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극심한 통증에 강나연은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소식을 듣고 달려온 사설 의사가 강력한 진통제와 소염제를 투여해 주며 등 뒤의 상처를 조심스럽게 치료해 주었다.
"다행히도 제때 치료했고요. 제일 좋은 약을 써서 흉터는 남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절대 상처에 물이 닿게 해서는 안 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셔야 합니다."
의사가 신신당부했다.
강나연은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눈물은 이미 말라버린 지 오래였다.
몸의 상처는 나을지 몰라도 마음의 상처는 이미 썩어 문드러졌다.
그 후로 며칠 동안, 강나연은 자신을 완전히 방 안에 가두어 버렸다. 마치 껍데기 안으로 숨은 달팽이처럼 다시는 밖으로 나가 그 가슴 아픈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래층에서 요란한 소음과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강나연은 오늘이 윤서아의 생일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성도현은 집에서 그녀를 위해 성대한 생일 파티를 열어주고 있었다.
결국, 방을 나선 강나연은 2층 난간 옆에 서서 외부인처럼 아래층의 파티를 내려다보았다. 성도현이 어떤 식으로 다정함과 인내심을 제멋대로만 굴어대는 어린 여자에게 쏟아붓고 있는지 조용히 지켜보았다.
윤서아는 때로는 케이크가 마음에 안 든다고 투덜거렸고 때로는 자신을 보는 게스트들의 눈빛이 이상하다고 불평하며 온갖 방법으로 억지를 부려댔다. 하지만 성도현은 예외 없이 그녀의 모든 행동을 용납하고 감싸주더니 직접 무릎까지 꿇고 윤서아의 치맛자락을 정리해 주기도 했다.
그러던 중, 누군가 실수로 2층에 있던 강나연을 보고는 무심코 말했다.
“사모님...”
그 한마디는 순식간에 윤서아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그녀는 술잔을 내던지며 성도현에게 소리쳤다.
“도현 씨! 그때 말했잖아요! 내가 정식으로 혼인 신고를 한 건 아니지만 도현 씨가 정말 사랑하는 건 나라고, 내가 도현 씨의 유일한 와이프라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저 여자가 무슨 자격으로 아직도 사모님 소리를 듣고 있어요?”
성도현은 즉시 윤서아를 달래주었다.
“알았어, 알았어, 자기야. 그냥 호칭일 뿐이잖아...”
“싫어요! 도현 씨는 거짓말쟁이예요.”
윤서아는 계속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 누구도 저 여자한테 사모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얘기해요. 그리고 난 저 여자한테 벌을 줘야겠어요!”
“사람들 불러서 수영장에 유리 조각 가득 채워 넣어달라고 해 주세요. 그리고 저 여자한테 수영장 안에 있는 그 유리 조각들을 전부 건져 올리라고 해요. 한 조각도 남김없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경호원들도 성도현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그가 침묵으로 윤서아의 의견을 받아들이자 어쩔 수 없이 급히 수영장으로 달려가 깨진 유리 조각 한 바구니를 쏟아부었다.
파티 현장은 순식간에 술렁거렸다.
성도현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강나연에게 직접 명령했다.
“서아 말 못 들었어? 내려와서 건져.”
2층에 서 있던 강나연의 온몸이 얼어붙었다.
“성도현 씨, 굳이 이런 식으로 나를 모독해야겠어요?”
“모독?”
성도현이 비웃었다.
“네 부모님 회사의 생사가 내 말 한마디에 달려 있다는 걸 굳이 상기시켜 줘야 할까?”
그 말에 강나연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제는 감히 우리 부모님의 피땀 어린 회사를 가지고 협박하는 거야?’
수영장 물속에서 번쩍이는 유리 파편들과 성도현의 차갑고 정 없는 눈빛을 마주한 순간, 강나연은 마지막으로 잡고 있던 희망의 끈까지 놓쳐버리고 말았다.
강나연은 한 걸음씩 계단을 내려왔다. 사람들의 동정 어린 시선 속에서 그녀는 한 걸음씩 차가운 수영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날카로운 유리 조각들이 순식간에 강나연의 피부를 베었다. 상처에서 흘러나온 선혈이 주변의 물을 붉게 물들였다.
조각 하나를 건져 올릴 때마다 손에는 새로운 상처가 늘어났고 뼛속까지 저릿한 고통이 밀려왔다.
하지만 강나연은 이제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듯 그저 기계적으로 동작을 반복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강나연은 마지막 유리 조각까지 모두 건져 올렸다.
그녀는 온몸은 흠뻑 젖어 있었고, 두 손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물귀신의 모습으로 수영장에서 걸어 나온 강나연은 성도현과 윤서아 앞에 섰다.
성도현은 그녀의 처참한 모습을 보면서도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저 차가운 얼굴로 자리에 모인 게스트들을 향해 선언했다.
"다들 똑똑히 봐 둬. 지금부터 이 집 안에서는 그 아무도 이 여자한테 사모님이라고 부르지 마. 그렇게 부르는 순간, 나 성도현과는 적이 되는 거야."
그는 강나연의 자존감과 체면을 완전히 짓밟았다.
강나연의 자아는 확실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는 피투성이가 되어 버린 몸을 이끌고 한 걸음씩 대문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칼날 위를 걷는 듯했지만 이 숨 막히는 진흙탕에서 벗어난다는 기쁨이 더 컸다.
저택 대문을 나서는 순간, 강나연의 휴대폰이 울렸다.
구청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강나연 씨, 성도현 씨와의 이혼 숙려 기간이 만료되었습니다. 오늘 최종 이혼 신고 수속을 밟으러 오셔야 하는데, 오실 건가요?”
강나연은 휴대폰을 쥔 채, 화면에 뜬 번호를 보며 낮게 웃기 시작했다. 그녀의 웃는 얼굴에는 눈물은 가득했다.
“네, 가능합니다. 지금 바로 갈게요.”
이혼 증명서를 받아 드는 순간, 강나연은 전례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도심의 거대한 전광판을 보고 결심했다.
‘성도현은 처음부터 내가 자기 와이프가 되는 걸 원하지 않았잖아.’
그렇다면 강나연은 성도원의 소원대로 둘의 이혼 소식을 전 세계에 알릴 생각이었다. 강나연은 더 이상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세상에 알려야 했다.
그녀는 차를 세우고 곧장 광고 회사로 가서 시내 모든 핵심 지역의 전광판 순환 광고권을 거액에 구매했다. 그녀가 설정한 광고 내용은 간단하고 명료한 한 문장이었다.
[공식 선언: 성도현과 강나연의 혼인 관계가 오늘부로 정식 해제되었다. 금일 이후로 두 사람은 아무 사이도 아니고, 서로의 인생에 간섭하지도 않을 예정이다. 강나연은 이제 싱글로 복귀했으니, 많은 남성분들의 고백을 기다린다고 전했다]."
모든 일을 마친 후, 강나연은 빌라로 돌아가 대충 짐을 챙기고 가장 이른 해외행 비행기표를 예약한 후, 주저 없이 이곳을 떠났다.
곧이어 비행기가 창공으로 솟아올랐다.
그녀는 점점 작아지는 도시의 모습을 보며 평정심을 유지했다.
성도현이 시내의 전광판에 그와 강나연의 이혼 광고가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도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강나연은 그저 자유로워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기뻤다.
다음 날, 여느 때처럼 날이 밝았다.
성도현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윤서아는 여전히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는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들고 업무를 처리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휴대폰 화면은 수많은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로 폭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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