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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한주혁은 임가현의 새빨갛게 충혈된 눈을 바라봤다. 순간 가슴 한구석이 찌릿했지만 그는 애써 그 감정을 무시했다. “가현아, 우성이가 인간쓰레기인 건 맞아. 하지만 성추행이라니... 그럴 가능성은 없어. 그때 상황도 워낙 어수선했어서 네가 무서워 오해했을 수도 있잖아.”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마치 충분히 배려하고 있다는 듯 덧붙였다. “며칠 구금한 건 상황을 정리하려는 조치였어. 일을 더 키우지 않으려는 판단이기도 했고. 난 널 버려둔 게 아니야. 안에도 미리 얘기해 둬서 네가 큰 불이익을 당하게 두진 않았어.” ‘미리 얘기해 뒀다고?’ 임가현은 웃음이 터질 뻔했다. 하지만 웃음보다 먼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렇다면 서린 씨도 교도소에 똑같이 ‘얘기’를 해두었겠지.’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모든 게 또렷해졌다. ‘그래서 나는 교도소에 있는 동안 인간 취급조차 받지 못한 채 짓밟혔던 거구나.’ 임가현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 사이로 새빨간 피가 번져 나왔다. ... 그 뒤 며칠 동안 한주혁은 그녀라는 ‘도구’가 괜히 말썽을 부리지 않도록 달래려는 듯 이전과는 다른 태도를 보였다. 그는 최상위급 프라이빗 경매에 그녀를 데려가 값을 부르지도 않은 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귀걸이, 명화까지 눈에 띄는 물건은 모조리 낙찰받아 전부 그녀 명의로 돌려주었다. 그러나 임가현은 빛나는 다이아몬드를 바라보며 마음이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것만 느꼈다. 그녀는 경매가 끝난 뒤 혼자 갑판으로 나가 바람을 쐬었다. 그때 뒤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백서린이였다. “가현 씨, 주혁이가 이것저것 많이 사줬는데 기분 어때요?” 그녀는 자연스럽게 임가현 곁으로 다가왔다. “근데 아무리 비싼 물건을 받아도 가현 씨가 도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가현 씨는 주혁이가 부모님을 압박하려고 꺼내든 카드라는 걸 명심해요. 지금 목적도 거의 달성된 상황이잖아요. 주혁이 곁에... 가현 씨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백서린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 “저희 결혼할 때 청첩장은 보내줄게요. 예의니까요.” 임가현은 더는 듣고 싶지 않아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 순간 백서린이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붙잡았다. “이렇게 간다고요? 왜요, 듣기 싫어요? 제가 전에 진실을 말해줬잖아요. 주혁이가 사랑한 사람은 처음부터 나였어요. 가현 씨는 그냥...” “이거 놔요!” 임가현이 힘껏 손을 뿌리쳤다. 두 사람은 선미 쪽 난간 근처에서 실랑이를 벌이게 됐다. 그때 유람선이 살짝 흔들라면서 백서린의 하이힐이 난간 바닥에서 미끄러졌다. “꺄악!”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지는 동시에 반사적으로 임가현의 손을 움켜쥐었다. “아아아아!” 두 사람은 동시에 균형을 잃고 난간을 넘어 차가운 바다로 떨어졌다. 얼음장 같은 바닷물이 순식간에 임가현과 백서린의 입과 코를 덮쳐 왔다. 강한 충격과 냉기가 한꺼번에 몰려들며 숨이 턱 막혔다. 임가현은 수영할 줄 몰라 본능적으로 몸부림쳤다. 그 순간 짠 바닷물이 그대로 목구멍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의식이 점점 흐려지는 와중, 시야 너머로 누군가가 바다로 뛰어드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다가오는 그 사람은 한주혁이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임가현을 돌아보지 않았다. 임가현은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몸보다 마음이 먼저 얼어붙은 것 같았다. 그녀의 의식이 거의 끊어질 즈음, 마침 근처를 지나던 소형 보트가 그녀를 발견했다. 보트 위에 있던 사람들은 우르르 달려들어 가까스로 그녀를 끌어 올렸다. 임가현은 갑판 위에 쓰러진 채, 기침하며 바닷물을 토해냈다. 온몸은 흠뻑 젖어 덜덜 떨렸다. 그사이 한주혁은 이미 백서린을 구조정에 태워 담요로 감싼 채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제야 그는 무언가가 떠오른 듯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이 임가현에게 향했다. 처음에는 그저 무심히 스쳐 가는 한 번의 눈길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얼굴이...” 그는 낮게 중얼거리며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임가현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여 얼굴을 더듬었다. 두껍게 발랐던 화장은 바닷물과 몸부림 속에서 얼룩덜룩 지워져 있었고 그 아래 숨겨져 있던 본래의 피부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젖은 앞머리는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으며 검은 뿔테안경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주혁아... 나 머리가 너무 아파... 너무 춥고...” 그 순간 백서린은 신음을 흘리며 한주혁의 품으로 비틀거리듯 파고들었다. “조금만 참아, 바로 의사한테 데려갈게.” 그는 더 이상 임가현을 보지 않고 백서린을 안아 든 채 빠른 걸음으로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 임가현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젖은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손끝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자신을 구해준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다시 유람선에 올라탄 임가현은 비어 있는 객실 하나를 찾아 몸을 추슬렀다. 그리고 거울 속에는 추한 화장 아래에 감춰져 있던 아름다운 얼굴이 비쳐 있었다. 어머니가 남겨준 얼굴... 그녀가 십수 년 동안 숨겨온 얼굴이었다. 그녀가 옷을 갈아입고 유람선에서 내리려는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한주혁의 어머니, 황미경이었다. “가현아.” 그녀의 목소리에는 숨김없는 안도와 통쾌함이 묻어 있었다. “이혼 서류는 다 처리됐어. 이제부터 너와 주혁이, 그리고 한씨 가문은 아무 관계도 없어. 네 아버지 쪽에는 보상금도 지급할 거야. 그러니까 다시는 우리 앞에 나타나지 마.” 임가현은 휴대폰을 쥔 채 부두 위에 멈춰 섰다. 해풍이 반쯤 마른 긴 머리칼을 들어 올리며 이마와 안경에 가려지지 않은 맑고도 차가운 눈동자를 그대로 드러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어...’ 그녀는 택시를 잡아 외곽의 묘지로 향했다. ... 사진 속의 박지숙은 아름답고 온화했지만 그 눈빛에는 지울 수 없는 슬픔이 서려 있었다. “엄마는 너무 예쁘게 태어나면 사람을 쉽게 믿게 된다고 했지. 그런데... 못생긴 척을 해도 결국은 똑같이 속고 말았어.”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내 외모를 숨긴다고 해서 안전해지는 건 아니었어. 오히려 날 해치려는 사람들을 더 대담하게 만들 뿐이었지.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숨고 싶지 않아. 앞길이 여전히 험하더라도 진짜 내 모습으로 마주하고 싶어.” 임가현은 묘 앞의 땅에 머리를 세 번 조아린 뒤 돌아섰다. 저택으로 돌아온 그녀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2층 침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녀는 세 가지를 했다. 첫 번째는 모든 짐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일이었다. 두 번째는 얼굴의 화장을 전부 지우는 일이었다. 거울 위에 수증기가 차올랐다가 걷히며 아름다운 얼굴이 또렷이 드러났다. 세 번째는 휴대폰을 꺼내 가장 빠르게 출발하는 항공권을 예매하는 일이었다. ... 임가현은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그녀는 탑승권을 받고 검색대를 지나 대기실을 거쳐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줄곧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화장도 하지 않은 그 얼굴은 여전히 수많은 시선을 끌어당겼다. 놀람과 호기심, 심지어 몰래 카메라를 드는 시선까지 사방에서 쏟아졌다. 임가현은 그 시선들을 느꼈지만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비행기가 구름을 가르며 상승하자 그녀의 고통과 거짓으로 가득했던 도시는 아득히 아래로 밀려났다. 그러나 그녀는 알지 못했다. 자신이 비행기에 오른 직후, 공항에서 몰래 찍힌 수많은 사진들이 지역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하며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는 사실을... [공항에서 포착된 민낯 여신] [이 얼굴, 실존 가능한가요?] [3분 안에 여신님 정보 다 알려줘요] [이 얼굴 앞에서는 백서린도 시녀급 ] 온 인터넷이 이런 댓글들로 들썩였다. 모두가 이 믿을 수 없는 미녀의 정체를 찾다. 그리고 곧 그녀의 신원이 하나둘씩 파헤쳐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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