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화

한은찬은 잠시 동안 침묵을 지켰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때, 한준서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아빠는 지영 이모 좋아해요?” “준서야!” 한은찬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그는 목소리를 높이며 아이를 꾸짖었다. “그런 말, 다시는 하지 마.” 평소에는 다정한 아빠지만 갑자기 화를 내니 다섯 살 한준서는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어깨를 잔뜩 움츠렸다. 한은찬도 곧 말이 지나쳤다는 걸 깨닫고는 조용히 숨을 고른 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엄마를 잘 몰라서 그래. 엄마는...” 그는 손가락으로 핸들을 두드리더니 한참 생각하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가끔 너무 집착하고, 좀 피곤하게 굴 때가 있어.” 한준서가 임지영에게 경계심을 품고 있다는 건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괜히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더 큰 소동이 벌어질 게 뻔했으니 차라리 이렇게 돌려 말하는 편이 훨씬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준서는 이해가 안 되는지 머리를 긁적였지만 곧 졸음이 몰려와 다시 눈을 감았다. 차가 화서 제약 본사 앞을 지나갈 때였다. 한은찬은 무심코 창밖을 보다가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사촌 동생 한예준이었다. 그는 서류를 들고 차에서 내리더니 화서 제약 정문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안에서는 비서 차림의 여직원이 나와 그를 맞았다. 한은찬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설마 한예준이 벌써 화서 제약의 대표 배도현과 접촉한 건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만약 한예준이 화서 제약과 손을 잡는다면 한은찬의 자리도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그때 한태산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아버지.” 한태산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둘째네가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배도현이랑 직접 연락이 닿았다더라.” 한태산의 목소리는 낮고 묵직했다. “그리고 한예준이 제안한 프로젝트에 배도현이 흥미를 보였나 봐. 직접 만나겠다고까지 했으니 너도 서둘러야 한다 해인이는 어떻게 됐어?” 비록 며느리가 마음에 안 들긴 해도 송해인이 천재인 건 사실이었다. 대학 시절 발표했던 알츠하이머 연구는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