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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불길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겨울밤의 화재는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불바다에 뛰어드는 순간 언제든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비록 김정훈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대충 짐작은 갔다. 이강현이 호텔에 없다고 말하려는 거겠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위와 권세가 높은 사람인 만큼 경호원이 항상 따라다녔다. 지금처럼 갑작스러운 화재가 발생해 호텔에 갇힌 상황이라면 일찌감치 구하러 뛰어들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사건이 터졌을 때 경호원의 책임이 제일 컸다. 이씨 가문에서 가만히 있는 건 말이 안 되었고 생매장당해도 불만이 없을 것이다. 정작 경호원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데 되레 나랑 윤아린에게 이강현을 구하도록 부추기다니? 이는 누가 봐도 함정이었다. 사실 속으로 뻔했지만 실행에 옮겨야만 했다. 이강현과 윤아린의 재결합을 막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했으니까. 게다가 늘 내 진심을 의심하던 이강현에게 확신까지 줄 수 있어 일거양득이 따로 없다. 불길이 점점 커졌고 피부가 타들어 가는 듯 이루 형언하기 힘든 고통이 느껴졌다. 나는 얼굴을 꽁꽁 가렸다. 괜히 화상이라도 입으면 이강현이 싫어할지도 모른다. 어느새 몸에 상처가 생겼고 짙은 연기에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결국 참다못해 계단 입구에 털썩 쓰러졌다. 이렇게 죽는 건가? 의식이 흐릿한 와중에 눈을 감기 직전 머릿속으로 한 남자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흰색 셔츠를 입고 다정한 얼굴로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세아야, 얼른 일어나.” “오빠...” 나는 몸을 웅크린 채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보고 싶어요. 이제 더는 버틸 수 없어요.” 죽을 것 같은 순간, 경호원이 박차고 들어와 나를 끌고 나갔다. “강현아, 넌 심장 때문에 들어가면 안 돼.” 불바다에서 벗어나는 순간 윤아린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애타게 설득을 이어갔다. “점점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고! 경호원들이 이미 들어갔어. 어쩌면 세아는 이미...” “저기 보세요! 사람을 구했나 봐요.” 윤아린은 아마 내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얘기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갑자기 외치는 바람에 말이 끊기고 말았다. 그때, 이강현이 나를 끌어당겨 품에 껴안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한 마디씩 보탰다. “그나저나 강현 씨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역시 세아 씨였나 봐요.” “대체 얼마나 뻔뻔하면 언니의 약혼남을 빼앗냐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게 되었어요.” “엄연히 따지면 빼앗은 건 아니죠. 윤아린이 왜 하필이면 강현 씨가 수술하기 전에 출국했는지 정녕 모르겠어요?” 힘겹게 눈을 뜨는 순간 이강현과 시선이 마주쳤다. 칠흑 같은 눈동자는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웠고 마치 끝없는 심연처럼 나를 빨아들였다. “형부,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안색이 창백한 걸 보니 심장에 무리가 간 듯했다. 나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나지막이 사과했다. “전 형부가 안에 있는 줄 알고... 사고 쳐서 미안해요.” 지금 내 몰골이 어떤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덕분에 연기가 아님을 더욱 강조하게 되었다. 나는 여우짓의 정석을 발휘해서 손을 들어 일부러 화상 입은 부위를 보여주었다. “형부, 나 다쳤어요. 너무 아파요.” 어차피 함정이니 이 정도로 하면 만족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제는 의심을 거두고 내 진심을 믿어주겠지? “쌤통이야. 앞으로 조심해.” 이강현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비록 화가 났지만 나를 붙잡은 손길 만큼은 조심스러웠고 마치 보물을 다루듯 소중하게 대했다. “형부, 진짜 아파요. 호 해주면 안 돼요?” 비록 미세하지만 한층 누그러진 그의 태도에 넌지시 떠보았다.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도도하기로 소문난 이씨 가문 도련님이 대뜸 머리를 숙이더니 진짜 화상 입은 부위를 입으로 불어주었다. 주위는 쥐 죽은 듯 조용했고 시선은 일제히 한군데로 향했다. 바로 윤아린이 서 있는 곳이었고, 나도 곁눈질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순백색 드레스를 입은 모습은 천사를 연상케 했지만 의기양양하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었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누가 봐도 그녀의 참패였다. 더는 버틸 이유가 없었던 나는 그제야 긴장의 끈을 놓고 의식을 잃었다. “세아야!” 비몽사몽 한 와중에 이강현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곧바로 김정훈의 농담도 귓가에 울려 퍼졌다. “강현아, 너 제대로 발목 붙잡혔네.” 나한테 푹 빠지게 하는 것이야말로 그에게 접근한 진짜 이유였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려 4년이나 허비하지 않았는가? 마침내 소원을 이루었다. 또한, 다음 계획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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