데려왔어요. 다행히 깨어나셨네요.”
그 말을 듣자 안서연은 눈빛이 흔들리며 쉰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목숨을 구해줘서 감사합니다.”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녀를 바라보며 망설였다.
“그날 환자분을 병원에 데려온 사람들이 친부모님인가요?”
안서연은 입술을 깨물며 침묵에 잠겼다.
그녀의 표정을 본 의사는 더는 묻지 못하고 탄식하며 떠났다.
이틀 후, 그녀는 병원에 혼자 입원해 있었고, 여전히 아무도 병문안 오지 않았다.
퇴원하는 날이 되어서야 안진우와 김혜원이 찾아왔지만 그녀의 건강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주의를 주러 온 것이었다.
“내일이면 네 언니 결혼식이야. 너도 해외로 나가기로 약속했으니 내일 결혼식 전에 떠나렴.”
그들의 당연하다는 듯한 말투를 들으며 안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순종적으로 나오자 안진우와 김혜원의 얼굴색이 조금 나아졌다.
“네 언니의 행복을 위해 양보해야 해. 두 사람의 관계가 안정되고 아이가 생기면, 너를 다시 불러 함께할 거야. 돈은 네 계좌로 이미 보냈으니 외국에서 몸조심하거라.”
몇 마디 당부한 후 두 사람은 안나연을 돌보러 바쁘게 떠났다.
안서연은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머니에서 알비온행 항공권을 꺼내 갈기갈기 찢었다.
이후 그녀는 휴대폰으로 케언스행 항공권을 예약했다.
그들이 바라는 대로 모두를 성취할 것이다.
다만, 그들의 세상에서 떠나 그들이 영원히 찾지 못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병원을 나선 안서연은 의사를 찾아가 친자 관계 단절서를 작성했다.
그녀는 그 위에 진심으로 자신의 이름에 서명했고 그 단절서를 상자에 넣었다.
상자에는 옛날집에서 송민규와 함께 있을 때 몰래 녹음했던, 그가 그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녹음테이프도 함께 넣었다.
그녀는 이 녹음테이프를 가지고 그를 수없이 찾아갔지만 그는 단 1분도 시간을 내주지 않았고, 듣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이제 떠나기로 한 그녀는 이 모든 것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가 듣든 말든 그것은 그녀와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어차피 그녀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고, 다시는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그날 밤, 아래층은 결혼 준비로 시끄러웠고, 안서연은 잠을 잘 자지 못했다.
그녀는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고 짐가방을 트렁크에 실었다.
막 출발하려던 순간, 신랑 측 차량 행렬도 도착했다.
정장 차림에 위풍당당한 송민규를 보며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처음으로 그를 ‘형부’라고 불렀다.
그리고 마지막이기도 한 호칭이었다.
송민규도 멈칫하며 그녀의 뒤에 있는 차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너는 오늘 결혼식에 참석할 필요 없어. 집에 있어.”
안서연이 결혼식장에 나타나 결혼식을 방해할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그녀는 고개를 젓고 나서 정성스럽게 준비한 선물을 건네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결혼식에 참석하러 가는 게 아니에요. 두 분의 행복한 삶을 더는 방해하지 않을 거예요. 신혼을 축하드리며, 그럼 안녕히 계세요.”
말을 마치고 난 그녀는 차에 올라 문을 닫았다.
송민규는 시동이 걸리는 차를 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그녀를 불러 오늘 어디로 가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말이 채 나오기도 전에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안나연이 그를 불렀다.
“민규 오빠, 안아줘요.”
안서연은 백미러를 통해 송민규가 상자를 비서에게 던져주고 웃으며 안나연을 공주님처럼 안아 올리는 것을 보았다.
차는 천천히 별장 구역을 벗어났고, 그녀는 창문을 내려 휴대폰을 창밖으로 던졌다.
‘이제부터 과거의 안서연은 죽었어. 그리고 새로운 안서연은 새로운 미래를 갖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