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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6화

안지혜는 성유리의 반응에 심히 불만인 듯 눈빛 깊은 곳까지 분노가 가득했다. “당장 그 녹음 지워.” 안지혜는 말투부터가 살벌했고 눈동자에 서린 독기는 성유리는 물론 성훈의 눈에도 고스란히 포착됐다. 성훈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급히 앞으로 나와 성유리 앞을 막아서며 안지혜를 매섭게 노려봤다. “안지혜 씨,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안지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들더니 성유리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그 말은 저 여자한테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대체 뭔 생각으로 내 공간에서 몰래 녹음해요? 누가 감히 그런 짓을 하라고 했답니까?” 하지만 성유리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얼굴에 비웃음이 어려 있었고 전혀 겁먹은 기색도 없었다. 여기 오기 전부터 이미 모든 걸 각오하고 온 상태였다. 안지혜가 이렇게 쉽게 끝낼 리 없다는 것도 예측했고 그래서 성훈이 따라오려 했을 때 굳이 막지 않았던 것이다. “성훈 씨, 저기 가서 잠시만 기다려줘요. 나 아직 안지혜 씨랑 할 얘기가 더 있으니까요.” 성유리는 손을 뻗어 성훈의 소매를 가볍게 당겼다. 성훈은 그 신호를 알아차리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에 단단한 의지가 비치는 걸 본 그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쪽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한쪽에 서서 두 사람을 예의주시했다. “이게 마지막이야. 당장 그 녹음 지워.” 안지혜의 눈빛 속 독기가 점점 짙어졌다. 자신의 위치가 일반인과는 다른 만큼 그 녹음이 공개라도 되면 자신은 끝장이었다. 지금껏 쌓아온 이미지가 완전히 무너지고 커리어 역시 여기서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지금껏 ‘긍정적인 에너지’를 대표하는 인물로 불리며 살아왔기에 이런 치졸한 암투에 연루되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절대로 이건 세상에 알려져선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성유리는 비웃듯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지우면 어떻게 퍼뜨리죠? 아닌가...” 짝.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앞의 여자가 성유리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방심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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