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비켜요!”
임가현은 통증을 억지로 눌러 참으며 몸을 피하려 했지만 반 박자 늦고 말았다.
배우성의 힘은 예상보다 훨씬 셌다.
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거칠게 짓눌렀고 다른 손으로 병원복의 깃을 움켜쥐어 잡아당겼다.
순간 단추가 툭 소리를 내며 뜯어지더니 임가현의 옷자락이 벌어지며 창백한 피부와 단단히 감긴 붕대가 드러났다.
그는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눈빛을 번뜩였다.
흥분과 혐오가 뒤섞인 심하게 일그러진 표정이었다.
“쯧... 몸은 생각보다 멀쩡하네. 얼굴은 뭐... 어차피 불 끄면 다 똑같잖아.”
“놔요! 놔달라고요... 살려주세요!”
임가현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굴욕과 공포가 한꺼번에 밀려들며 온몸이 떨렸다.
하지만 옆에 있던 백서린 일행은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누군가는 비웃었고 누군가는 팔짱을 낀 채 구경하듯 서 있었다.
심지어 김하늘은 태연하게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녀는 영상을 찍으려는 듯 카메라 렌즈를 임가현에게 겨눴다.
그 순간 절망과 분노가 동시에 임가현의 이성을 무너뜨렸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침대 옆 협탁 위에 놓인 유리 화병을 바라보았다.
임가현은 망설일 틈은 없이 그것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자기 위에 올라탄 배우성의 머리를 향해 남은 힘을 모두 끌어모아 내리쳤다.
쾅!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배우성의 비명과 유리가 산산이 깨지는 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바로 그때였다.
병실 문이 열리며 소독 트레이를 든 간호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바닥에 흩어진 유리 파편, 머리를 부여잡은 채 피를 흘리고 있는 배우성, 그리고 침대 위에서 옷이 흐트러진 채 창백한 얼굴로 떨고 있는 임가현... 간호사는 그 광경을 본 순간 너무 놀라 소독 트레이를 떨어뜨릴 뻔했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에요? 경비팀 당장 여기로 와주세요! 경찰도 불러요, 빨리요!”
...
경찰서에서 임가현과 백서린 일행은 분리돼 조사받았다.
백서린 쪽 사람들은 마치 미리 입을 맞춘 것처럼 한목소리로 말했다. 임가현이 고의로 사람을 다치게 했다고...
반면 임가현은 자신이 성폭행을 당할 뻔했고 이는 명백한 정당방위였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그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누가 ‘못생긴 여자’가 성추행을 당했을 거라고 믿겠는가.
얼마 지나지 않아 한주혁이 변호사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서장은 직접 나와 그를 맞이했다.
“한 대표님, 이 사건이요... 양측 진술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결론은 내려야 하는데 다들 아시는 사이들이라... 대표님 뜻을 좀 여쭤보고 싶습니다.”
한주혁의 시선은 가장 먼저 임가현에게 향했다.
헝클어진 옷깃과 얼굴을 감싼 붕대를 훑는 순간 그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그러나 그는 곧 시선을 거두어 조용히 앉아 있는 백서린을 바라봤다.
백서린은 그를 보자마자 고개를 저었다.
마치 괜히 휘말린 사람인 것처럼 난처하면서도 억울한 표정이었다.
한주혁은 몇 초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사실 안은 숨 막힐 듯 고요했고, 그 침묵의 매 순간은 임가현에게 고문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우성이가 좀 경솔한 면이 있긴 하지만 성추행이라니... 게다가 우성이 주변에 여자 없는 것도 아니고. 가현아, 네가 오해한 거 아니야?”
임가현의 말문이 턱 막혔다.
한주혁은 다시 경찰서 서장을 바라봤다.
“우성이는 크게 다쳤으니 우선 병원으로 보내서 검사부터 하시죠. 가현이는 지금 감정이 많이 불안정한 상태인 것 같고요. 신고가 접수된 이상, 현장에서 과도한 폭력이 있었던 부분은 치안 방해로 정리하는 게 맞겠습니다. 며칠 정도 구금 조치하고 그동안 상황을 차분히 정리할 시간을 갖게 하시죠.”
임가현은 눈을 크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배우성에게 여자가 많으니까 오해라고? 그럼 나는 못생겨서 성추행조차 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야?’
그녀는 심장이 산 채로 도려내져 짓밟히는 것 같았다.
얼굴의 상처나 조금 전의 공포보다도 그 말 한마디가 수백 배는 더 아팠다.
서장은 그의 뜻을 알아차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한 대표님. 사람 불러서 배우성 씨와 백서린 씨부터 귀가 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임가현을 향해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임가현 씨, 고의 상해 및 치안 방해 혐의로 현행법에 따라 구금 조치하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서린과 배우성은 경찰서를 나섰다.
배우성은 임가현의 곁을 지나칠 때 머리를 부여잡은 채 그녀를 노려봤고 백서린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주혁이가 누구 말 믿는지 이제는 너무 분명하죠?”
그녀는 그 말만 남기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섰다.
임가현은 곧바로 구치소로 끌려갔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백서린이 이 기회를 그냥 넘길 리 없다는 걸.
그 뒤로의 일주일은 임가현에게 지옥 그 자체였다.
차갑고 습한 감방, 쉰내가 밴 음식, 시비를 걸어오는 동료 수감자들, 한밤중에 느닷없이 끼얹어지는 찬물, 아직 아물지도 않은 상처를 거칠게 건드리는 손길들... 고통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임가현은 울지도, 소리치지도 않았다. 그저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녀의 눈빛은 하루가 다르게 비어 갔고 마음은 점점 더 차갑고 단단해졌다.
그리고 일곱째 날, 임가현은 풀려났다.
...
경찰서 앞에는 한주혁이 서 있었다.
그는 차에 기대선 채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웠다.
피어오른 연기가 그의 단정한 얼굴을 흐릿하게 가리고 있었다.
임가현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는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끄고 천천히 다가왔다.
“나왔네, 차 타.”
임가현은 움직이지 않은 채 고개를 들어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쉰 목소리에는 억눌린 감정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왜 그랬어요?”
한주혁은 잠시 멈칫했다.
그녀가 이런 질문을 할 거라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뭐가 왜야?”
“왜 저 사람들은 보내고 저는 가둔 거예요? 제가 못생겨서요? 그래서 서린 씨 친구가 저한테 그런 짓을 했을 리 없다고, 제가 거짓말을 하고 일부러 사람을 다치게 했다고... 단정한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