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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윤아린이 해외로 도피한 이유에 대해 바보가 아닌 이상 이강현은 당연히 짐작이 갔을 것이다. 비록 시도 때도 없이 나를 탓했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뻔했다. 윤아린은 미래의 남편이 심장 이식 수술에 실패해서 혼자가 되는 게 두려웠던 것이다. 워낙 애지중지 자라서 곧 죽게 될 사람과 결혼하는 게 싫었을뿐더러 남은 삶을 생과부로 살 수는 없었다. 이씨 가문은 상류층에서도 최상위에 속했고, 그런 집안의 유일한 후계자인 이강현은 ‘현대판 황태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따라서 결혼하게 되면 설령 남편을 여의더라도 재혼은 불가능할 게 뻔했다. 지난 3년 동안 옆에서 그림자처럼 수발을 들며 갖은 수모를 견뎌온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이제야 겨우 마음을 얻은 상황에서 윤아린이 뒤늦게 나타나 공로를 가로채려고 하는데 어찌 순순히 물러나겠는가? 어릴 적부터 함께한 정은 애틋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제일 힘든 순간에 선뜻 내민 손길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법이다. 이강현이 윤아린을 향한 마음을 증명하려고 나를 김정훈에게 보냈다고 하지만 어떻게 보면 자신을 시험하는 일이기도 했다. 어느덧 호감이 생긴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쉽게 잊을 수 있을 거로 믿었다. 다행히 만반의 준비를 마친 나는 사랑과 정성으로 그를 서서히 물들여 갔다. 아니니 다를까 결국은 마음이 약해졌다. 눈보라가 흩날리는 밤, 절정에 이른 나는 베란다까지 들리게 일부러 큰소리로 신음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실수인 척 서둘러 입을 틀어막았다. “미안해요, 형부. 참으려고 했는데...” 비좁은 차 안에서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 듣기 좋으니까 마음껏 질러.” 이내 고개를 숙여 내 눈에 입을 맞추었다. “세아야, 혹시 이 눈동자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말해준 사람이 없어? 비록 말끝마다 날 사랑한다고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도 믿기지 않아. 왠지 접근한 목적이 따로 있는 것 같거든.” 나는 아연실색하며 표정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어떻게 해야 믿어줄 거예요?” 뭇사람의 칭송을 받는 존재답게 그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교묘하게 감추려고 해도 기어이 낌새를 눈치채곤 했다. 그의 추측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여우짓을 한다고 해서 천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강현은 묵묵부답하고 다시 한번 무아지경에 빠졌다. 나는 피곤함에 찌든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갔다. 거실에 들어서는 순간 도우미들에게 둘러싸였다. 아마도 윤아린 부모님의 지시인 듯했다. 윤아린이 피임약을 들고 와서 내 입에 억지로 밀어 넣으며 삼키게 했다. 목구멍으로 넘기자마자 그녀의 발길질에 무릎이 꺾이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정세아! 주제넘게 굴지 마. 넌 고작 돈 받고 연기하는 가짜에 불과해.” 사실 나는 윤씨 가문의 사생아가 아니었다. 윤아린이 말도 없이 해외로 도피했을 때 이씨 가문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윤씨 가문은 보복이 두려우면서도 이강현이 죽고 나면 홀로 남게 될 딸이 걱정되었다. 결국 돈을 주고 사생아를 가장할 사람을 찾아 이강현에게 보내 희생양으로 삼았다. 그 방패막이가 바로 나였다. 3년이 지났는데도 멀쩡하게 살아 있는 모습은 심장 이식 수술의 성공을 증명해주었다. 그제야 윤아린도 안심하고 귀국했다. 따라서 희생양도 퇴장할 때가 온 것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윤세아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너를 해외로 보낼 거야. 남은 돈도 곧 줄게.” 윤아린의 아버지 윤호철이 싸늘하게 말했다. 윤아린의 어머니 경수지도 한마디 보탰다. “그나마 윤씨 가문의 딸이라서 강현이가 널 받아준 거야. 만약 고아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쳐다보지도 않았겠지. 3년이나 속여 놓고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용서받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해? 해외로 보내주고 돈까지 챙겨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지, 요행을 바라지 말고 일찌감치 단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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