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7화

일주일 후, 고세연은 드디어 퇴원했다. 상처는 잘 아물었지만 당분간 격렬한 운동은 삼가야 했다. 의사는 그녀의 직업을 듣고 난 뒤, 당장은 경기에 나서지 않는 게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조언했다. 하지만 이번 국제 대회만큼은 고세연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경기였다. 지금 그녀가 속한 팀은 이미 서씨 가문에 인수된 상태였고 조만간 자신이 팀에서 밀려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마저 들었다. 다행히 코치가 미리 출전권을 신청해 두었기에 이미 마감된 지금, 설령 서기훈이 알아도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보는 순간 고세연의 표정이 굳어졌다. 수백 년은 연락도 없던 부모님의 전화였다. 이상할 만큼 가슴 한가운데 찝찝한 예감이 스쳤다. 예감은 적중했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거실에는 서기훈이 앉아 있었고 부모님은 그에게 억지웃음을 지으며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고세연이 모습을 드러내자 아버지는 차갑게 말했다. “기훈이가 약혼 취소하겠대. 넌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어머니도 곧바로 끼어들었다. “직접 파혼하러 오게 만들다니. 네가 잘못한 게 있다면 얼른 사과해. 그러면 조용히 넘길 수 있어.” 말 한마디 묻지도 않은 채, 그녀를 향한 비난뿐이었다. 입원해 있던 동안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던 사람들이 서기훈이 오자마자 안절부절못하며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고세연은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답답했다. 그녀는 겨우 마음을 다잡고 서기훈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네 입으로 말해. 왜 파혼하는 건지.” 서기훈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말하기 불편한 내색이 스쳤지만 결국 입을 열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고세연 씨와 결혼할 수 없게 됐습니다. 하지만 파혼을 원하는 건 저니까 서씨 가문에서 보상은 하겠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고세연의 부모님 얼굴이 굳어졌다. 예상과 전혀 다른 흐름이었다. 서기훈이 내민 서류를 아버지는 단 한 번 훑어보더니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활짝 웃고 바로 서명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고세연의 온몸에 차가운 기운이 스며들었다. 그녀의 결혼은 이렇게 간단한 거래로 넘어갔다. 부모에게 그녀는 언제든 이익을 위해 내다 팔 수 있는 하나의 상품에 불과했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돌아서려던 찰나, 서기훈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오늘부로 우리는 약혼을 파기했고 이제 아무 관계도 아니야. 괜한 극단적인 행동만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고세연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표정은 텅 비어 있었고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나는 그렇게 천박한 사람이 아니야. 나 좋다는 사람은 많아. 쓰레기를 주울 생각도 없고 돌아갈 마음도 없어.” 순간, 서기훈의 얼굴빛이 짙게 변했다. 분노와 억울함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이었다. 뒤이어 고성호와 조수민이 고세연을 향해 소리를 쏟아냈지만 그녀는 비웃음만 남겼다. 이 집에는 다시 돌아올 일이 없었다. 오늘 이후로 그녀와 서기훈은 말 그대로 아무 관계도 아니었다. 집을 나서자마자 고세연은 택시를 잡아타고 곧장 레이싱 서킷으로 향했다. 일주일 내내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지금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레이싱 카였다. 폐기물 창고에 도착하자 그곳엔 06번 차가 있었다. 이미 되살릴 수도 없는 고철 덩어리였다. 고세연은 깊은 허무감에 젖었다. 모든 레이싱 카는 그녀의 아이 같은 존재였고 이 차를 망가뜨린 사람을 떠올리는 순간 마음속에 빽빽하게 증오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한동안 창고에 틀어박혀 다른 차량을 닦고 손보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그러다 문밖에서 갑자기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미간을 찌푸린 채 밖으로 나가자 사람들이 한곳에 몰려 있었다. 트랙 한가운데에는 꽃이 가득했고 그 중심에는 레이싱 카 한 대가 놓여 있었다. 그 차를 보는 순간, 고세연의 동공이 급격히 수축했다. 그것은 예전에 그녀가 주문 제작한 레이싱 카이자 이번 국제 대회에 출전시키려던 바로 그 차였다. ‘분명 아직 공장에 있어야 하는데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감각이 흘렀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익숙한 두 인물이 보였다. 서기훈은 꽃다발을 들고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송주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아야, 7년 전에 네가 날 구해줬을 때부터 나는 너에게 첫눈에 반했어. 그때부터 맹세했지. 언젠가 꼭 너와 함께하겠다고. 너도 내 진심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나는 너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 나와 함께해 주겠니?” 사람들은 환호를 터뜨렸다. “받아 줘! 받아 줘!” 진짜 그를 구해준 사람이 자신이 아니었기에 송주아는 속으로 걸리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군중 너머에 서 있는 고세연을 발견하자 표정이 바뀌었다. 대놓고 도발적인 눈빛을 보내더니 천천히 서기훈의 손을 잡았다. “좋아. 받아들일게. 뒤에 있는 이 차는 나한테 주는 선물이야?” 서기훈은 감격한 얼굴로 송주아를 꼭 끌어안았다. “그래. 네가 오래전부터 갖고 싶어 했잖아. 이 차는 너에게 주는 선물이야.” 그 순간, 고세연은 더는 참고 있을 수 없었다. 사람들 사이를 밀치고 앞으로 걸어 나간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서기훈의 뺨을 후려쳤다. “내 레이싱 카야. 언제부터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거야?”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