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녀의 말도 납득이 갔다.
프러포즈는 내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이강현에게 접근한 목적을 떠올리니 괜스레 속상했다.
“맙소사! 불이야!”
이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한겨울에 개인 호텔에서 갑자기 불이 났다.
찬바람이 기승을 부리자 불길이 빠르게 번졌다.
다행히 프러포즈 현장을 지켜보기 위해 손님들이 전부 밖에 나와 있었다.
호텔 지배인이 재빨리 인원수를 체크했고 한 명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실종자가 이강현이라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배인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이강현 씨는 어디 계시죠?”
사람들이 하나같이 아연실색했다. 이강현이 사라지다니?
현장에 없으면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이지?
곧이어 모두의 머릿속에 최악의 상황이 떠올랐다.
“방금 반지 가지러 다녀오겠다고 하셨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추측은 확신으로 바뀌었고, 소름이 끼치면서 머리털이 쭈뼛 섰다.
불길은 점점 더 거세졌고 호텔 입구는 금세 불바다가 되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후끈거리는 열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사람을 구하려고 뛰어들었다가 실패하면 본인마저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윤아린은 겁에 질렸다. 아까만 해도 의기양양했던 얼굴은 어느덧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이럴 수가...”
“강현이가 너를 위해 반지를 가지러 갔는데 가만히 있을 거야?”
김정훈이 문득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윤아린에게 쏠렸다.
“불바다에 갇힌 것도 너 때문이잖아. 얼른 구해주러 가지 않고 뭐해?”
윤아린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울음을 터뜨렸다. 입술이 덜덜 떨렸고 비틀거리며 연신 뒤로 물러났다.
“정신 나간 소리 하지 마. 내가 미친 것도 아니고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데 심장병까지 앓고 있는 사람을 무슨 수로 구하겠어? 어차피 들어가봤자 같이 죽는 것밖에 더 있겠어?”
“강현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생각은 없나 보군.”
김정훈이 피식 웃으며 비아냥거렸다. 현장은 쥐 죽은 듯 조용했고 다들 찍소리도 못 했다.
그와 동시에 이강현이 죽으면 자칫 불똥이 튀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세아야, 너도 말끝마다 강현을 사랑한다고 하지 않았어?”
김정훈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일제히 나를 돌아보았다.
이내 약속이라도 한 듯 가스라이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3년 내내 거머리처럼 따라다니며 간이고 쓸개고 빼줄 기세더니 지금은 왜 잠잠하대?”
“여태껏 진심으로 사랑한 줄 알고 안쓰럽게 여겼는데 전부 연기에 불과했네? 결국은 이강현의 권력을 노린 거였어.”
김정훈은 한숨을 내쉬더니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어쩐지 강현이가 돈만 밝히는 여자라고 하더니. 불길에 휩싸여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정녕 아무렇지 않아? 강현을 사랑한다는 것도 고작 말뿐이었네.”
활활 타오르는 불이 모두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형부 혼자서 얼마나 두렵겠어요?”
곧이어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눈 앞에 펼쳐진 불바다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가는 길이 외롭지 않게 해줘야죠.”
말을 마치는 순간 사람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서로를 쳐다보며 너나 할 것 없이 미친 여자라고 생각했다.
김정훈이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리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이내 경멸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은 누가 못 해? 같이 죽는 게 과연 가능한...”
그가 말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충격과 경악을 뒤로 하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불바다에 둘러싸인 호텔 안으로 뛰어들었다.
“젠장! 미친 거 아니야?”
김정훈이 담배를 내동댕이치며 다급하게 외쳤다.
“윤세아, 거기 서! 강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