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그제야 성도현의 차가운 시선이 강나연에게 향했다. 그는 뒤에 서 있던 준수하고 기품 넘치는 남자들을 대충 훑어보더니 섬뜩할 정도로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강나연, 내가 분명히 경고했지. 서아에게 딴마음 품지 말라고. 너 혼자로는 부족해서 네 친구들까지 끌어들여?”
강나연은 도저히 성도현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내가 끌어들였다고?’
“성도현 씨, 미쳤어요? 눈이 달렸으면 똑바로 좀 봐요. 윤서아 씨가 먼저 내 친구들을 괴롭히고 있었어요!”
성도현이 더 말을 꺼내려 하던 그때, 윤서아는 성도현이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자 화가 난다는 듯 발을 구르더니 몸을 돌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서아야!”
성도현은 곧장 윤서아의 뒤를 쫓아갔다. 그의 다급한 목소리에서는 애정이 흘러넘쳤다.
“알았어, 알았어, 화내지 마. 내가 다 잘못했어. 앞으로는 절대로 어떤 여자랑도 단둘이 얘기하지 않을게. 응?”
그는 고개를 돌리며 경호원들에게 차갑게 명령했다.
“저 남자들 중에 윤서아를 만진 놈의 손이 뭔지 찾아내. 그리고 그 손을 부러뜨려 놔.”
말을 마친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윤서아를 쫓아 뛰쳐나갔다.
경호원들이 성도현의 말을 따라 앞으로 나서며 행동에 옮기려고 했다.
강나연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다급히 친구들을 막아서더니 목소리를 높여 호통쳤다.
“감히! 눈 크게 뜨고 똑똑히 봐요! 정말 얘네가 먼저 손을 댔나요? 윤서아가 먼저 괴롭힌 거잖아요! 이 사람들은 그냥 내 친구들이고, 이 바닥에서 다 알아주는 사람들이에요. 감히 손 대기만 해 봐요!”     
선두에 선 경호원은 무표정했다.
“괜히 나서서 저희 곤란하게 하지 마세요. 사모님의 친구분들이라 다 알아주는 집안 자제분들이라는 건 압니다만 대표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성 대표님 말 한마디면 가문 몇 개를 날려버리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저희도 대표님께 보고를 해야 해서요.”
강나연의 온몸이 차갑게 식었다. 분노와 무력감이 순식간에 그녀를 집어삼켰다.
그제야 강나연은 경호원의 말이 사실임을 알았다. 그녀는 난생처음 성도현에게 시집온 것을 이토록 뼈저리게 후회했다. 자신만 치욕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친한 친구들까지 연루되어 버렸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눌러낸 강나연은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
“좋아요. 그럼 내가 대신 보고할게요!”
그녀는 옆에 장식용으로 놓여 있던 금속 막대기를 집어 들더니 사람들의 경악스러운 시선 속에서 자신의 왼손 손목을 힘껏 내리쳤다.
우지끈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강나연의 손목은 힘없이 축 늘어졌다.
“나연아!”
친구들이 비명을 지르며 그녀를 부축하러 달려왔다.
강나연은 창백해진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애써 버티며 경호원에게 말했다.
“이제, 보고하러 가도 되겠죠? 이건 내가 친구들 대신 맞은 거니까요!”
경호원은 복잡한 눈빛으로 강나연을 바라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몸을 돌려 떠났다.
“너 진짜, 왜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해!”
친구들은 안타까운 목소리로 한숨을 내쉬며 강나연을 부축했다.
“차라리 힘을 합쳐서 싸우고 말지!”
“못 이겨...”
강나연은 고통에 떨리는 입술로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뼈는... 뼈는 언젠가 다시 붙어...”
친구들은 초조한 표정으로 강나연을 부축해 주며 병원으로 가서 그녀의 다친 왼쪽 손을 치료할 준비를 했다.
막 술집 문을 나서자 2층 발코니에서는 격렬한 다툼 소리가 들려왔다.
강나연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보았다. 어떻게 올라간 건지, 발코니 난간 끝에는 윤서아가 위태롭게 서 있었다!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마요! 나 아직 도현 씨 용서 안 했어요! 한 발짝만 더 오면 뛰어내릴 거예요!”
윤서아가 울면서 소리쳤다.
성도현은 몇 발짝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늘 침착하기만 하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서아야! 괜히 바보 같은 짓 하지 마! 당장 내려와! 내려오기만 하면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다 들어줄게!”
“정말로 뭐든지 다요?”
윤서아가 흐느끼며 물었다.
“정말이야. 내 목숨이라도 내놓으라면 내놓을게.”
강나연은 터무니없는 그 말을 들으며 점점 가슴이 시려지는 것 같았다.
‘얼마나 윤서아를 사랑했으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협박까지 다 들어주는 걸까?’
바로 그때, 성도현의 말에 흔들린 듯한 윤서아가 조심스럽게 발코니 난간에서 내려오려 했지만 발이 미끄러져 버리고 말았다.
“꺄악!”
사람들의 비명 속에서 윤서아는 난간 밖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바로 그 밑에는 막 문을 나선 강나연이 서 있었다.
“쾅!”
무거운 물체가 가속도를 내며 떨어질 때 생긴 엄청난 충격에 강나연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윤서아의 인간 방석이 되어 주었다. 이윽고 극심한 고통이 온몸을 휘감았다.
미친 듯이 위층에서부터 달려 내려온 성도현은 1층의 상황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기절한 윤서아를 안아 올렸다.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서아야! 서아야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당장 병원으로 데려가 줄게!”
그는 윤서아를 안고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차에 올라탔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가장 사랑하는 여자에게 깔려 생사조차 알 수 없어진 강나연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