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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른 채 강우희는 희미하게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 의식이 점점 멀어지자 마치 과거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녀는 강씨 가문의 양녀로 여민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늘 조심스럽게 살아왔고 진정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여민수가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청혼했을 때 여민수는 평생 강우희를 소중히 여기고 가슴에 품고 살 것이며 가난하든 부유하든 그녀는 그의 유일하고 가장 확고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망설이고 있었고 결국 다른 여자를 선택하고 말았다. 과거의 맹세는 한 줄기 바람처럼 흩어졌고 강우희의 심장은 다시 쥐어짜이는 듯 아팠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온 방 안에는 소독약 냄새가 가득했고 머리 위 백열등은 눈을 찌르는 듯 아팠다. 병실은 텅 비어 있었고 벽은 그녀의 얼굴빛처럼 창백했다. 위가 타는 듯한 고통과 허벅지의 뜨거움은 숨을 쉴 때마다 참기 힘든 고통으로 되살아났다. 문밖의 간호사들은 잡담에 열중해 있었고 아무도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들었어? 여 대표님이 강씨 가문 큰 사모님을 안고 병원에 왔다더라. 얼마나 안절부절못하던지 지금도 옆에 있다잖아.” “쯧, 여 대표님의 진짜 사모님은 여기 누워 계신 분인데 저렇게 다쳤는데도 병문안을 한 번도 안 왔어...” “그냥 긴장해서 그런 것 같은데. 강씨 가문 큰 사모님이 강 대표님의 유복자를 품었다잖아. 여 사모님 체면 때문에라도 더 신경 쓰는 거겠지.” “그걸 믿어? 하하.” 그 말들이 귓속을 파고들자 강우희는 본능적으로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귓가에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가득 차올랐다. ‘새언니가 정말 임신한 걸까?’ 그녀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조카를 구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이 끔찍한 대리모의 역할이 드디어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해야 할지 강우희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강우희는 웃음과 눈물이 뒤섞인 얼굴로 울부짖듯 웃었다. 뜨거운 액체가 뺨을 타고 흘렀고 얼굴을 감싸 쥔 손바닥이 욱신거렸다. 손을 펴보니 손톱이 파고든 자리에서 붉은 피가 스며나 있었다. 한참 후,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은 그녀는 벽을 짚으며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강우희는 무겁지만 결연한 발걸음으로 온서진의 병실을 향했다. 멀리서 어린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VIP 병실 안 바다는 여민수와 온서진 사이에 끼어 애교를 부리며 작은 손으로 두 사람의 손을 억지로 맞잡게 했다. “엄마, 동생이 생겨도 나 안 예뻐하면 안 돼요.” “작은 고모부, 사적인 자리에서는 몰래 아빠라고 불러도 돼요?” 바다의 순진한 눈에는 그리움이 가득했고 그의 말에 여민수도 부드러운 눈빛을 보냈다. 온서진은 핀잔을 주듯 바다의 코를 톡 쳤고 바다는 재빨리 피하며 여민수의 품에 안겼다. 여민수는 잠시 몸을 굳혔지만 곧 웃으며 바다를 꼭 껴안았다. 세 사람은 화목하게 보였다. 강우희는 멍하니 서 있었고 심장은 텅 빈 듯 허전했다. 마치 무언가가 자신에게서 멀어져 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순간 여민수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고 그녀는 그의 눈과 마주쳤다. 공기 중에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여민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도발적인 미소를 지으며 온서진을 품에 안았다. 강우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슬픈 미소만 지은 채 몸을 돌려 떠났다. 그녀는 이제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옥상으로 올라간 강우희는 알 수 없는 짜증과 답답함을 차가운 바람으로 달래려 했다. 막 자리를 잡았을 때 등 뒤에서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바다가 고개를 내밀고 머뭇거리며 불렀다. “작은 고모.” 강우희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동안 아이가 없었던 그녀는 진심으로 바다를 아끼고 사랑했기에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마음이 녹아내리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바다가 그녀의 소매를 잡고 간절하게 고개를 들었다. “작은 고모, 아빠를 저에게 돌려주실 수 없어요? 저를 속일 필요 없어요. 사실 제가 작은 고모부의 아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제 동생이 태어나자마자 아빠가 없는 건 싫어요.” 바다의 말은 칼날처럼 강우희의 가슴에 박혔고 억누를 수 없는 고통을 안겼다. 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아끼던 아이가 정작 자신의 연인을 먼저 빼앗으려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바다는 오랫동안 대답을 듣지 못하자 숨이 막히는 듯 기침을 했다. 바다는 얼굴이 새빨개졌고 손발도 억제할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처럼 가냘픈 팔이 쉽게 꺾일 듯 보였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여전히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점점 숨을 가쁘게 쉬었고 눈꺼풀까지 뒤집히기 시작했다. 강우희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서둘러 대답했다. “그래.” 바로 그때 문이 다시 열리며 여민수가 들어왔다. 그가 얼마나 오래 두 사람의 말을 지켜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서로의 눈에서 다른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동안 바다는 참다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두 팔을 벌리며 여민수에게 말했다. “아빠, 너무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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