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화
“박재현, 네가 무슨 결정을 하든 누구와의 관계를 공개하든 나랑은 상관없어.”
말투는 담담했다. 마치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 무심한 태도였다.
“하지만 제발 할아버지 건강은 좀 생각해 줘.”
박재현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고성은, 네가 아직도 무슨 박씨 가문의 맏며느리인 줄 알아? 설마 너도 할아버지처럼 해명문 같은 걸 요구하는 거야?”
말투엔 조롱이 묻어 있었다.
고성은은 덤덤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한때는 익숙했던 얼굴이 지금은 낯설어 무서울 지경이었다.
“필요 없어, 얽히고 싶지도 않고. 나도 내 주제는 알아.”
3년이 지나도 달라진 건 없었다. 그렇다면 더는 손을 대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럼 잘됐네. 박씨 가문 일이건 뭐건, 오늘부터 너랑은 무관해. 너나 잘 챙겨.”
그는 몸을 바로 세우며 그녀 앞에 다가가더니 억지로 그녀를 돌려세웠다.
“내일 오전 9시, 구청 앞이야. 늦지 마.”
고성은은 그를 올려다보았다. 예전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머물던 눈빛이었지만 지금은 아무런 온기도, 미련도 없었다. 차갑게 멈춰있는 눈빛엔 상심은커녕, 흔들림조차 없었다.
“그래.”
그녀는 짧게 대답했다.
준비해 온 말들이 목구멍에 걸려 나오질 않았다. 이렇게 덤덤한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당황스러울 만큼 고요했다. 그는 여러 가지 장면을 상상했었다. 울며 매달리는 모습, 보상을 요구하는 모습, 그런데 이건 전혀 생각지도 못한 평온함이었다.
잠시 침묵하던 박재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은심각을 좋아하는 거 알아. 그거 너한테 넘겨줄게.”
화은 장원의 은심각은 둘 사이가 아직 따뜻했던 시절, 매달 함께 시간을 보냈던 곳이었다. 그녀가 백합을 좋아한다는 말을 집사에게 전해 듣고 그는 그곳에 백합을 가득 심게 했다. 세계 곳곳에서 어렵게 들여온 아홉 가지 품종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백합들이었다.
은심각이라는 단어는 날카롭게 그녀의 가슴을 찔렀다. 그녀는 주먹을 쥐었지만 그 어떤 감정도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거긴 원래 강세린을 위해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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