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화
박 대표가 사모님에게 신경을 쓰기 시작한 걸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감정의 전환점이라도 온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강세린이 아직도 깝죽대고 있는 걸 보면 임준기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도 사모님이 이번에는 진짜 제대로 한 방 먹였다.
시뻘건 혼인 신고 증명 한 장으로 뇌절 팬들 입을 싹 닫게 한 건 너무 후련한 일이었다.
이번에는 강세린이 제대로 진흙탕에 처박힌 꼴이 되었다.
물론 배성 그룹도 덩달아 위기에 처하게 되었지만 박 대표가 먼저 챙길 사람은 당연히 강세린일 수 없었다.
...
점심 무렵, 박재현이 회사로 복귀했다.
배성 그룹 최상층 사무실 내의 분위기는 말 그대로 살벌했다.
거대한 통유리창 밖으로는 여전히 번화한 도시의 풍경이 펼쳐졌지만 실내의 공기는 살을 에는 듯 냉랭했다.
“하한가야! 딱 2조 원 증발했어. 이 난장판을 도대체 어떻게 수습할 거야?”
박세홍은 손에 쥔 지팡이로 고가의 바닥을 세게 내리쳤고 둔탁한 소리가 울리자 박재현은 순간 움찔했다.
박세홍의 가슴은 거칠게 오르내렸고 마른 손가락은 책상 위 주식 K 차트를 가리키며 부들부들 떨렸다.
창가에 서 있는 박재현은 등이 꼿꼿했지만 묘하게 외로워 보였다.
박재현은 할아버지를 뒤돌아보지도 않고 그저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당장 기자회견을 열어.”
박 회장의 목소리는 갈라질 정도로 쉬었고 그 속에는 단호함이 묻어 있었다.
“얼른 성은의 신분을 발표해. 성은이 박씨 가문의 맏며느리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주가는 회복될 거야.”
박재현은 갑자기 돌아서서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잘생긴 얼굴에 감정은 거의 드러나지 않았지만 눈동자 깊은 곳에서 미묘한 흔들림과 동요가 있었다.
“할아버지, 그건 세린한테 너무 잔인합니다. 제가 정말 그렇게 하면 그 애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겁니다.”
박재현의 목소리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잔인하다고?”
박세홍은 그 말에 코웃음을 치며 다시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쳤다.
“배성 그룹이 지금 몇조 손해 본 줄 알기나 해? 박씨 가문의 수십 년 쌓아온 명예와 비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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