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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한은찬은 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준 후 곧바로 차를 몰고 회사로 향했다. 회사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비서 강형주가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한은찬을 맞이했다. “대표님, 최근 소식인데 화서 제약 대주주가 바뀌었습니다.” 한은찬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미묘한 변화가 스쳤다. 강형주가 건넨 태블릿을 받아서 보니 화면에는 재경 아침 뉴스의 실시간 기사가 떠 있었다. [제약업계 선두주자, 화서 제약 지분에 큰 변동이 발생!」 [전임 회장 조경태가 어젯밤, 보유하고 있던 25%의 지분을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매수자의 신원은 아직 공개되지 않음.] 강형주는 한은찬의 뒤를 따라가며 계속 보고했다. “대표님, 확인한 바로는 그 익명의 매수자가 조경태의 25% 지분뿐만 아니라 지난 반년 동안 소액 주주들로부터도 꾸준히 지분을 사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거 다 합치면 현재 화서 제약의 지분 50%가 넘을 가능성이 큽니다.” 50%를 넘긴다는 것은 그 익명의 인물이 화서 제약의 실질적인 최고 결정권자 즉 대표이사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강형주는 안경을 고쳐 쓰며 말을 이었다. “대표님, 화서 제약은 현재 저희의 가장 큰 협력사 중 하나입니다. 저희와 화서 제약의 전략적 제휴는 5년 전, 사모님께서 직접 협상하신 것으로 이미 지난달에 계약 기간이 만료되었습니다. 하지만 재계약 문제는 계속 미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바뀐 대표이사가 누군지 아직 신원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은찬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유리 벽에는 그의 어두운 얼굴이 비쳐 있었다. “조경태는? 아무런 말도 없었어?” 강형주는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조경태는 오늘 아침 가족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떠났습니다. 개인 연락처는 아마 사모님만 알고 계실 텐데 지금 사모님의 상태가...” 한은찬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는 송해인이 깨어났다는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공개할 생각이 없었다. 화서 제약이 수많은 기업 중에서도 스카이 그룹과 손을 잡은 이유는 바로 송해인 때문이었다. 송해인은 예전에 조경태 아내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었다. 조경태는 그 은혜에 감사함을 표하기 위해 스카이 그룹에 기회를 주었다. 또한 임신 중이던 송해인은 압박 속에서도 탁월한 신약 개발서를 제출해 조경태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고 그 결과 스카이 그룹은 5년간의 장기 계약을 따냈다. 얼굴이 어두워진 한은찬은 눈빛에 서늘한 살기가 서려 있었다. “송해인이 없으면 스카이 그룹이 못 살아남는다는 말이야? 무슨 수를 쓰든 3일 안에 화서 제약의 새로운 대표이사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 “알겠습니다.” 강형주는 일단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분노를 억누르며 사무실로 들어선 한은찬은 문을 열자마자 임지영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임지영은 한은찬의 책상을 정리하느라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정장 차림에 흰색 미니스커트를 입은 채 허리를 숙이니 탄탄하고 아름다운 몸매 라인이 그대로 드러났다. 한은찬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지만 애써 시선을 돌렸다. 발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본 임지영은 한은찬에게 달콤하고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대표님, 좋은 아침입니다.” 한은찬이 대답하려 할 때 휴대폰이 울렸다. 보나 마나 별장의 유선 번호였다. 송해인이다. 한은찬은 지금 송해인 생각만 하면 화서 제약이 떠올라 짜증이 났다. 하지만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감정을 가다듬은 후 전화를 받았다. 그러고는 늘 그렇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 있어? 해인아.” 송해인이 말했다. “은찬아, 깜빡 잊고 말하지 못했는데 정원을 좀 손보려고 해. 문제없지?” 한은찬은 짜증 나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송해인이 말하는 ‘정원 손보기’란 대부분 잡초를 뽑는 정도일 것이다. 어쨌든 그 튤립 정원은 송해인이 그를 위해 손수 심고 가꾼 것이다. 그러니 그것들은 바꾸지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한은찬은 그저 웃음이 났다. 튤립을 좋아한다고 말했을 뿐인데 송해인은 직접 정원을 가꿨고 그러다가 손에 상처까지 입었다. 그리고 송해인에게 미소만 지어줘도 그녀는 모든 것이 가치 있다고 여겼다. 송해인의 모든 기쁨과 슬픔은 한은찬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사실 처음에는 한은찬도 감동받았던 적이 있었다. 아내로서 송해인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회사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줬을 뿐만 아니라 가정에도 충실하며 한은찬을 성심성의껏 돌봐주었다. 하지만 송해인은 너무도 투명했다. 너무 예측 가능해서 오히려 지루했다. “집안일은 네가 알아서 결정해.” 한은찬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나 이만 일 해야 해.” 하이힐을 신고 한은찬 곁으로 다가간 임지영은 일부러 맞장구를 쳤다. “대표님, 회의 들어가야 할 시간이에요.” 전화기 너머의 송해인은 임지영이 일부러 목소리를 낸 것을 듣고 속으로 비웃음을 터뜨렸다. 이 시간에 한은찬이 막 회사에 도착했을 텐데 둘은 벌써 같이 있나 보다. 뭐가 그리 급한지... 송해인은 ‘상냥하게’ 말했다. “알겠어. 그럼 일단 먼저 회의해. 나는 방해 안 할게.” 한은찬은 ‘응’이라고 대답한 뒤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전화가 먼저 끊기자 한은찬은 잠시 멈칫했다. ‘송해인이 먼저 전화를 끊는다고?’ 지금까지는 송해인은 항상 그가 먼저 끊기를 기다렸다... “대표님, 무슨 일 있어요?” 임지영의 목소리에 한은찬은 정신을 차렸다. 손바닥만 한 작은 얼굴을 쳐들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한은찬을 바라보는 임지영은 일부러 한은찬의 팔에 가슴을 살짝 스쳤다. 한은찬이 물러서지도 다가서지도 않자 임지영은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더 가까이 다가가 한은찬의 미간에 잡힌 주름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해인 언니가 또 기분 나쁘게 했어요?” 이번에는 확실히 송해인 때문에 화가 난 것이 맞지만 이유를 말하자니 너무나도 하찮았다. 그저 송해인이 먼저 전화를 끊었을 뿐인데... 깨어난 송해인이 왠지 예전과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 계속 든 한은찬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임지영의 손을 떼어내려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 내가 타이밍을 잘못 찾아왔네.” 남자의 가벼우면서도 놀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수님과 은찬이의 좋은 시간을 방해했네요.” 임지영은 얼굴을 붉히며 손을 거두고 작게 말했다. “선배...” 들어온 사람은 주명욱이었다. 주씨와 한씨는 대대로 교류가 깊은 집안으로 주명욱은 한은찬과 소꿉친구일 뿐만 아니라 대학 시절 룸메이트이기도 했다. 임지영이 나가자 한은찬은 약간 질책하듯 주명욱을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주명욱은 느긋하게 한은찬의 맞은편에 앉았다. “여기 외부인도 없는데 왜 그래? 게다가 우리 대학 때부터 그렇게 불러왔잖아...” 한은찬은 손에 있던 서류를 집어 주명욱에게 던졌다. 재빨리 피한 주명욱은 평소 방탕한 재벌 2세의 모습을 접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은찬아,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화서 제약의 새 주인 소식, 너도 들었지?” 한은찬은 머리가 아팠다. “지금 새 주인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사람을 보냈어.” 주명욱은 몸을 앞으로 숙이더니 한은찬에게 다가가 속삭이듯 말했다. “우리 집안 어르신께서 한마디 하시더라고. 화서 제약의 새 주인, 아마도 배씨 가문일 거라고.” ‘배씨’라는 단어를 들은 순간 한은찬의 얼굴에 미묘한 변화가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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