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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이틀간의 짧은 휴식이었지만 성유리의 몸 상태가 그래도 조금은 나아졌다. 하지만 가족 모임 당일에도 머리는 여전히 무겁고 윙 했다. 저녁 무렵 간단하게 준비한 후 택시를 타고 박씨 본가로 향했다. 박씨 본가는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 3년 만에 이곳을 다시 밟았는데 성유리의 마음은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대문 앞에 도착했을 무렵 익숙한 컬리넌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번호판의 숫자가 순서대로 이어져 있었다. ‘정말 돌아왔구나.’ “엄마, 밥 먹을 시간 다 됐는데 왜 이렇게 늦게 와요? 굼벵이처럼...” 정문에서 박강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짜증이 가득 섞여 있었다. 성유리는 아이를 힐끗 쳐다봤다가 뒤에 스쳐 지나가는 두 사람에게 시선을 옮겼다. 박진우와 양아현이었다. ‘가족 모임인데 양아현을 데려와?’ 성유리가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간 후 양아현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유리 씨, 마침 잘 왔어요. 주방이 너무 바빠서 그러는데 우리가 가서 일손 좀 거들까요?” 본가에 도우미가 적지 않았지만 요즘 마침 휴가철이라 몇몇 도우미가 휴가를 낸 상태였다. 전에 가족 모임 때마다 남편과 아들에게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었던 성유리는 직접 요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부자는 여전히 그녀를 게으르다고 생각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참으로 가소롭기만 했다. 성유리는 양아현이 들어가는 걸 보고도 발걸음을 뗄 생각이 없었다. “엄마, 가서 아현 이모 좀 도와줘요. 이모는 아까부터 일해서 힘들단 말이에요.” 박강훈이 뒤에서 그녀를 재촉하며 손으로 밀기까지 했다. 박진우와 박진우의 어머니 진은주는 대화를 나누느라 성유리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성유리 역시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장 주방으로 들어갔다. 발을 들여놓자마자 양아현이 소스 접시 하나를 건넸다. “유리 씨, 이건 강훈이 전용 소스 접시예요. 내가 지금 손이 없어서 그러는데 강훈이 자리에 좀 가져다 놔줄래요?” 성유리가 거절하려던 찰나 소스 접시는 어느 도우미의 손을 거쳐 그녀의 손에 억지로 쥐어졌다. 소스 접시를 들고 나갈 때 낯익은 두 사람이 계단에서 천천히 내려오고 있는 걸 보았다. “유리 왔어?” 박철용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성유리는 재빨리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남자의 매혹적이면서도 차가운 얼굴이었다. 그는 몸에 딱 맞는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오른쪽 검지에 검은 반지를 끼고 있었는데 손가락이 더욱 길어 보였다. 그리고 주변을 압도하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풍겼다. 그를 볼 때마다 성유리는 차가우면서도 귀티가 흘러넘친다는 말이 떠올랐다. 박지훈은 박철용과 함께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성유리에게 시선이 닿긴 했지만 무심하게 힐끗 쳐다볼 뿐이었다. 성유리는 소스 접시를 든 손을 저도 모르게 꽉 쥐었다.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그를 이런 상황에서 다시 만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시선을 돌렸다. “오랜만이에요, 할아버지...” 3년 만에 만난 거라 박철용은 그녀를 소파에 앉히고 안부를 이것저것 묻고 나서야 식탁으로 걸어갔다. 박철용이 가운데 자리에 앉았고 오른쪽에 박지훈이 앉았다. 성유리는 박진우 옆에 앉았고 박강훈은 박진우와 양아현 사이에 앉았다. 식사가 반쯤 진행되었을 때 갑작스러운 구토 소리가 겉으로만 평온해 보이는 분위기를 깨뜨렸다. “아빠, 몸이 너무 가려워요...”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박강훈의 앞에 놓인 접시가 바닥에 떨어졌다. 박강훈은 박진우의 손을 잡고 계속 구토하면서 몸을 떨었다. “무슨 일이야?” 박철용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으며 황급히 일어섰다. 아이의 반응에 박진우는 재빨리 소매를 걷어 올렸다. 손등이 이미 벌겋게 부어있었다. “알레르기 생긴 거 아니야?” 양아현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다급하게 말했다. “강훈이 겨자 알레르기 있잖아. 오늘 그 어떤 요리에도 겨자를 넣지 않았어.” 비록 이혼을 앞두고 있긴 해도 성유리가 열 달을 품어 낳은 아이였기에 이 상황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아이에게 다가가 옷을 들쳐 배를 살펴보았다. 알레르기 반응이 확실했고 게다가 상황이 매우 심각했다. 박강훈은 어릴 때부터 겨자 알레르기가 있었다. 과거 도우미의 실수로 겨자를 먹고 혼수상태에 빠진 적도 있었다. 다행히 이번에 섭취한 양이 전보다 적어서 의식은 아직 또렷했다. 박진우가 식탁 위에 놓인 소스 접시를 들어 냄새를 맡더니 바로 얼굴을 찌푸렸다. “이 소스 누가 만들었어?” 성유리의 시선이 양아현에게 향했다. “양아현 씨요.” 그러자 양아현이 바로 부인했다. “난 겨자를 넣지 않았어. 그리고 이 소스 접시는 내가 소스를 만든 후에 유리 씨한테 상에 가져다 놓으라고 했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성유리에게 쏠렸다. “지금 무슨 뜻이에요?” 성유리의 안색이 점점 굳어졌고 목청도 높아졌다. “지금 내가 겨자를 넣었다고 의심하는 거예요?” “나도 유리 씨를 의심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난 분명 겨자를 넣지 않았다고요. 3년 동안 감옥에 갇혀있었던 일 때문에 날 계속 원망하고 있다는 건 알아요. 아무리 날 모함하고 싶다고 해도 어떻게 이런 짓까지 할 수 있어요? 강훈이는 유리 씨랑 진우 씨의 친아들이잖아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비난의 화살은 순식간에 성유리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두 눈에 분노가 차올랐다. ‘어쩐지 아까 기어코 주방으로 들여보내더니. 미리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고 있었던 거였어.’ 상황이 점점 험악해지자 박철용이 나서서 분위기를 수습했다. “일단 가정의부터 불러.” “알겠습니다.” 집사는 재빨리 밖으로 나가 전화를 걸었다. 박진우가 성유리의 팔을 꽉 잡았다. “아현이 말이 다 사실이야? 네가 직접 겨자를 넣었어?” 성유리가 대답했다. “넣지 않았어요.” “엄마, 아현 이모는 항상 나한테 잘해줬고 해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근데 엄마는 전에 이모를 해친 적이 있잖아요. 어떻게 이젠 나한테까지 이럴 수 있어요?” “내가 그런 거 아니라고 했잖아.” 성유리가 다시 한번 말했다. 하지만 모두 듣지 못한 것처럼 아무도 그녀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모두의 사랑을 받는 여배우와 감옥에 다녀온 전과자 중에 전자가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었고 후자가 아무리 뭐라 해도 소용이 없었다. “성유리, 감옥에서 3년이나 있었는데 어쩜 아직도 이렇게 잔인해? 호랑이도 제 새끼는 안 잡아먹는다고 했어. 아현이를 모함하려고 강훈이까지 이용하다니. 네가 그러고도 엄마야?” “엄마, 엄마한테 너무 실망했어요...” 박강훈이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한 순간 상황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진우야, 제대로 조사하기 전까지 유리를 함부로 몰아가지 마. 난 유리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믿어.” 박철용의 호통에 사람들의 이목이 전부 그에게 쏠렸다. 성유리도 박철용을 쳐다봤다가 박지훈과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 박지훈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눈앞의 상황을 무심하게 보고 있었다. 마치 그와는 아무 상관 없는 소란인 것처럼. “할아버지 뜻은...” 양아현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물었다. “제가 그랬다는 말씀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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