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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그 말들은 칼날처럼 허민아의 가슴을 찔렀다. 옆에서 의기양양하게 앉아 있는 배찬율을 보며 그녀는 참을 수 없는 아이러니를 느꼈다. 세상 사람들 눈에 그들은 모범적인 잉꼬부부였다. 하지만 이 결혼이 처음부터 거짓이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오직 그녀뿐이었다. 배찬율은 단 한 번도 김예은을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은 끝내 그 선을 넘지 못했지만 변심은 변심일 뿐, ‘정리했다’, ‘가정으로 돌아왔다’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매가 끝난 뒤, 배찬율은 자리를 비워 전화를 받으러 갔다. 직원들이 포장된 보석 상자를 허민아에게 건넸다. 손목이 저릴 만큼 무거운 그 가방을 들고 나가던 그녀는 복도 모퉁이에서 익숙한 말다툼 소리를 들었다. 반쯤 열린 VIP실 문 너머로, 눈이 빨개진 김예은이 배찬율의 손을 뿌리치는 모습이 보였다. “야근이라더니 허민아랑 경매 회장에 온 거야?” 김예은은 울먹이며 말했다. “내가 결혼반지 고르러 오지 않았으면 오빠가 이런 짓 하는 줄도 몰랐을 거야!” 배찬율은 한숨을 쉬며 길고 고운 손가락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야근인 건 맞아. 이따 바로 회사로 갈 거야. 허민아랑 온 건 생일 선물 때문이었어. 화내지 마.” 허민아는 어둠 속에 서서 김예은의 표정이 점점 누그러지는 걸 지켜봤다. “그럼 왜 나한테 미리 말 안 했어?” 김예은은 그의 소매를 잡고 살짝 흔들었다. “내가 마음에 들어 한 반지들 전부 오빠가 낙찰받은 거 보고 너무 화가 나서 어지러웠어.” “내가 잘못했어.” 배찬율은 다정하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금 있다가 반지 전부 너한테 줄게.” “그럼 블루 사파이어 목걸이도.” “그래.” “그 옥 팔찌도 마음에 들었어.” “다 줄게.” 허민아는 손에 들린 묵직한 쇼핑백을 내려다보며 비웃듯 웃었다. 김예은이 사소한 일로 투정만 부려도 그는 이해하고 먼저 사과했다. 하지만 그녀가 단 한 마디만 물어도 그는 귀찮아하며 간섭한다고 했다. 김예은이 원하면 뭐든 다 주면서 그녀에게 주겠다던 생일 선물조차 망설임 없이 넘겨버렸다. 개인 공간이 필요하다느니, 너무 몰아붙인다느니 그런 이유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단 하나, 그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을 뿐이었다. 그녀가 뭘 하든 그는 이해해줄 마음이 없었다. 허민아는 더는 듣지 않고 조용히 돌아서서 내려갔다. 길가에 도착해 택시를 잡으려는 순간, 배찬율이 뒤에서 불러 세웠다. “민아야,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겼어. 혼자 돌아가도 괜찮지?” 허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이 그녀가 든 가방으로 옮겨가더니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아까 협력사 몇 명을 만났는데 그분들 부인이 오늘 산 보석을 마음에 들어 하더라고. 너도 오늘 특별히 마음에 드는 건 없었잖아. 그래서 선물하기로 했어. 다음에 네가 좋아하는 게 나오면 다시 데려올게.” 허민아는 그의 거짓말을 굳이 폭로하지 않고 가방을 그대로 건네며 말했다. “필요 없어. 다음은 없을 거야.” 배찬율이 멍해졌다. “무슨 말이야?” 허민아는 고개를 저으며 아무 일 아니라며 그를 보내줬다. 그의 뒷모습이 멀어지는 걸 보며 그녀는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그들은 곧 각자의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다음도, 이후도 없을 것이라고... 집에 돌아온 뒤, 허민아는 고열에 시달리며 며칠을 누워 지냈다. 몽롱한 상태로 수많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열여섯 살의 배찬율은 그녀의 곁을 지키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약을 먹으라고 달래고 체온을 수시로 확인하며 땀을 닦아주고 있었다. 하지만 눈을 뜨자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비어 있는 물컵 하나와, 바닥에 흩어진 약봉지들만이 남아 있었다. 목이 타들어 갈 듯 아픈 것을 느끼며 그녀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물을 마시려다 계단에서 눈앞이 캄캄해지며 그대로 굴러떨어졌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이마에는 끔찍한 상처가 생겨 피가 멈추지 않고 흘렀다. 피범벅이 된 채 바닥에 쓰러진 그녀는 몸이 산산이 조각난 듯 아팠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조차 없었다. 소리를 듣고 달려온 가정부는 그 광경에 혼비백산해 곧바로 119에 신고해 그녀를 병원으로 옮겼다. 구급차 안에서, 가정부는 계속해서 배찬율에게 전화를 걸었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기계적인 여성 음성이 무려 서른일곱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허민아는 힘없이 가정부의 손을 눌러 막았다. “그만 하세요... 받지 않을 거예요.” 가정부는 허민아가 어릴 때부터 곁에서 지켜본 사람이라 배찬율이 그녀를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아꼈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의 이 극명한 대비를 보자 그녀는 눈가가 순식간에 붉어졌다. “도련님께서 분명 무슨 일에 붙잡히셔서 전화를 못 받으신 걸 거예요. 아가씨,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일만 끝나면 가장 먼저 달려와 아가씨를 돌보실 거예요. 도련님이 얼마나 아가씨를 소중히 여기시는지 아시잖아요. 예전에 손가락에 상처 조금만 나도 병원에 가자고 그렇게 난리였고 생리통으로 아파하실 땐 종일 곁을 지키며 따뜻한 물 가져다주고 아랫배를 문질러주셨잖아요...” 허민아는 눈을 감았다.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그랬다. 그렇게 그녀를 위해 허둥대던 배찬율은 결국 기억 속에서만 살아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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