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찾아야 할 사람? 누군데?”
진미연의 얼굴과 목소리에 궁금증이 가득했다.
“사형수의 딸이야.”
성유리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감옥에 있을 때 그 여자가 날 살려준 적이 있는데 은혜를 갚겠다고 하니까 출소하면 딸을 돌봐달라고 부탁하더라고.”
진미연이 떠보듯 물었다.
“아이 이름이 뭐고 몇 살이야?”
“송아림, 여섯 살이야.”
성유리의 목소리가 낮긴 해도 안색은 조금 나아진 듯했다.
“알았어. 이혼 합의서는 최대한 빨리 준비해줄게.”
그러고는 이불을 정리해주면서 말했다.
“그리고 네가 말한 그 여자애는 사람을 풀어서 찾아보도록 할게. 근데 단서가 바로 잡히지는 않을 거야. 소식이 있으면 알려줄게.”
“고마워, 미연아...”
성유리는 입꼬리를 올리면서 간신히 미소를 지었다. 창백한 얼굴로 애써 웃는 그녀의 모습에 진미연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진미연이 성유리의 손등을 토닥였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몸부터 챙기는 거야. 다른 일들은 잠시 미뤄둬. 특히 박진우랑 박강훈 일 말이야.”
두 사람의 이름을 들은 순간 성유리의 입가에 걸렸던 미소가 갑자기 차가워졌다. 그녀가 아무 말도 없자 진미연이 계속 말했다.
“사실 그때 박진우랑 박강훈이 CCTV만 확인했어도 네가 감옥에 갈 일은 없었을지도 몰라. 지금처럼 이렇게 힘들지도 않았을 거고...”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한마디 한마디에 성유리가 감옥에 들어간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성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미소를 지었다.
감옥에서 나와 그들을 만나기 전부터 이미 모든 것을 깨달았다.
그때 CCTV를 찾았거나 CCTV가 모든 걸 증명했더라도 박진우와 박강훈은 못 본 척하면서 어떻게든 희생양을 찾았을 것이다.
결국 돌고돌아 성유리가 감옥에 들어가는 건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미 한 번 죽다 살아난 사람이라 과거를 회상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유리야...”
진미연의 부름에 성유리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대답하려던 찰나 휴대폰 벨 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를 끊었다.
경찰서에서 온 전화였다. 호택사자상을 찾았으니 최대한 빨리 오라는 내용이었다.
성유리는 전화를 끊고 이불을 걷어낸 다음 벌떡 일어섰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급해?”
진미연은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을 잡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빠르게 슬리퍼를 신던 성유리의 얼굴이 눈에 띄게 차가워졌다.
“경찰이 호택사자상을 찾았대. 지금 당장 가봐야 해.”
“근데 열이 세게 나는데? 약 먹은 지 얼마 안 돼서 버티지 못한다고.”
“괜찮아.”
성유리가 진미연의 팔을 잡고 말했다.
“난 할 수 있어.”
그녀가 고집을 부리자 더는 말릴 수 없었던 진미연은 직접 아래층까지 배웅했다.
30분 후 성유리가 경찰서에 들어섰을 때 익숙한 세 사람의 모습이 멀리서부터 보였다. 얼핏 보면 정말 한 가족 같았다.
“성유리 씨의 호택사자상을 양아현 씨의 집 앞에서 찾았습니다. 근데 물건이 너무 커서 옮길 수 없어 정확히 맞는지 사진을 확인하시라고 부른 겁니다.”
경찰이 사진을 내민 순간 성유리는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그녀의 호택사자상이 맞았다.
“맞아요. 제 거예요.”
“성유리, 그 사자상은 내가 이미 아현이한테 선물로 준 거라서 절대 도둑질이 아니야. 억지 그만 부리고 경찰한테 사실대로 설명해.”
낮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성유리의 뒤에서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마자 박진우의 어두운 얼굴과 딱 마주했다.
“아빠 말이 맞아요.”
박강훈도 작은 얼굴을 찡그렸다.
“그건 아빠가 아현 이모한테 준 거예요. 그리고 원래 우리 집에 있던 건데 어떻게 훔쳤다고 할 수 있어요?”
성유리는 아들을 무시하고 고개를 들어 박진우를 덤덤하게 쳐다보았다.
“이 호택사자상은 내 결혼 전 재산이라 진우 씨가 함부로 처리할 자격이 없고 또 내 허락도 없이 남한테 함부로 줄 자격은 더더욱 없어요.”
“값을 불러, 그럼. 내가 산 거로 할게.”
박진우가 한발 물러섰다.
그 말에 성유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현재 직업도 없어서 돈이 필요한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박진우가 또박또박 말했다.
“계속 네 결혼 전 재산이라고 주장하는데 증거 있어?”
양아현이 옆에서 말리는 척했다.
“유리 씨, 진우 씨 말도 틀린 건 아니에요. 결혼한 이상 재산은 공동 소유인데 결혼 전후를 따질 필요가 있나요?”
“엄마.”
박강훈이 얼굴을 찌푸리면서 갑자기 끼어들었다.
“그 사자는 하나도 귀엽지 않은데 가져가서 뭐 하려고요? 그걸 그렇게 아끼는 이유가 뭐예요?”
세 명이 한마디씩 하며 성유리를 몰아붙였다.
‘대단들 하네, 정말...’
성유리가 싸늘하게 웃었다.
“내가 조각한 작품이라는 건 어떻게 부인할 건데요?”
그 말에 박진우와 박강훈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양아현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그렁그렁한 두 눈으로 박진우를 쳐다보았다.
“진우 씨, 다 내 잘못이야. 근데 내가 돌려주지 않는 게 아니라 그 호택사자상이 이미 방송에 나온 적이 있어서...”
돌려준다면 양아현이 도둑이라는 게 사실로 밝혀지게 될 것이다.
박진우가 성유리에게 냉랭하게 말했다.
“그만해. 고작 사자상 한 쌍 가지고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얼마면 돼? 내가 아현이 대신 배상할게.”
‘배상?’
그러자 성유리가 코웃음을 쳤다.
“배상하겠다고요? 좋아요. 그럼 6억 줘요.”
그녀가 만든 호택사자상은 값을 매길 수 없는 거라 6억 원은 많이 부른 것도 아니었다.
“6억요? 유리 씨, 너무 터무니없이 부르는 거 아니에요?”
양아현은 화가 난 나머지 얼굴이 다 빨개졌다. 박진우도 조롱 섞인 말투로 말했다.
“결국에는 돈 때문이었구나.”
성유리는 더는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
출소 후 다시 사업을 시작해야 했다. 이 6억 원이 그녀가 새롭게 시작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계좌 번호 줘. 바로 입금할게.”
박진우가 혐오와 경멸이 묻어나는 눈빛으로 짜증스럽게 말했다.
‘심술을 부리면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지 않나, 또 이런 소란을 피우지 않나. 정말 역겨운 여자야. 할아버지가 아니었더라면 당장이라도 이혼했어.’
성유리는 고개도 들지 않고 익숙한 은행 계좌 번호를 적어서 그에게 건넸다.
...
경찰서를 나온 후 성유리는 곧바로 떠나려 했지만 뒤에서 익숙한 외침이 들려왔다.
“잠깐.”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싸늘하게 돌아보았다.
“할 말 더 있어요?”
박진우는 성유리를 힐끗 쳐다보고는 차갑게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널 보고 싶어 하셔. 그리고 작은아버지가 곧 돌아오셔서 본가에서 모이기로 했어. 모레 저녁에 본가로 꼭 와.”
박진우는 그녀를 본가로 부르고 싶지 않았다. 감옥에 다녀온 여자를 어디 데리고 다니기 창피했다.
하지만 마침 작은아버지가 돌아오는 시점에 성유리가 출소한 터라 부르지 않는다면 할아버지에게 혼쭐이 날 게 분명했다.
그리고 작은아버지의 권력이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만약 성유리가 불참한다면 작은아버지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길 것이다.
박진우의 말에 성유리는 순간 멈칫했다. 그녀의 뇌리에 박지훈의 매혹적인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내 말 들었어?”
그녀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박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생각에 잠겼던 성유리는 흠칫 놀랐다가 한참 후에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알았어요.”
하지만 마음속에 의문이 하나 떠올랐다.
‘박지훈이 왜 갑자기 돌아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