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화
‘전생에서 내가 혼약서를 모두 앞에서 찢어버리자 전하는 노여움이 불같이 치솟았지.’
그나마 마지막엔 전강훈이 나서서 심화영이 목숨만은 간신히 건졌지만 아버지와 오라버니는 그 일로 인해 왕부 대문 앞에서 무려 사흘 밤낮을 무릎 꿇고 빌어야 했다.
그렇게까지 했건만 전태산과 원해선은 끝내 화를 풀지 못했다.
그날 이후로 심씨 가문은 그 둘의 눈엣가시가 되었고 전태산은 조정의 여러 대신들과 손을 잡고 심씨 가문을 궁성 밖으로 몰아내려 했다.
집안 사정은 날이 갈수록 기울었고 덕망과 예의를 갖춘 맏이는 심씨 가문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황제의 친동생인 제왕의 측실로 들어갔다. 결국 언니의 인생은 그렇게 쓸쓸하게 허비되어 갔다.
이 모든 일을 다시 떠올리자 심화영의 마음은 죄책감으로 먹먹해졌다. 그녀는 심철호의 얼굴을 바라보며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 제가 어리석어 그랬습니다. 아버지께 고생만 드렸지요...”
심철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뭐, 그리 큰일까지는 아니다. 전하가 화를 낸 것은 당연하긴 하나, 아무리 성질이 드세다 해도 양가의 이익을 무시하긴 어려워. 게다가 혼례 서약은 아직 파기되지 않았고, 오늘 삼황자와 손 상서가 벌인 일도 있었지 않느냐. 이쯤 되면 바보라도 알겠다. 폐하와 삼황자 모두 이 혼사를 깨고자 하는 것이지.”
“그리하여 전하는 그저 화풀이 삼아 목소리만 높였을 뿐, 결국은 조용히 물러섰다.”
심화영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장공주 쪽은 어떠합니까?”
그녀가 진정 걱정하는 이는 전태산이 아니었다. 전태산은 다혈질에 무자비하긴 하나 어쨌든 심철호와는 함께 자란 사이였고 나름 의리가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원해선은 달랐다. 그녀는 원씨 가문의 혈육으로 궁궐 안에서 자라난 폐하의 친누이였다. 원씨 가문이 전씨 가문과 연을 맺었고 또 심씨 가문과도 얽혔으니, 정작 그녀가 어느 편에 설지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론대로라면 친자식인 명양왕의 편에 서야 하건만 원해선은 전태산과의 사이도 좋지 않았고 명양왕과도 왠지 소원한 듯했다.

링크를 복사하려면 클릭하세요
더 많은 재미있는 컨텐츠를 보려면 웹픽을 다운받으세요.
카메라로 스캔하거나 링크를 복사하여 모바일 브라우저에서 여세요.
카메라로 스캔하거나 링크를 복사하여 모바일 브라우저에서 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