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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구경하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숨을 죽였다가 곧이어 믿기 힘든 듯 탄성을 터뜨렸다. “와, 브레이크샷에 세 개가 들어갔어?” “저 여자 장난 아닌데!” “에이, 그냥 운빨 아니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느긋하던 꽃무늬 셔츠 남자의 얼굴이 단숨에 굳고, 눈빛에는 긴장감이 스쳤다. 고성은은 주위의 수군거림을 못 들은 듯 다음 포인트로 걸어가 허리를 숙여 다시 조준했다. 동작은 물 흐르듯 매끄러웠고, 한 점의 미련도 남기지 않았다. 툭! 툭! 툭! 남은 공들이 프로그램이라도 깔린 듯 정확한 궤적을 따라 차례차례 포켓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치 흐르는 구름, 끊김이 없는 물줄기와 같았다. 여섯 번 만에 완벽히 클리어했다. 마지막 골든 9번이 포켓에 떨어지자, 당구 구역은 음악만 흘러나올 뿐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차가운 분위기의 고성은을 멍하니 바라봤다. 표정만 보면 외계인이라도 발견한 줄 알 것이다. 몇 초 뒤, 물결처럼 밀려오는 환호와 비명이 천장을 뚫을 기세로 폭발했다. “미쳤다! 여섯 큐 클리어!” “대박! 진짜 고수네!” 열기는 순식간에 전보다 열 배는 더 뜨거워졌다. 2층, 시야가 탁 트인 VIP 룸. 거대한 통유리창 앞에는 슈트 차림의 남자 몇 명이 서 있었고,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뿜어냈다. 그중 맨 앞의 남자는 곧게 뻗은 소나무처럼 서 있었고, 전신에서 거리감이 느껴지는 냉기가 흘렀다. 그는 손에 위스키 잔을 들고 있었다. 잔 안에서 술이 잔잔히 흔들리며 깊고 가늠하기 힘든 그의 눈동자를 비추었다. 그 시선은 떠들썩한 인파를 꿰뚫고, 아래층에서 몸을 숙여 샷을 날리는 실루엣에 정확히 꽂혔다. 차분하고 집중한 옆 모습, 날렵하고 정밀한 동작, 그리고 순간적으로 현장을 뒤집어 놓는 그 장면. 박재현의 눈빛은 복잡했다. 그 속에는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탐색과 경탄이 스며 있었다. ‘저 여자한테 이런 면도 있었구나.’ 오늘은 거침없고, 자신감 넘치고, 빛이 터져 나오는 모습이었다. 그가 기억하던, 늘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있던 고성은과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예전에는 그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그녀가 너무 잘 숨겨 왔던 걸까? 아래층, 내기는 계속되었다. 꽃무늬 셔츠 남자의 이마에는 진땀이 맺혔다.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이번에는 그가 먼저 브레이크샷을 할 차례였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침착해지려 애쓰며 세밀하게 조준했다. 실수는 단 한 번도 허락되지 않았다. 탁! 깔끔한 브레이크, 공 하나가 들어갔다. 그는 안전하게, 그러나 최선을 다해 매 샷의 정확도를 지켜 가며 공들을 포켓에 밀어 넣었다. 결국 8큐 만에 테이블을 비웠다. 괜찮은 기록이지만 고성은의 6큐 클리어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정수희는 팔짱을 끼고 고양이처럼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졌네요? 그러면 약속 지켜야죠?” 그녀는 일부러 손짓을 하며 임시로 세운 작은 무대로 시선을 유도했다. 주변은 다시 한번 술렁거렸다. “무대로! 무대로!” “벗어라! 벗어라!” 꽃무늬 셔츠 남자의 얼굴은 파랗다 못해 새하얘졌다. 자신이 질 거라 생각도 못 했고, 상대가 이렇게 몰아붙일 줄도 몰랐다. 사람들 앞에서 스트립 댄스라니, 이는 사회적 사망을 선고받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잠깐! 방금은 내가 방심했어요! 한 판 더 해요!” 그는 고성은을 가리키며 목청을 높였다. “이번에도 지면 오늘 골든벨 울릴게요!” 순간, 홀 전체가 더 뜨겁게 들끓었다. “대박! 통 크게 쏜다!” “한 판 더! 한 판 더!” “제발 받아줘요! 우리 혜택도 좀 챙겨줘요!” 사람들은 환호하며 당장이라도 고성은 대신 큐대를 잡을 기세를 보였다. 정수희는 고성은을 보며 눈빛으로 묻었다. 고성은은 별 상관없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수희는 즉시 결정했다. “좋아요! 기회 한 번 더 줄게요! 대신 이번에 지면 번복 없어요.” 고성은은 손짓으로 먼저 하라고 양보했다. 이번에는 꽃무늬 셔츠 남자도 더 이상 겉치레 없이 큐대 앞으로 나섰다.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집중되어 있었다. 틱! 브레이크샷, 힘과 각도 모두 완벽에 가까웠다. 단번에 세 공이나 성공했다. 관중석에서 감탄이 터졌다. 이번에는 남자도 진심을 드러낸 듯했다. 이어지는 두 번째 큐. 그는 숨까지 죽이며 계산 후 샷을 날렸다. 6큐 클리어 성공. 드디어 고성은과 같은 기록을 냈다. 분위기는 팽팽하게 얼어붙었다. 사람들은 이제 고성은이 이기려면 첫 큐에 네 공을 넣어야 한다고 속닥거렸다. 그건 하늘의 별을 따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남자의 시선이 고성은에게 박혔다. 도발도 있고, 걱정도 있었다. 이제 고성은의 브레이크 차례. 모든 시선이 또다시 그녀에게 쏠렸다. 그녀는 서두르지 않고 큐 랙으로 가서 좀 더 무거운 큐로 교체했다. 테이블로 걸어가 흰 공을 집어들고, 매끈한 표면을 손끝으로 쓰다듬으며 고요한 눈길을 유지했다. 마치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내기가 아니라 평범한 연습처럼 말이다. 또한 바로 공을 놓지 않고 테이블을 반 바퀴 돌며 최적의 각도를 찾았다. 그 여유로움은 시끄러운 주변과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마침내 그녀는 멈춰 서서 흰 공을 브레이크 존에 내려놓았다. 살짝 허리를 굽힌 몸매는 우아했고, 집중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안정된 오른손이 큐를 잡고, 왼손은 말끔한 브리지로 녹색 테이블 위에 얹혔다. 눈을 가늘게 뜨고 조준하는 순간 세상은 그녀와 공만 남은 듯 고요했다. 슥, 쾅! 큐가 번개처럼 뻗어 나갔고, 힘은 충분했지만 완벽히 제어됐다. 흰 공은 화살처럼 다이아몬드 모양의 공 더미 꼭짓점을 강타했다. 다음 순간, 믿기 힘든 광경이 터졌다. 공들이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폭발하며 튀어 오르더니,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고 기이하리만큼 정확한 곡선을 그렸다. 한 공, 두 공, 세 공... 무려 아홉 개의 공이 자석에 끌린 듯 연달아 서로 다른 포켓으로 빨려 들어갔다. 톡! 톡! 톡! 포켓에 떨어지는 경쾌한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지며 모두의 심장을 두드렸다. 단 한 큐에 아홉 공이 들어갔다. 이는 전설 속의 골든 브레이크였다. 클럽 전체가 죽은 듯 적막해졌고, 음악조차 멎었다. 핀 하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고요했다. 믿을 수 없는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입을 벌린 채 굳어 있었다. 방금까지 남자의 2큐 클리어에 환호하던 군중은 누가 리모컨으로 일시 정지를 누른 듯 멈췄다. 3초 후. “와아아아!!!” “나 취한 거 아니지? 한 큐에 9개 전부 들어간 거 맞지?” “세상에! 무슨 신의 장난이야?” “나인볼 여신이다! 대박이야!” “대박, 나 꿈꾸는 거 아님?” “나 멍해졌어. 좀 현타 오는데?” 비명과 감탄, 믿기 힘든 외침이 쓰나미처럼 일어나 클럽 지붕을 날려 버릴 기세였다. 열기는 아까보다 열 배는 더 치솟았다. 그 시각, 2층 VIP 룸.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날카로운 눈빛이 아래층의 경이를 선명히 담아냈다. 놀라움은 그의 시선에서 번쩍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기적을 만든 그 여자의 큐를 거두며 무심히 돌아서는 옆 모습을 바라보며, 보이지 않을 만큼 얕은 미소를 지었다. “와, 저 사람이 진짜... 형수님?” 고세형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정수희가 아니었다면 눈을 의심했을 거다. 박재현은 손에 든 술잔을 내려놓았다. 잔이 테이블에 닿으며 작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이어 그는 긴 다리를 움직여 망설임 없이 아래로 향했다. 고세형도 뒤이어 달려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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