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5화

성유리의 말이 떨어지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자의 눈빛에 싸늘한 기운이 스쳤다. 잠시 생각에 잠긴 안지혜는 결국 입을 열었다. “증거도 없는 일로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상처 입는 건 본인일 수 있으니까요.” 성유리는 그 말에 냉소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이랑 엮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난 이미 불구덩이에 들어간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이제 와서 그런 말 하는 건 좀 늦지 않았어요? 아니면 애초에 진실을 알면서도 뒤에서 날 비웃고 있던 거예요?” “정말 당신이 웃기는 꼴을 보고 싶었으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이유도 없겠죠.” 안지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차갑게 쳐다봤다. 성유리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안지혜 앞까지 다가가 그녀를 내려다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 “이 일들이 당신 짓이라고 인정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 자기 손은 안 더럽히고, 꼭두각시들만 앞세워서 나서게 만든다니, 참 비열하네요.” ‘비열하다.’ 그 말이 떨어진 순간 안지혜의 얼굴빛이 확 바뀌었다. 그녀는 무릎 위에 올려놓았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이내 벌떡 일어나 성유리와 마주 섰다. 안지혜는 격분한 표정으로 성유리를 노려봤다.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입 조심해! 계속 그딴 식으로 말하면, 네 입을 찢어버릴 줄 알아!” 성유리는 그런 안지혜를 조소 섞인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눈매가 곱게 휘어지며 오히려 더 또렷해진 눈동자가 빛을 냈다. “입을 다물게 하려면, 애초에 뒤에서 구질구질한 짓은 하지 말았어야죠. 앞으로 또 그런 짓 하면, 그땐 정말 가만 안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증거도 없는 일로 사람을 함부로 몰지 마!” 안지혜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성유리가 냉정하게 끊어냈다. “증거가 이렇게 눈앞에 있는데도 아직도 헛소리라고 우기실 거예요?” 성유리는 탁자 위에 놓인 태블릿을 손으로 가리켰고 눈빛은 점점 더 서늘해졌다. 안지혜는 이를 악물고 무언가 말하려다 멈칫했다. “그쪽 작업실 망치려고 한 건 인정할게. 하지만 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