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3화

고세연의 마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서기훈과 함께한 긴 시간 동안 그가 누구에게 부탁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송주아를 위해 그녀에게 고개까지 숙이고 있었다. 깨진 유리 조각을 삼킨 듯 숨을 들이켤 때마다 기관지가 베이는 것 같았다. 가슴속은 이미 피투성이였다. 고세연은 치밀어 오르는 고통을 억누르며 서기훈의 손을 강하게 뿌리쳤다. “나는 절대 헌혈해 줄 수 없어!” 서기훈은 떠났고 이후 2주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업계인 만큼 그가 어떤 움직임을 보였는지 소문은 자연스레 들려왔다. 송주아를 살리겠다고 서씨 가문의 권력을 총동원해 도시 전체에서 희귀 혈액형 보유자를 수소문했고 헌혈자에게는 거액의 사례금까지 내걸었다는 이야기였다. 어느 날 대기실에 도착하자 동료들의 웅성거림이 귀에 꽂혔다. “서기훈은 세연 언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우리가 완전히 착각했네. 둘 정말 잘 어울렸는데.” “기훈이가 좋아하는 사람 따로 있다고 했잖아. 고백할 계획까지 있다던데? 그 송주아라는 여자, 기훈이 첫사랑이래. 이제 기훈이랑 세연 언니 엮는 말 그만하자.” 악의 없는 수다였지만 그 말들은 곧장 날카로운 칼날처럼 고세연의 가슴을 깊숙이 찔러버렸다. 그녀의 마음은 이미 너덜너덜했다. 고세연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문을 활짝 열었다. 억지로 미소를 지었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밝아 보였다. “나랑 서기훈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몇 번을 말했어? 약혼도 곧 취소할 거야. 그러니까 더 이상 걔랑 엮지 마.” 몇몇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때 누군가가 갑자기 외쳤다. “저기 봐! 경기장 06번 차, 세연 언니 차 맞지? 근데 언니는 여기 있는데 누가 지금 몰고 있는 거야?” 고세연은 반사적으로 화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동공이 급격하게 조여들었다. 그 레이싱 카는 그녀의 보물이자 생명이었다. 스승님이 생전에 그녀와 함께 3개월 동안 개조해 만든 작품으로 성능도, 핸들링도, 작은 부품 하나까지 두 사람이 직접 조율했던 결정체였다. 스승님이 세상을 떠난 뒤로 고세연은 단 한 번도 누구에게 그 차를 건드리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팀의 모든 인원이 그것을 알고 있었고 그 금기를 넘는 일은 없었다. 고세연은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운전자가 누구인지 확인하려 했지만 눈꺼풀이 떨렸다. 가슴 깊은 곳에서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치밀어 올랐다. 늘 정확했던 그녀의 직감이 강하게 울리고 있었다.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고세연은 거의 뛰다시피 밖으로 달려 나갔다. 치솟는 분노를 간신히 누르며 멈추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트랙에 도착하는 순간, 굉음이 폭발했다. 시간이 순간 멈춘 듯했다. 그녀의 사랑하는 차가 벽에 정면으로 박히며 앞부분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고세연의 마음은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했다. 온몸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스승님과 함께 만든 유일한 유품인 레이싱 카가 산산조각이 났다. 압도적인 공포와 절망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직원들이 허둥지둥 달려가 운전자를 꺼내려 했지만 고세연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어릴 적 그녀의 집안은 늘 엄격했고 부모는 무심했다. 정략결혼으로 이어진 차가운 가정에서 고세연이 마음을 기대고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스승님뿐이었다. 스승님은 그녀를 구하려다 세상을 떠났고 그 은혜는 평생 갚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분이 남긴 단 하나의 유품, 그 차마저 지금 눈앞에서 사라졌다. 고세연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그때, 벼락처럼 충격이 밀려왔다.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은 송주아였다. 순간 온몸에서 분노가 폭발했다. 고세연은 분노에 휩싸여 맹렬히 그쪽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곧장 조수석 문이 열리더니 서기훈이 차에서 내렸다. 그 모습을 본 고세연의 몸은 완전히 굳어버렸다. 그는 그 차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고세연이 수없이 말했던 이야기고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서기훈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송주아를 먼저 챙기고 있었다. 고세연이 가까이 다가가자 산산이 부서진 레이싱 카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폐차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설령 수리를 한다 해도 이전의 성능을 되찾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차는 망가졌지만 두 사람은 멀쩡했다. 고세연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손을 올려 송주아의 뺨을 힘껏 후려쳤다.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며 송주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뺨을 감싸며 외쳤다. “지금 뭐하는 짓이에요?” 고세연의 눈은 타오르는 분노로 이글거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송주아를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었다. “네가 뭔데 내 차를 건드려? 주인 있는 물건 함부로 손대는 게 뭔지 몰라? 그건 도둑질이야, 송주아. 너 이렇게까지 못된 사람이었어?” 그러자 서기훈이 즉시 송주아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눈에는 순간적인 죄책감이 스쳤지만 그는 여전히 송주아를 보호하고 있었다. “주아가 몸이 회복된 지 얼마 안 됐어. 감각을 되찾고 싶다고 해서 잠깐 왔을 뿐이야. 마침 네 차가 눈에 띄었고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 이 차는 내가 변상할게.”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