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화
하지만 지금의 송연정은 고작 계집종일 뿐이었다.
송연정과 한통속이던 연월은 원래부터 심화영에게 눌려 살아왔고 마음속에 응어리가 가득했다. 그리 곱게 본 적도 없거니와 이제는 대놓고 틀어진 마당에 체면 따위 챙길 생각도 없었다.
그녀는 싸늘하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이 몸은 이제 도무지 그 소리를 들을 수가 없네요. 어차피 지금은 우리랑 똑같은 신세, 천한 계집종 아닙니까? 그러니 입 닥치고 ‘천한 것’ 소리 좀 입에 담지 마세요. 모르는 이가 들으면 본인을 부르는 줄 알겠네요.”
“푸억!”
송연정은 그 말을 듣자마자 피를 토하더니 그대로 눈을 뒤집고 땅에 쓰러졌다.
“연정아!”
유씨 부인은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마음에 쓰러진 딸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 달려가기 전, 그녀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심화영을 노려보았다.
심화영은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문득 코끝이 시큰거렸다. 가슴 어딘가가 무너져내리는 듯했지만 눈물은 끝끝내 떨어지지 않았다.
어차피 그 품, 그 손길, 그 따스함은 진작에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송로, 사람 둘 불러 유씨 부인과 송연정을 보내거라. 나머진... 내일 얘기하자.”
“예, 아씨.”
송로는 곧장 심화영의 명을 따라 계집종 몇을 불러 유씨 부인과 송연정을 질질 끌고 나갔다. 마치 죽은 개를 끌어내듯.
“대감!”
유씨 부인은 질질 끌려가며 심철호를 향해 피눈물 흘리는 듯한 눈빛으로 외쳤다.
“대감, 정말 이렇게 저희를 내팽개치실 겁니까?”
심철호는 얼굴이 마치 먹물을 들이부은 듯 시커멓게 변해 있었고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유씨 부인은 깨달았다.
‘남은 일은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 심화영이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그 ‘남은 일’이란 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마음을 짓눌렀다.
하지만 지금 그녀를 데려가는 이들은 심화영의 계집종인 송로와 고윤희의 혜심원 사람들이었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간 어떤 꼴을 당할

링크를 복사하려면 클릭하세요
더 많은 재미있는 컨텐츠를 보려면 웹픽을 다운받으세요.
카메라로 스캔하거나 링크를 복사하여 모바일 브라우저에서 여세요.
카메라로 스캔하거나 링크를 복사하여 모바일 브라우저에서 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