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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홍서윤은 이어서 말했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할 권리가 있어요. 저는 제 마음을 표현했고 최태준 씨는 거절했어요. 물론 저는 더 이상 매달리지 않을 거예요. 지금도, 앞으로도.” 최태준은 그 말을 듣고 알 수 없는 짜증이 치밀며 불안감까지 느껴졌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문득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홍서윤이 자신의 곁을 떠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곧 그는 이 생각을 지워냈다. 홍서윤은 일곱 살 때부터 자신을 따라다니며 순종적이고 얌전했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떠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홍서윤은 목이 꽉 막혀 답답했지만 애써 억누르고 다시 입을 열었을 때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저는 더는 최씨 가문과 아무런 관계가 없고 제가 하는 모든 일도 최씨 가문과는 무관합니다.” 홍서윤은 최씨 가문에서 나와 아무렇게나 지낼 곳을 하나 얻어 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누군가 전화를 걸어와 우연이 승마장에서 다리를 다쳤으니 지금 와 달라고 했다. 우연은 그녀의 유일한 친구였고 다소 까칠하긴 했지만 다른 면에서는 자신과 아주 잘 맞았다. 우연이 다쳤다는 말을 듣자마자 홍서윤은 바로 주소를 받아 달려갔다. 항원의 승마장은 외부인 출입이 금지된, 상류층 권력이 있는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유흥 장소였다. 설령 개방된다고 해도 입장료만 억 단위였던지라 웬만한 졸부들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최태준이 홍서윤을 데리고 몇 번 온 적이 있어 대문 관리인들은 그녀를 알아보고 아첨을 부리며 들여보냈다. 홍서윤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누군가 경박하게 휘파람을 불었다. “휘이, 이게 누구야. 우리 홍서윤 씨 아냐? 혼자 왔나?” 유지욱은 멋대로 홍서윤의 몸을 위아래 훑어보았다. 그들은 홍서윤이 밖에 나오면 최태준도 분명 따라왔을 거로 생각했다. 누구나 최태준이 홍서윤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아니었더라면 홍서윤의 얼굴만으로도 이미 오래전에 그들의 손에 농락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홍서윤은 최씨 가문과 연을 끊었고 최태준도 더는 홍서윤을 챙겨주지 않았으니 홍서윤을 갖고 노는 건 그들에겐 아주 쉬운 일이 되었다. 홍서윤은 그가 누군지 몰랐지만 그의 눈에 담긴 불순한 마음을 눈치채고 무시해 버렸다. 이내 직원에게 우연이 있는 곳을 물어 찾아갔다. 승마장에는 전문 의료실이 있었고 홍서윤도 몇 번 가본 적이 있는데 지금 가는 방향은 완전히 달랐다. 의심이 피어오른 홍서윤은 걸음을 멈추더니 태연하게 말했다. “제가 물건을 두고 와서요. 굳이 안내 안 해주셔도 될 것 같아요. 이따가 제가 알아서 찾아갈게요.” 조금 전까지 공손하던 직원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홍서윤 씨, 뭘 두고 오셨는지요? 말씀만 하시면 제가 가져다드리겠습니다. 굳이 번거롭게 가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말에 홍서윤은 점점 더 수상함을 느끼며 돌아서려고 했지만 이내 뒤에서 우람한 두 남자가 나타나 홍서윤의 길을 막아섰다. 그들은 홍서윤이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억지로 방 안으로 끌고 들어가 쾅 소리와 함께 문을 닫아버렸다. 불안에 휩싸인 홍서윤은 세차게 문을 두드리며 방법을 모색하던 순간 갑자기 문이 열리고 어두운 그림자가 들어왔다. 홍서윤은 눈을 크게 뜨며 들어온 남자가 방금 밖에서 휘파람 불며 말을 건 그 남자임을 알아챘다. 유지욱은 홍서윤을 오래전부터 탐내 왔고 우연의 다리도 그가 고의로 다치게 한 것이었다. 이 모든 건 홍서윤을 유인하기 위한 계약이었다. 홍서윤은 당연히 그가 알려준 승마장으로 오게 되었고 유지욱의 예상대로 덫에 빠졌다. 원래는 서두를 생각이 없었지만 유아람이 해도 된다고 했으니 더는 늦출 이유가 없었다. 유지욱은 미리 준비해둔 술을 꺼내 따르며 말했다. “최태준이 널 버렸잖아. 하지만 내가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내 곁에만 있어. 최태준 못지않게 잘해줄 테니까.” 홍서윤은 지금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걸 알았던지라 그의 술잔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문득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받아들여 요염하게 웃었다. “마침 목이 말랐는데 한 잔 마시고 얘기해요.” 유지욱의 눈에는 흥분과 탐욕으로 가득했고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그녀를 빤히 보고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유지욱은 홍서윤이 무척이나 아름답다는 걸 알았다. 피부는 깐 달걀처럼 매끈했고 손가락으로 누르면 금방이라도 깨질 듯한 여린 얼굴, 이목구비마저 정교했다. 최태준의 옆에서 웃고 떠들던 홍서윤의 모습은 꼭 산속에 사는 어린 사슴 같아 여리고 연약해 보호 본능을 자극했다. 그러나 유지욱은 차가운 무언가에 의해 회상을 마치게 되었고 눈앞의 무해했던 사슴은 발톱을 드러낸 고양이로 변해 거칠게 그를 할퀴었다. 홍서윤은 술을 받자마자 망설임 없이 유지욱의 얼굴에 들이부었고 그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얼른 욕실 쪽으로 달려갔다. 문이 분명 잠겨 있을 거라 알았기에 차라리 욕실에 숨어 한숨 돌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덜덜 떨리는 손을 억누르며 연락처를 열었고 시선이 첫 번째 번호에서 멈췄다. 최태준과는 이미 연을 끊었으니 아무리 그에게 연락한들 소용이 있을지 없을지 몰랐다. “문 열어!” 유지욱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오자 홍서윤은 불안과 공포에 숨이 턱 막혀왔다. 그는 얼굴에 뚝뚝 흘러내리는 술을 닦으며 피식 웃었다. 올라간 입꼬리가 그를 더욱 음험하게 만들었다. “얌전히 굴어. 네가 먼저 문을 열고 나오면 조금이라도 부드럽게 대해줄게. 그렇지 않으면 침대에서 죽게 돼도 내 탓 하지 마.” 홍서윤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고 손도 덜덜 떨렸지만 결국 그 번호를 누르고 말았다. 하지만 통화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문이 세차게 부서지며 열렸고 핸드폰은 벽으로 던져졌다. 둘 다 눈치채지 못했지만 핸드폰이 홍서윤 손에서 벗어나며 우연히 통화 버튼을 눌러버렸고 2초 만에 연결됐다. 유지욱은 홍서윤의 손을 꽉 잡으며 세면대에 밀어붙이더니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는 추잡한 말을 내뱉었다. “여기가 좋아? 진작 말하지 그랬어. 내가 실컷 만족시켜줄게!” 욕실 조명 아래 홍서윤의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 서려 있었고 일렁이는 눈물이 오히려 파괴하고 싶은 욕망을 더 자극했다. “꺼져! 내 몸에 손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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