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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송가빈은 휴대폰을 꺼내 들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박동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야?” “회사에 있는데 왜? 무슨 일 있어?” 송가빈은 그 말에 사이드미러를 바라보았다. 임수연과 손을 꼭 잡은 채 전화를 받고 있는 박동진의 모습이 보였다. 임수연이 뭐라고 얘기하려는 듯 고개를 돌리자 박동진은 여유롭게 손을 입가에 가져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 모습이 송가빈은 그저 웃길 뿐이었다. “퇴근할 때 너 좋아하는 디저트 가게에서 케이크 사다 줄까?” “됐어.” “너 예전에 그 말차 케이크 엄청 좋아했잖아.” “네 말대로 그건 예전 일이지.” 송가빈은 시선을 거두어들이더니 피곤한 듯 다시 눈을 감았다. “사람 마음이라는 건 원래 쉽게 변해. 엄청 좋아했던 것도... 지금은 꼴도 보기 싫을 수도 있는 거지.” 박동진이 조금 긴장한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뭐 기분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목소리가 이상한데?” “없어. 일해.” ... 현관문이 열리고 박동진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케이크가 상자가 들려 있었다. 위층으로 올라가자 송가빈이 앨범을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두 사람은 학생이었던 시절부터 어엿한 사회인이 되기까지 줄곧 함께했었다. 함께 여행하고 함께 맛있는 걸 먹고 함께 밤하늘을 바라보며 언제나 함께 웃었다. 그래서인지 앨범만 해도 5개가 넘었다. 박동진은 사진을 보더니 추억이 떠오르는 듯 송가빈의 뒤로 다가가 그녀를 살포시 끌어안았다. “갑자기 앨범은 왜 꺼냈어?” “왜 또 일찍 퇴근했어?” 송가빈이 물었다. “우리 자기 얼굴이 너무 보고 싶어서 빨리 끝내고 왔어.” 박동진은 그렇게 말하며 애교를 부렸다. 송가빈은 무표정한 얼굴로 앨범을 다시 상자 속에 넣었다. 또한 왼손에 꼭 쥐고 있던 라이터도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사실 그녀는 옛 추억이 생각나서 앨범을 꺼내 든 게 아니었다. 5개나 되는 앨범을 전부 다 태워버릴 생각으로 꺼내 든 것이었다. 임수연과 꽁냥거리느라 조금 더 늦게 올 줄 알았건만 예상외로 박동진은 일찍 들어왔다. 덕분에 송가빈의 계획은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자기야, 남편이 일찍 퇴근했는데 왜 표정이 안 좋지? 왜 안 반겨주지?” 송가빈은 자신의 몸에 둘린 그의 팔을 밀어내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이 더 중요하니까 그렇지.” 박동진은 마치 껌딱지처럼 다시 그녀에게 붙어왔다. “왜 그런 말을 해. 나한테 1순위는 언제나 송가빈이야.” 그는 일부러 입술을 그녀의 귓가에 가져가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자기, 요즘 좀 쌀쌀맞아진 것 같아. 혹시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전에는 박동진의 이런 행동이 마냥 좋고 달콤했는데 그의 외도를 알게 된 지금은 더럽고 역겹게만 느껴졌다. 송가빈은 그가 다른 여자를 안던 손으로 자신을 만지고 다른 여자와 키스했던 입술로 자신의 입술 위에 가져다 댄다고 생각하면 속이 다 울렁거렸다. 제일 역겨운 건 그의 몸에서 미세하게 나는 향수 냄새였다. 이건 남자들이 사용하는 향수가 아니었다. 고급 매장에서 자주 사용하는 여성향 향수였다. 왜 이런 냄새가 나냐고 물으면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만큼 임수연과 오래 붙어있었기 때문에. 송가빈은 메슥거리는 느낌에 박동진을 밀쳐버리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러고는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토를 했다. 박동진은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며 적절한 타이밍에 티슈를 건네주었다. 미간이 잔뜩 찌푸린 채 걱정하는 모습이 퍽 다정한 남편처럼 보였다. “갑자기 왜 그래? 혹시 뭐 잘 못 먹었어?” 시원한 주스를 가져다주러 올라온 도우미가 화장실에 나는 헛구역질 소리에 헐레벌떡 뛰어왔다. “어머, 이게 무슨 일이에요? 사모님, 괜찮으세요?” “대체 점심에 애한테 뭘 먹였길래 토하는 거지? 혹시 상한 식사재를 썼나? 위가 안 좋은 애라 주의하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는데 그거 하나 신경 못 써?” 박동진의 날 선 말에 도우미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입을 열었다. “사모님은 오늘 대표님께서 출근하시자마자 바로 외출하셨어요. 점심도 밖에서 드셨고요. 혹시 밖에서 비위생적인 음식이라도 드신 거 아닐까요?” 박동진의 시선이 다시 송가빈에게로 향했다.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밖에 음식은 더럽다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아주머니한테 해달라고 하면 되는데 왜 외출을 해서 몸을 상하게 해?” 가뜩이나 토한 것 때문에 머리가 아픈데 옆에서 잔소리해 대자 송가빈이 발끈하며 미간을 확 찌푸렸다. “내가 집 지키는 개도 아니고 외출할 수도 있는 거지, 왜 과민 반응이야?” “걱정돼서 한 말이잖아. 하아, 솔직히 너 혼자서 외출하는 거 불안해. 그러니까 앞으로는 가고 싶은 곳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나랑 같이 가.” 송가빈이 코웃음을 쳤다. “나한테 쓸 시간이 있기는 해?” ‘회사 일도 처리해야 하고 애인과 연인 놀이도 해야 하는 사람이 나한테 쓸 시간이 과연 있을까?’ 박동진은 송가빈은 빤히 바라보다가 다시 티슈를 들고 그녀의 이마에 난 땀을 닦아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너한테 시간을 안 쓰면 누구한테 써? 가빈아, 15년이나 함께 있었는데 아직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 그녀를 향하지 않는 그의 마음을 그녀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머!” 그때 도우미가 환하게 웃으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요새 감정 기복이 심했던 것도 그렇고 방금 토한 것도 그렇고, 사모님 혹시... 임신하신 거 아니에요?” 박동진은 그 말에 입꼬리를 위로 말아 올리며 눈을 반짝였다. “가빈아, 너 혹시...” “아니야.” 송가빈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코가 예민해져서 갑자기 속이 안 좋았을 뿐이야.” “그러지 말고 병원으로 가서 한 번 검사를...” “박동진!” 송가빈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우리 3개월 동안 안 했어. 기억 안 나? 그리고 3개월 동안 우리가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은 적도 손에 꼽아.” 최근 3개월, 박동진은 거의 밖에서 끼니를 해결했고 간간이 아침 정도만 집에서 먹었다. 처음에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박동진 정도가 되면 대접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으니까. 송가빈이 식사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는 매우 우연하게도 드라마 여자 주인공이 한 대사 한 줄 때문이었다. “남자가 밖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들어오는 횟수가 늘었다는 건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식사하는 시간이 더 즐거워졌기 때문이야.” 여자 주인공의 말대로 박동진은 정말 그녀가 아닌 다른 여자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함께 한 시간이 오래됐다고 오래간다는 법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사람은 늘 변하고 사랑도 늘 변하고 있었다. “혹시 같이 식사 안 한 것 때문에 화난 거야?” 박동진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미안해. 최근에 회사 일이 갑자기 많아지다 보니까 정신이 없었어. 앞으로는 오늘처럼 일찍 퇴근하고 너랑 함께 있는 시간을 더 늘려볼게. 그러면 될까?” “필요 없어.” 송가빈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던 대로 해. 너한테 제일 중요한 일에만 계속 시간을 쓰고 하라고.” “가빈아, 화난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감정 섞인 말을 뱉어버리면 어떡해.” “이게 감정에 휘둘려서 홧김에 하는 말 같아?” 박동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게 무슨 말이야?” 송가빈의 시선이 그의 손목 쪽으로 향했다. 빨간색 폴리 실로 만든 팔찌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직접 만든 티가 여실히 나는 그런 팔찌였다. 팔찌에는 다이아몬드 대신 달 모양의 장식이 달려있었다. 송가빈의 시선에 박동진은 조금 당황한 얼굴로 황급히 해명했다. “회사에서 직원들한테 주는 소소한 이벤트로 단체 주문한 팔찌야.” 송가빈은 시선을 다시 거두어들였다. “그래.” “마음에 들어? 내일 똑같은 거로 내가 가져다줄까?” “됐어. 나는 액세서리 같은 거 안 좋아해.” 박동진은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너는 뭐가 네 몸을 속박하고 감싸고 있는 거 싫어하잖아. 목걸이도 그렇고 팔찌도 그렇고. 그래서 가끔은 우리 기념일이나 너 생일 때 어떤 걸 선물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나, 가지고 싶은 거 하나 있는데. 그럼 그거로 줄래?” 박동진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원하는 건 다 줄 수 있어. 뭔데?” “내 이름으로 된 소행성이 갖고 싶어.” “그거야 쉽지.” 박동진은 얼른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지금 바로 준우한테 연락해서...” “그럴 필요 없어. 이미 정했고 너는 사인만 하면 돼.” “그래? 그럼 할게. 서류는 어디 있어?” “그쪽에서 보내오겠다고 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오는 대로 얘기할게.” “그래.” “그럼 얘기 끝났으니까 이만 나가. 나 옷 갈아입어야 해.” 송가빈이 박동진을 내쫓았다. “볼 거 다 본 사이에 굳이 가릴 필요 있어? 혹시 아직도 부끄러워?” “옷 갈아입을 때 누가 쳐다보는 거 별로야.” 박동진은 피식 웃더니 그녀의 미간에 가벼운 뽀뽀를 했다. “그래, 알겠어. 그럼 먼저 내려가 있을 테니까 옷만 갈아입고 얼른 내려와.” “응.” 박동진이 나간 후 도우미도 뒤따라 함께 방을 나섰다. 문이 닫히자 송가빈은 곧장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인스타에 들어가 보니 가장 먼저 임수연이 올린 게시물이 보였다. [늘 함께 하는 달과 별처럼 우리 낭군님과도 언제나 함께였으면 좋겠다. 오늘 하마터면 내 소중한 별을 잃어버릴 뻔했는데 낭군님 덕에 다시 찾을 수 있게 돼서 너무 기뻐.] 애정이 가득 담긴 문구와 함께 올린 사진은 박동진과 똑같은 팔찌를 끼고 있는 그녀의 손목 사진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의 것은 별 모양 장식이었다는 것이었다. “달과 별이라...” 송가빈은 휴대폰을 다시 내려놓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화장실로 들어가 앨범을 전부 다 태워버렸다. 그러고는 까맣게 타버린 흔적을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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