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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소신, 마마를 뵙사옵니다!” 심철호는 황급히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혹시 전하께서...” 장공주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고개를 돌려 심화영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증오와 분노를 미처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이곳에 온 것이냐?” “소녀, 마마를 뵙사...” 심화영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장공주가 갑자기 손을 들어 심화영의 뺨을 힘껏 때렸다. “주제 파악을 못 하는구나. 너 따위가 감히 내 아들을 음해하려고 해? 네까짓 게 무엇이라고!” 장공주는 예전부터 심화영을 아니꼬워했다. 두 사람의 혼약을 정한 것이 심씨 가문과 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이 아니었다면, 선황께서 증언까지 해주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일찌감치 혼약을 파기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젠 전강훈이 심화영의 꼬임에 넘어가 그녀를 만나러 연남산에 갔다가 독이 묻은 화살에 맞아서 정신을 잃었으니 장공주는 인내심이 완전히 바닥나 버렸다. 그래서 심화영을 보게 된 지금 이 순간 당장이라도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심화영은 뺨을 세게 맞게 되자 고열 때문에 어지러웠던 머리가 더욱 아프기 시작했다. 현기증이 밀려왔다. 그러나 심화영은 자신의 잘못이 크다는 걸 알고 있었다. “송구하옵니다.” 심화영은 힘겹게 목소리를 냈다. 그녀는 우선 공손히 사과한 뒤 고개를 들어 장공주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밤, 장공주는 위엄 넘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황실에서 자란 탓에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이었다. 게다가 선황께서는 살아계실 때 장공주를 굉장히 아꼈고 황제도 여동생이 장공주 한 명뿐이었기에 그녀를 굉장히 아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장공주는 점점 더 오만해졌다. 장공주가 심화영을 싫어하는 것처럼 심화영도 장공주를 싫어했다. 특히 전생에는 장공주의 며느리가 되어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진심으로 소름이 끼치고 두려워서 세상 끝까지 도망치고 싶었다. 심화영이 전강훈을 싫어한 이유 중 6할이 유씨 부인과 송연정의 책임이라면 나머지 4할은 장공주의 책임이었다. 장공주 같은 시어머니가 생기는 걸 누가 원하겠는가? 전생에 심화영은 장공주를 매우 싫어했고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둘은 원수가 되었다. 대비의 생신연에서 심화영은 멍청하게도 공공연히 전강훈과의 혼약을 파기하여 명양왕부가 체면을 구기게 하였다. 당시 장공주는 자신의 계집종을 시켜 심화영의 뺨을 수십 대 때려서 그녀가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하게 했다. 심지어 장공주는 심화영이 차라리 죽어버리기를 바랐다. 사실 심화영은 지금도 장공주 같은 사람이 싫었다. 그러나 전강훈에게 지은 죄를 생각하면 오늘의 수모는 그녀가 자초한 일이었다. 심화영은 입안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걸 느꼈지만 장공주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결연히 말했다. “마마, 저를 욕하셔도 좋고 때리셔도 좋사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들여보내 주시지요. 전하께서 깨어나시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사옵니까?” “네까짓 게 감히 나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냐?” 장공주는 심화영의 말을 듣고 불같이 화를 냈다. “만약 훈이가 깨어나지 못한다면 너를 능지처참할 것이다. 너와 심철호, 심태진 세 사람 모두 살아서 돌아갈 수 없을 줄 알거라!” 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십여 명의 호위무사들이 갑자기 나타나 심화영과 심철호 일행을 에워쌌다. 심철호는 본능적으로 심화영을 뒤로 숨기면서 말했다. “마마, 화영이가 철이 없긴 하지만 절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화영이도 오늘에야 간신히 정신을 차렸사옵니다. 그리고 깨어나자마자 비를 무릅쓰고 전하를 위해 의원을 찾으러 갔사옵니다. 화풀이하실 생각이라면 제게 화풀이를 해주시옵소서!” 심화영은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았다. 심철호는 위대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경성의 신하 중에서 키가 큰 편이 아니고 살집도 있는 편인 데다가 평소에는 날 선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 그는 심화영을 지키기 위해 죽을 각오를 한 채 무례하고 막무가내인 장공주 앞에 섰다. 이렇게 훌륭한 아버지를 두었으면서 전생에는 소중히 여길 줄 몰랐다. “아버지, 이건 아버지와 상관없는 일...” 심화영은 고개를 저으며 그를 붙잡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장공주가 버럭 화를 냈다. “심 대감, 내 아들은 아직도 깨어나지 못했소. 그런데 지금 심 대감은 자기 딸을 데리고 와 내 앞에서 부녀 사이의 정을 뽐내는 것이오? 좋소. 그러면 내가 오늘 그 소원을 이뤄주겠소!” 슥. 장공주가 검을 뽑아 심화영을 향해 검 끝을 겨누었다. 그녀가 손을 쓰려는데 계집종 옥주가 헐레벌떡 뛰어나와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마, 큰일 났사옵니다! 전하께서 갑자기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계시옵니다. 원정 나리께서 말씀하시길, 전하께서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실 수도 있다고 하옵니다.” “뭐라고?” 장공주는 휘청거리며 쓰러질 뻔했다. 백세민은 깜짝 놀라서 서둘러 설현수를 앞으로 밀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서 전하를 살펴봐 주십시오.” 그는 설현수의 침술을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보았었다. 그러나 장공주는 본 적이 없고 또 심화영이 데려온 사람이라 그를 믿지 않았다. 장공주는 갑자기 거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멈추시오!” 다음 순간, 그녀는 설현수에게 검 끝을 겨누었다. “누구의 지시를 받고 내 아들을 해치러 온 것이오?” 심화영은 깜짝 놀라 말하려다가 설현수를 보고 흠칫했다. 어두운 밤, 설현수는 장공주의 얼굴 너머로 누군가를 본 듯했다. 다른 이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아주 복잡한 눈빛이었다. 심화영은 그제야 설현수와 원씨 황족 사이에 원한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장공주는 황제의 친여동생 원해선이자 설현수가 죽이려는 사람이었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심화영은 신경이 곤두섰다. 그녀는 전강훈을 치료해야 한다는 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의 어머니가 공주라는 사실을 잊었다. 이제 어떡해야 할까? 심화영은 설현수가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설현수는 눈빛이 점점 평온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덤덤히 장공주를 바라보면서 차갑게 말했다. “마마께서는 전하께서 깨어나길 바라지 않으시나 봅니다.” 장공주는 흠칫했다. “이해는 되옵니다. 당시 마마께서는 전씨 가문에 시집가는 것을 원치 않으셨으니까요. 그의 아이를 낳은 것도 마마께는 치욕처럼 느껴지셨겠지요.” 장공주는 비틀거렸다. “당신은 대체 정체가 무엇이오?” 그때의 일을 알고 있는 사람도, 감히 그 일을 언급할 수 있는 사람도 이젠 많지 않았다. 심화영은 놀랐다. 그녀의 머릿속에 뭔가 떠오르려고 했지만 순식간에 사라졌다. 장공주는 전강훈의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고 전강훈의 존재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니 전강훈과 장공주도 사이가 별로 좋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아니지.’ 조금 전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던 것은 그런 정보가 아니었다. 그냥 관련이 있다고 하는 게 나을 듯했다. 심화영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관자놀이가 아프면서 뭔가 머릿속에 떠오를 것 같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짧은 대치로 인해 분위기가 점점 더 심각해졌다. 백세민은 초조한 나머지 발을 동동 구르면서 황급히 말했다. “마마, 지금 당장은 다른 방법이 없사옵니다. 어의들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지 않사옵니까? 그러니 이 노인을 안으로 한 번 들여보내는 것이 어떻사옵니까? 그리고 심씨 가문의 두 부녀 모두 이곳에 있지 않사옵니까? 그들이 정말로 불순한 의도를 품었다고 해도 당장 이곳에서 목숨을 잃을 생각은 없겠지요.” 백세민은 그렇게 말한 뒤 심화영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리고 감히 그럴 수도 없을 것입니다!” 심화영은 그의 눈빛을 이해했다. 백세민이 보기에 심화영은 늘 전강훈을 해치려고 한 자였다.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감추려고 하지도 않았으니 당연히 알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심화영은 고개를 들어 장공주를 바라보았다. “그렇사옵니다. 마마, 저희가 이곳에 있는데 뭘 걱정하시는 것이옵니까?” 장공주는 두 주먹을 꽉 쥐며 심화영을 한동안 노려보다가 이를 악물고 설현수를 가리켰다. “이자를 들여보내거라. 대신 너는 들어갈 수 없다. 만약 이자가 조금이라도 불순한 의도를 내비친다면 오늘 전부 죽여버릴 것이다!” 심화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설현수는 심화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어들인 뒤 걸음을 옮겨 전강훈의 사풍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장공주가 위엄 있는 목소리로 심화영을 향해 호통을 쳤다. “무릎을 꿇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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