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강나연의 친구들은 멀어지는 성도현의 차 뒤꽁무니를 보며 분노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지금은 중상을 입은 강나연을 서둘러 병원으로 데려가는 게 급선무였다.
다시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곁에는 간호사뿐이었다.
“깨어나셨어요, 강나연 씨? 친구분들이 제때 모시고 와서 다행이었어요...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 보시긴 했는데, 깨어나시면 알려달라고 하셨어요...”
“저는 괜찮아요.”
강나연은 다 쉬어서 갈라진 목소리로 말을 잘랐다.
“다 바쁜 사람들이니까 굳이 방해하지 마세요.”
간호사는 동정심 가득한 눈빛으로 강나연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간호해 줄 사람이 필요한데요...”
“저 혼자 할 수 있어요.”
강나연은 모든 연약한 감정을 숨기기 위해 눈을 꼭 감았다.
그 후, 길고도 고독한 치료와 회복의 날들이 이어졌다.
강나연은 홀로 밥을 먹고 약도 바르며 모든 것을 혼자서 처리했다.
퇴원하는 날, 그녀는 직접 퇴원 수속까지 밟고 별장으로 돌아왔다.
강나연은 천천히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때는 사랑을 가득 담아 골랐지만 성도현의 관심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선물들과 옷들, 심지어는 몰래 사 놨던 커플 아이템들까지 모조리 쓰레기통에 버렸다.
지친 몸을 이끌고 마지막 물건들을 치우고 있던 그때, 현관문이 열렸다.
성도현이 윤서아의 허리를 감싸안고 들어섰다.
그는 물건을 정리 중인 강나연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옆에 서 있던 집사에게 명령했다.
“서아가 요즘 몸이 좀 불편해서 당분간은 집에서 지낼 거예요. 햇빛이 가장 잘 드는 안방을 깨끗하게 정리해 두고 모든 물건을 새 걸로 바꿔주세요. 서아 취향에 맞춰서. 서아는 분홍색을 좋아하니까 침구는 실크로 하고, 커튼은 햇빛이 가장 잘 가려지는 암막 커튼으로 해요. 방에는 매일 신선한 흰 장미를 둬야 하고요, 서아가 먹을 음식은...”
성도현은 진지하고 섬세한 목소리로 아주 사소한 것까지 꼼꼼하게 지시했다.
계단 입구에 서서 그 말을 듣게 된 강나연의 심장은 얼음물에 푹 잠긴 듯 무겁고 차가웠다.
그녀는 처음 이 집으로 이사 왔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의 성도현은 비서를 시켜 강나연을 손님방으로 안내했고, 필요한 건 다 집사에게 얘기하라는 말만 전했다.
진짜 사랑과 꾸며진 사랑은 이토록 명확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강나연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위층으로 올라가려 했다.
“잠깐만요!”
윤서아가 갑자기 강나연을 불러 세우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그녀가 입은 원피스를 가리켰다.
“왜 도현 씨랑 커플룩을 입고 있어요?”
그 말에 강나연은 순간 멍해졌다. 그녀는 뒤늦게 성도현이 오늘 짙은 파란색 셔츠를 입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리고 강나연은 비슷한 색깔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둘의 접점이라고 하자면 그저 색깔이 비슷하다는 것뿐이었다.
강나연이 막 입을 열려던 그때, 윤서아는 이미 억지를 부리며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도현 씨는 내 거예요. 나 말고는 아무도 그 사람이랑 똑같은 색깔 옷을 입을 수 없다고요. 그거 당장 벗어요, 지금 당장 벗으라고요!”
강나연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건 그냥 우연일 뿐이에요...”
“몰라요! 벗어요!”
윤서아는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며 성도현의 품에 안겨 울었다.
“도현 씨, 저 여자가 나 괴롭혀요!”
성도현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더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옆의 하인들에게 명령했다.
“서아가 하는 말 안 들려? 쟤 옷 벗겨.”
“성도현! 미쳤어?”
강나연은 경악하며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오직 성도현의 명령에만 따르는 그 하인들은 빠르게 앞으로 다가와 강나연의 몸부림과 울음소리도 무시한 채 거친 손길로 그녀의 원피스를 잡아 찢었다!
쫙!
천이 찢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귀를 찔렀다.
곧 강나연은 속옷만 입은 채 거실 중간에 남아 하인들의 연민 또는 경멸 어린 시선을 견뎌야 했다.
수치심과 모욕감, 그리고 절망감 같은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성도현의 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으로는 조심해. 나랑 같은 색깔 옷 입지 않도록. 서아가 괜히 오해해서 상처받을까 봐 그래. 안 그럼, 다음에는 그냥 옷을 벗기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야.”
강나연은 몸을 바들바들 떨며 거의 기어가다시피 도망치듯 방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