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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허민아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배찬율이 이렇게 갑자기 돌아올 줄은 몰랐다. 그녀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오로라 보러 가자고 했잖아. 항공사에서 일정 확인 전화가 왔어.” 배찬율은 잠시 멍해졌다가 그제야 그 일을 떠올린 듯했다. 이마에 감긴 붕대와 창백한 안색에도 불구하고 그의 잘생긴 이목구비는 여전했다. “며칠 전 다쳐서 입원했어.” 그는 허민아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문자도 보내고 전화도 했는데 왜 안 받았어?” 허민아는 시선을 내리깔고 아무 감정도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답했다. “휴대폰을 잃어버렸어. 카드 재발급 중이야.” 말을 마친 그녀는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 냉담한 태도에 배찬율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불러 세웠다. “나한테 물어볼 말도 없어? 어디를 다쳤는지, 상태가 어떤지도 안 궁금해?” 허민아는 발걸음이 멈췄다. 그녀는 배찬율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예전처럼 다급하게 그의 상처를 묻고 아프지 말라고 약을 발라주며 지극정성으로 그를 돌보기를 바라고 있다는 걸. 그가 위염으로 쓰러졌을 때 눈보라를 뚫고 약을 사다 주었던 것도, 그가 술에 취했을 때 밤새도록 해장국을 끓였던 것도, 그가 가족을 잃었을 때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던 것도 모두 그녀였다. 하지만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를 순수하게 사랑했던 이유는 그 역시 그녀를 순수하고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의 마음에 다른 사람이 생기고 사랑에 불순물이 섞였다면 그들은 각자의 길을 가는 게 맞았다. “넌 늘 내가 간섭이 심하다고 했잖아?” 허민아는 돌아서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생각이 바뀌었어. 앞으로는 충분한 공간을 줄게. 말하고 싶지 않은 건 묻지 않고, 하고 싶지 않은 건 강요하지 않을 거야.” 배찬율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수축했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 말들이 전부 과거에 그가 직접 허민아에게 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방안은 죽은 듯 고요해졌다. 결국 배찬율은 무언가에 이끌리듯 침실까지 따라 들어왔다. 문가에 서서 짐을 정리하는 허민아의 뒷모습을 보자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 왔다. “두 달 전 네 생일이었지.” 그는 어색하게 화제를 돌렸다. “출장 때문에 같이 못 있었어. 요즘 경매장에 네가 좋아할 만한 신상 보석들이 많이 들어왔더라. 생일 선물로 같이 가서 고르자.” “필요 없어.” 허민아는 고개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배찬율은 고집을 부리며 그녀를 끌고 나갔다. 경매장에 도착해 예전에 좋아하던 보석들을 봤지만 허민아는 전혀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아챈 배찬율은 묻지 않고 직접 모든 걸 결정했다. “60억.” “백억.” “160억.” 그는 연이어 패를 들며 최고가의 보석들을 전부 낙찰받았다. 하나를 낙찰받을 때마다 허민아를 돌아보며 그녀의 얼굴에 기쁨이 떠오르길 바라는 듯했지만 허민아의 표정은 내내 담담하기만 했다.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귀에 꽂혔다. “저 사람이 바로 배성 그룹의 배 대표님이랑 부인이래요.” “역시 소문대로 금실이 좋네요.” “결혼 전에 친한 여자 있었다던데 한때 크게 싸웠다고 해요.” “남자면 다 그런 시기 있죠. 결국은 가정으로 돌아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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