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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박동진이 피식 웃었다. “가빈이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와이프고 찬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친구인데 서로 사이좋게 지내면 안 돼? 왜 맨날 만나기만 하면 서로 싸우지 못해서 안달이야?” “정 변호사님이 우리 사이를 질투하나 보지 뭐.” 송가빈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박동진은 그녀 옆으로 다가가더니 허리를 감싸안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찬수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니까?” “알아. 유부녀라며.” “조만간 그 여자가 이혼하면 찬수도 성격이 많이 온화해질 거야.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자기가 참아.” 송가빈은 정찬수의 연애 사정 따위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다지 아름다운 얘기는 아닐 테니까. “그보다 아까 그건 회사에서 걸려 온 전화였어? 빨리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송가빈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 박동진은 그 말에 그제야 미안한 얼굴을 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맞아. 급한 일이라고 지금 당장 회사로 와달라네? 아무래도 오늘은 꼼짝없이 야근해야 할 것 같아. 나 기다리지 말고 일찍 자.” 송가빈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야근은 무슨. 애인이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러 가는 거면서.’ “알았어. 그럼 빨리 가봐. 오늘은 나도 일찍 잘 거야.” 송가빈이 그렇게 말하며 화장대 쪽으로 가려는데 박동진이 갑자기 그녀를 다시 품에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입을 맞추려는 듯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송가빈이 빠르게 얼굴을 돌리는 바람에 그의 입술은 그녀의 턱에 내려앉고 말았다. “왜 잘 다녀오라는 키스도 안 해주려고 하는 거야?” 박동진이 불만인 듯 눈썹을 끌어올렸다. 송가빈은 그의 팔을 떼어내며 담담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빨리 가봐야 한다며.” “알겠다.” 박동진이 피식 웃었다. “찬수가 곁에 있어서 부끄러운 거구나? 괜찮아. 찬수가 무슨 남이야?” “빨리 가.” 송가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휴대폰이 또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오늘 밤에 비가 내릴지도 모른다고 했으니까 절대 창문 열지 마. 알겠지?” 마지막 당부를 마친 후, 박동진은 빠르게 현관문을 나섰다. 이제 집에는 송가빈과 정찬수, 둘만 남게 되었다. “박동진도 갔는데 정 변호사님은 왜 안 가요?” 송가빈이 먼저 말을 걸었다. “정말 이렇게 가버린 거예요? 나랑 송가빈 씨를 두고? 남녀가 한방에서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정찬수가 흥미롭다는 얼굴로 말했다. “좋아하는 사람 있다면서요. 여자분이 결혼까지 했는데도 포기하지 않았던 정 변호사님이 고작 이성이랑 단둘이 한방에 있다는 이유로 이상한 마음을 먹겠어요?” “그거야 모를 일이죠.” 송가빈은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다 문득 뭐가 떠오른 듯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혹시 지금 시간 돼요?” “돼요.” “그러면 이왕 이렇게 된 거 함께 위임장을 작성해 볼까요?” “좋은 생각이네요.” 정찬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송가빈은 컴퓨터를 켜더니 인터넷에서 위임장 양식을 다운 받아 그럴싸하게 작성하기 시작했다. “어때요?” 정찬수는 그녀가 작성한 위임장을 한번 훑어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단호한 그의 얼굴에 송가빈은 입을 삐죽이며 자리를 양보했다. “그럼 전문가이신 정 변호사님이 작성해 주세요.” 정찬수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고는 10분도 안 돼 금방 완벽한 위임장을 만들어냈다. “2부 프린트해서 최대한 빨리 사인을 받아요. 하나는 나한테 보내고 하나는 송가빈 씨가 가지고 있으면 돼요.” “알겠어요. 빠른 시일 내에 사인을 받아볼게요. 그리고 이혼합의서도 다시 작성하고 싶은데.” “그럼 얘기를 한번 나눠보죠.” 정찬수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일단 둘 사이에 아이는 없으니까 양육권 쪽은 상관할 필요 없고, 문제는 재산분할이겠네요?” “부부 공동재산은 보통 5대5로 나누게 된다면서요? 하지만 유책 사유가 박동진한테 있으니까 박동진 4, 저 6으로 할게요.” 정찬수는 그녀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송가빈 씨라면 재산이고 뭐고 그냥 빨리 이혼해 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까 억울하더라고요. 그래서 합의서도 다시 작성하겠다고 한 거예요. 재산분할 쪽은 정 변호사님이 알아서 잘 쟁취해 주세요. 나와 박동진이 이혼하길 가장 바라고 있는 사람이 바로 정 변호사님이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정찬수는 피식 웃더니 의자를 돌려 컴퓨터를 바라보았다. “다른 요구는 또 없어요? 원하는 거 있으면 지금 얘기해요. 다 적어줄 테니까.” 송가빈은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양육권을 내가 가졌으면 해요.” 키보드를 두드리던 정찬수의 손이 우뚝 멈췄다. “혹시... 아이가 생겼어요?” 그의 시선이 송가빈의 배로 향했다. 송가빈은 카디건으로 배를 가리고 다시금 정확하게 얘기했다. “같이 기르던 강아지가 있어요. 강아지 양육권 얘기 한 거예요.” 송가빈과 박동진이 커플이 된 후 함께 보냈던 첫 번째 밸런타인데이 날, 박동진은 장미꽃이 아닌 웨스티 강아지를 그녀에게 선물해 주었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지 2개월밖에 안 된 작은 강아지였다. 그런데 한 손에 다 들어올 정도로 작았던 강아지가 어느새 열다섯 살이 되었다. “15살이에요. 노견이죠. 그래서 자주 아프기도 하고 지금은 눈도 실명된 상태예요. 만약 그 아이가 박동진의 곁에 남게 되면 제대로 된 챙김을 받지 못할 거예요. 새로운 안주인이 노견도 보살펴줄 거라는 보장이 없잖아요. 그래서 내가 꼭 데려가고 싶어요.” 정찬수는 잠시 침묵하다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만약 박동진이 강아지를 인질 삼아 이혼을 안 해주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강아지를 포기하고 이혼해 줄 거예요, 아니면 일단은 이혼을 포기하고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기다릴 거예요?” 송가빈은 시선을 내린 채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음... 그럼 재산분할을 포기하는 거로 협상해 볼게요.” 그녀의 답변에 정찬수는 뭔가를 생각하듯 책상을 툭툭 두드렸다. “내 말 듣고 있어요? 얼른 합의서에 적어주세요. 강아지는 꼭 내가 데려가는 거로 할 거라고.” 송가빈이 재촉했다. “재산분할을 포기할 필요 없어요. 강아지가 그렇게 소중하다면 차라리 지금 바로 강아지를 어딘가 다른 곳에 맡겨버려요.” 정찬수가 대안을 내놓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노견이라 잔병치레가 많아요. 그래서 강아지 호텔에 맡긴다고 해도 솔직히 불안해요. 친구들한테 맡기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다들 바빠서 제대로 챙겨주지 못할 거예요.” 그녀의 말에 정찬수가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내가 대신 맡아줄게요. 마침 배당된 사건이 적어서 시간에 여유가 있거든요.” 송가빈이 미심쩍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좋아하는 여자분 유혹하느라 시간이 많이 없을 것 같은데?” “마침 내가 좋아하는 여자도 강아지를 매우 좋아하거든요.” 정찬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송가빈은 눈빛으로 양해를 구한 후 메시지를 확인했다. [사모님, 신상이 들어와서 사진 보내드려요. 마음에 드시는 거 있으시면 저한테 얘기해주세요.]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임수연이었다. 그녀가 보낸 사진을 본 정찬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홍보 문자예요? 액세서리 같은 거 안 좋아하니까 다시는 보내지 말라고 못 박아둬요. 아니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걸 보낼 거예요.” 송가빈은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임수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송가빈: 늦은 시간인데도 일을 하시네요? 남자 친구랑 데이트 안 해요?] [임수연: 남자 친구보다는 일하는 게 더 중요하죠. 하하하.] [송가빈: 직업정신이 대단하네요.] [임수연: 사실 남자 친구가 그것 때문에 불만이 많아요. 자기랑 놀아줄 시간조차 못 낸다고. 그런데 오늘 마침 사모님께서 방문한다는 연락을 주지 않으셨잖아요. 그래서 간만에 일찍 퇴근해 남자 친구를 달래줬어요.] [송가빈: 혹시 내가 연애 사업에 방해가 됐나요?] [임수연: 전혀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사모님이 방문해 주시길 기대하고 또 기대하는 사람이에요. 아까 제가 보내드린 사진 중에 마음에 드시는 거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24시간 대기하고 있을게요.] 송가빈은 그녀의 말에 재밌는 생각이 난 듯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럼 지금 바로 매장으로 가서 봐도 될까요? 실물을 보고 싶거든요.] 그녀는 박동진과 임수연의 시간을 제대로 방해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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