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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9화

입꼬리를 올린 성유리는 씁쓸한 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저으며 옷을 벗고 욕조로 들어갔다. 목욕을 마치고 나왔을 때 박지훈이 발코니에서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소리만 들어도 누구에게 전화하는 건지 알 수 있었다. 틀림없이 배가은과 통화하고 있을 것이다. 뒤를 돌아 성유리를 흘깃 본 박지훈은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몸이 안 좋다며? 시간도 늦었는데 얼른 쉬어.” 그 말을 들은 성유리는 자신의 예상이 맞다는 것을 확신했다. 진짜로 배가은과 통화 중이었다. 갑작스러운 분노가 또다시 마음속으로 밀려왔고 쉽사리 가시지 않아 화가 나서 손을 뻗어 침대맡의 등 두 개를 모두 꺼버렸다. 그러자 방안은 순식간에 어둠에 잠겼다.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 누운 성유리는 몸을 뒤척여 발코니를 등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코니 쪽에서 박지훈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큰 그림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불을 들고 소파에 누운 박지훈은 성유리와 눈을 마주쳤다. 주변이 어두웠지만 박지훈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느낀 성유리는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박지훈에게 등을 돌렸다. 이 행동을 본 박지훈은 갑자기 피식 웃었다. “왜? 내가 또 뭐 잘못했어? 내가 오니까 등 돌리네. 그러면 침대가 뒤집어질 텐데.” 박지훈의 말에 성유리는 웃음이 났지만 꾹 참고 성이 난 듯이 대답했다. “뒤집히면 좋죠. 새 매트리스 사서 돈 좀 쓰세요.” “이 침대 너랑 같이 잔 침대야, 쉽게 바꿀 수 없어.” 갑작스러운 애정 표현에 당황한 성유리는 온몸이 굳었다. “나한테 그런 말 하지 마요. 난 이미 그런 말에 무감각해졌으니까. 배가은에게 하는 게 더 효과가 있을 거예요.” 하지만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옆 침대가 움푹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더니 강렬한 기운을 내뿜는 남자가 다가와 큰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휘감았다. 성유리는 재빨리 뒤를 돌아 박지훈을 바라보았다. “여기 왜 올라와요? 소파에서 잔다고 했잖아요...” 성유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지훈이 말을 끊었다. “아까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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