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자식의 빚
“그건...”
추미선은 머뭇거리며 말했다.
“대표님께서 일이 바쁘시고 자주 밤을 새우셔서... 이영 씨 휴식을 방해할까 봐 다른 방에서 주무시는 거예요.”
강이영은 기억을 잃은 것이지 멍청해진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눈을 피하는 추미선만 보아도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고 입술을 틀어 물었다. 눈가가 어느새 붉어졌다. 보통 부부가 왜 각방을 쓰겠는가.
‘설마 남편이랑 사이가 안 좋았나? 그런 거라면 왜 그동안 그렇게 세심하게 챙겨준 거지?'
강이영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고 마음은 답답하기만 했다.
...
미래 그룹 최고층 대표실.
통유리창 밖에는 경진의 가장 아름다운 전경이 펼쳐져 있었다.
유정한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래서. 그 여자를 그냥 집에 데려왔단 말이야?”
구현준은 가죽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라이터를 손가락 사이에서 돌리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우리 유 대표가 언제부터 보호소를 차린 거지?”
유정한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럼 어떡해. 그 아이는 기억도 잃고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는데.”
“의사는 뭐래?”
주현준은 장난기를 거두고 몸을 약간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유정한은 강이영의 맑고 초롱초롱한 눈과 자신의 소매만 꼭 붙잡던 불쌍한 모습을 떠올리고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대답했다.
“뇌 손상이 있어서 어쩌면 내일 바로 회복될 수도 있고 아니면 평생...”
“그럼 방법 없지. 일단 돌보는 수밖에.”
유정한은 미간을 구겼다.
“돌보는 건 상관없는데, 다만...”
그는 강이영이 자신을 계속 ‘여보'라고 부르는 게 조금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차라리 사실대로 말해버릴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고 난 후 강씨 가문에 돌려보내 가족들의 곁에 있으면 금방 기억을 되찾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구현준은 그런 그를 보며 다시 장난스럽게 웃었다.
“다만 뭔데. 왜 말을 하다가 말아. 하긴 네 그 아들이 도망쳤으니 양부인 네가 책임져야지 어쩌겠어. 자식의 빚을 네가 갚게 생겼네...”
쾅 소리가 울리며 커피잔이 대리석 탁자 위에 세게 내려앉았다.
유정한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났다.
“심은성 그 망나니 자식, 내 손에 잡히기만 해봐. 두 다리를 직접 꺾어버릴 테니까.”
그 말을 들은 구현준은 크게 웃어버렸다.
심은성이 열두 살에 유정한의 손에 특수부대에 던져져 수년간 혹독한 훈련을 받았지만 좋은 건 안 배우고 깡패 기질만 배워와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 무법자라는 걸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 몇 년간 유정한이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동안 간섭할 사람이 없던 어린 도련님은 상류사회에서 술이나 마시고, 레이싱하고, 싸움을 일삼으며 완전히 망나니가 되어 날뛰었다. 그런 그에게 갑자기 정략결혼을 강요하니 당연히 기뻐할 리가 없었다.
“걔가 일부러 피하고 있다면...”
구현준은 의미심장하게 술잔을 흔들며 말을 이었다.
“쉽게 잡히진 않을 거야.”
유정한은 냉소를 지으며 긴 손가락으로 태블릿을 툭툭 눌러 전 세계 위치 추적 지도를 띄웠다.
“심은성의 모든 블랙카드에는 추적기가 달려 있지.”
심은성이 유씨 가문의 돈을 쓰지 않는 한 언젠가 잡히게 돼 있었다.
구현준은 바로 휘파람을 불며 감탄하더니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참, 강씨 가문에서는 강이영이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은 걸 알고 있어? 강진철은 원래도 딸을 팔아 호사를 누리려는 속셈이었지. 만약 딸이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면 어떻게든 돈 뜯어내려고 널 물고 늘어질 거야.”
유정하는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강이영이 사고를 당한 지 벌써 열흘이나 지났는데도 강씨 가문에서는 단 한 명도 병원에 찾아온 적 없었고 전화조차 걸어온 적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강이영이 정말로 강씨 가문의 장녀가 맞는지조차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때 주석훈이 서류를 들고 들어왔다.
“대표님, 시키신 걸 알아봤습니다.”
그는 유정한에서 서류를 건넸다.
“강이영 씨는 여섯 살 때 부모가 이혼했습니다.”
주석훈은 옆에 서서 낮은 목소리로 보고했다.
“어머니인 임소연 씨는 이혼 당일 바로 프란국으로 떠났고 그 뒤로 한 번도 돌아온 적 없었습니다.”
유정한은 서류를 펼치자 흑백 사진 속에 인형을 안고 강씨 가문 본가 앞에 서 있는 어린 소녀를 보게 되었다. 어린 소녀의 눈빛은 영혼이 없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공허했다.
“그 후에 강진철 씨가 재혼하면서 강이영 씨는 강주 쪽의 시골로 보내져 외조부모와 함께 살다가 열다섯 살에 경진의 명문 고등학교에 합격한 뒤에야 다시 강씨 가문으로 불려갔습니다.”
다음 장을 넘긴 유정한의 손가락이 갑자기 멈추었다.
CCTV 화면을 캡처한 사진 속에는 왜소한 소녀가 강씨 가문 저택의 대리석 바닥에 무릎 꿇고 있었고 계모는 뜨거운 차를 강이영의 얼굴에 쏟아붓고 있었다.
주석훈은 계속 말을 이었다.
“다만 여름방학이 끝나기도 전에 강이영 씨는 이복 남동생을 익사시키려 했다는 누명을 썼습니다. 하지만 당시 가정부의 증언에 따르면...”
주석훈은 잠시 멈추며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