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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문을 열자 유아람은 최태준에게 과일을 먹여주고 있었다. 홍서윤이 흠뻑 젖은 모습을 본 유아람은 급히 일어나 수건을 찾아 물기를 닦아주려 했지만 홍서윤은 그녀의 손길을 피하며 목걸이는 테이블 위에 두고 무표정하게 말했다. “목걸이는 찾아왔으니 더 할 말이 없으면 저는 먼저 가볼게요.” 최태준은 그런 홍서윤을 빤히 보았다. 두 눈은 차분했지만 그것은 꼭 폭풍전야의 고요함에 가까웠다. 홍서윤은 최태준이 대답하지 않자 돌아서려고 했고 곧 손목이 세게 붙잡혔다. 힘이 너무도 강해 하얀 손목에 금세 붉은 자국이 올랐다. “아직도 삐진 거냐?” 최태준은 홍서윤을 꽉 잡은 채 놓지 않았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경고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 놓아버리면 정말로 홍서윤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이런 생각은 알 수 없는 공포를 불러왔고 이성마저 잃고 말았다. 유아람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리고 홍서윤의 손목을 붙잡은 최태준의 손을 억지로 떼어내며 웃었다. “태준 씨, 서윤이가 놀라잖아요. 서윤이가 아니라고 했으면 아닌 거겠죠. 그만 괴롭혀요.” 홍서윤은 손목을 한 번 보고는 아무 말 없이 떠났다. 유아람은 곧장 홍서윤을 뒤따르며 최태준에게 말했다. “혹시 바보 같은 짓이라도 할까 봐 제가 따라가 볼게요.” 건물에서 나온 홍서윤은 지하철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잠깐만!” 유아람은 홍서윤의 앞을 막아서며 따지듯 말했다. “우리 오빠 일, 네가 한 거지? 네가 태준 씨한테 뭐라고 해서 그런 거잖아! 아니면 태준 씨가 왜 우리 오빠를 감방에 보내겠어!” “유아람 씨 오빠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본인이 더 잘 알겠죠. 아무도 누명을 씌운 게 아니에요.” 홍서윤은 시간을 확인하더니 지하철이 도착할 시간이었던지라 가방에서 카드를 꺼냈다. “이 카드, 최태준 씨에게 전해주세요. 그리고 남은 건 나중에 갚겠다고 해주세요.” 유아람은 카드를 움켜쥐고 무언가 말하려고 했으나 홍서윤은 이미 가버리고 없었다. 손에 쥔 카드를 보며 유아람은 다른 계획을 떠올렸다. 출국 전날 밤, 홍서윤은 짐을 다시 확인하며 빠진 게 없는지 살펴본 후 하품을 하며 일찍 자려고 했다. 막 누운 순간 핸드폰이 울렸고 발신자를 보자 홍서윤은 잠시 멍해졌다. 몇 초 망설였지만 결국 전화를 받았다. 핸드폰을 귀에 대자 상대의 고른 숨소리만 들려왔고 최태준도, 홍서윤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2분쯤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홍서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최태준 씨, 할 말이 없으면 이만 끊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서윤아.” 남자의 낮고도 심란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핸드폰을 든 홍서윤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생각해보니 4년 전 그 일 이후 최태준은 줄곧 자신의 풀네임만 불렀고 이렇게 다정하게 ‘서윤아'라고 부른 건 처음이었다. 홍서윤은 쓴웃음을 지었다. 다시금 그렇게 불려도 더는 처음처럼 두근거리지 않았다. “네.” 홍서윤은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이 통화가 아마도 마지막일 것이니 조금 더 기다려주는 건 상관없었다. “의사를 불렀으니까 이따가 네 집에 도착할 거야. 문 열어줘.” 한참 후 최태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홍서윤은 모든 게 우습게 느껴졌다. 여하간에 채찍 주고 당근 하나 주는 식이지 않은가. “아뇨. 전 괜찮으니까 그럴 필요 없어요. 전 그냥 일찍 자고 싶을 뿐이에요.” 말을 마친 홍서윤은 바로 전화를 끊으려 했다. “서윤아!” 최태준도 뭔가 눈치를 챈 것인지 내뱉는 목소리엔 다소 힘이 빠져 있었다. 왠지 모르게 오늘따라 홍서윤의 목소리를 더 듣고 싶었다. 마치 정말로 자신의 곁에서 떠나 더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았으니 말이다. 목걸이 일은 설령 홍서윤이 한 짓이라고 해도 한마디만 부드럽게 말하면 용서해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대체 왜 고집을 부려 그런 고생을 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홍서윤은 시계를 보았다. 밤 열한 시, 꽤 늦은 시각이었다. “아저씨.” 홍서윤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다소 홀가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부르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그동안 키워준 은혜에 감사드리고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아저씨 바람대로 딱 그 정도고 더 이상 아저씨한테 그런 감정 없어요. 그러니까 행복하게 사세요.” 순간 최태준의 목이 메었다. 무언가 말하려고 했으나 홍서윤은 이미 전화를 끊어버린 후였다. 갑자기 몸 안의 무언가가 빠져나간 것처럼 공허한 기분이 들었다. 공항. 홍서윤은 핸드폰에서 유심을 뽑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본 그녀의 눈에는 미련과 해방감이 담겼으나 이내 담담한 눈빛으로 바뀌었다. 그러고는 망설임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탑승구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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