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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소란이 지속되자 곧 남영 클럽의 매니저가 놀라서 달려 나왔다. 매니저는 종종걸음으로 달려오며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박 대표님, 저, 이게...” 박재현의 눈빛은 칼날처럼 날카롭게 그를 겨눴다. “제 친구가 사라졌어요.” 담담한 어조였지만 거부할 수 없는 위압이 서려 있었다. “당장 손님들 다 내보내 주세요.” “그, 그건...” 매니저는 겁에 질려 다리가 후들거렸다. 전부 내보내면 손해가 얼마나 될까? 하지만 눈앞의 인물은 박재현이다. 그가 발을 한번 구르면 상업계 전체가 흔들린다. 감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허리를 굽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박 대표님. 지금 바로 처리할게요!” 매니저는 땀을 훔치며 겁먹은 얼굴로 고성은이 있는 룸 문을 밀어 열었다. 룸 안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육정호는 술잔을 들고 맞은편의 최민우를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며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손님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잠깐 실례해야겠습니다.” 매니저는 미소를 띠었지만 목소리는 떨렸다. “클럽에 돌발 상황이 생겨 잠시 모두 나가주셔야 합니다...” 그는 숨을 고르고 덧붙였다. “오늘 식사는 무료로 해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즐겁게 식사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자리를 비우라는 말을 들었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육정호를 따라온 몇몇의 얼굴에는 이미 불쾌한 기색이 떠올랐다. 최민우의 잘생긴 얼굴에 어른거리던 옅은 미소는 매니저의 말을 듣자마자 사라졌고 표정은 금세 먹물을 뒤집어쓴 듯 어두워졌다. ‘박재현!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그가 아니면 누가 클럽 전체를 비우라고 명령할 수 있을까?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범인이 누구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상석에 앉아 있던 육정호의 얼굴도 무섭게 굳어졌다. 그는 느긋하게 술잔을 내려놓았고, 잔 바닥이 테이블에 닿으며 약간의 소리가 났다. “하.” 그는 냉소를 흘렸다. 누가 한 짓인지 뻔히 알기도 했고 이런 수법이 참 저열하게 느껴졌다. “박 대표 체면이 참 크네요.” 육정호는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봉준후에게 말했다. “가서 이 클럽 인수해.” 말투는 가벼웠지만 압박감은 강렬했다. “앞으로 우리 우진 그룹 직원 식당으로 쓰자.” 공공연한 도발이자, 박재현을 향한 선전포고였다. 매니저는 심장이 쿵쾅대며 급히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뒤집힐 지경으로 떨렸다. “육 대표님, 진정해 주세요! 그게... 조금 전에 박 대표님이... 이미 이 레스토랑을 배성 그룹에 인수하셨어요...” 공기가 순간 얼어붙었다. 육정호의 눈빛이 차갑고 날카롭게 변했다. 최민우는 미간을 확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죄송합니다, 육 대표님. 제가 나가서 무슨 일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박재현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알아야 했다. 나가기 전, 그는 매니저에게 특별히 당부했다. “이 테이블 손님들은 절대 건드리지 마세요.” 매니저는 연신 알겠다고 대답하며 문을 닫았다. 물잔을 들고 있는 고성은의 손끝은 하얗게 질렸다. ‘박재현... 또 왜 이러는 거야? 손님을 내보내? 레스토랑을 사버려? 밥 먹으러 와서도 그 인간 미친 짓에 방해받아야 하나?’ 그녀는 가슴이 괜히 답답해졌다. 한편, 박재현은 직원 휴게실 문을 거의 걷어차듯 열어젖혔다. 눈앞의 광경에 그의 동공이 급격히 수축했고 심장은 잠시 멎을 뻔했다. 강세린이 웨이터 복장의 낯선 남자에게 목이 졸린 채 벽에 몰려 있었고 남자는 손에 과도를 쥔 채 광기에 찬 눈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사생팬이었다. 박재현의 얼굴이 순간 새하얗게 질렸지만, 이내 치솟는 분노가 그를 삼켜 버렸다. 그는 거의 번개같이 달려들었다. 상대에게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발을 올려 세차게 걷어찼다. 쾅! 남자는 해진 인형처럼 날아가 벽에 부딪힌 뒤 바닥에 미끄러져 떨어졌고 고통에 몸을 웅크렸다. 과도 역시 ‘탕’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강세린은 온몸의 힘이 풀려 주저앉았고 박재현을 보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그녀는 거의 굴러가다시피 그의 품에 안겨 꼭 끌어안은 채 숨도 잇지 못할 만큼 울었다. “흑흑흑... 재현 오빠... 너무 무서웠어요... 저는 이러다가...” 강세린은 겁에 질려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얼굴은 종잇장처럼 새하얘져 일어설 힘조차 없었다. 박재현은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이 생생했고, 그럴수록 가슴이 미어졌다. 그는 조심스레 그녀의 등을 다독이며 한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괜찮아, 세린아. 다 끝났어. 내가 왔잖아.” 그가 한 발만 늦었더라면 그 뒤의 일은 생각하기조차 끔찍했다. 눈동자에 살기가 번뜩인 박재현은 놀라 기절할 뻔한 강세린을 살포시 들어 올렸다. 겁먹은 새끼 고양이처럼 그녀는 그의 품에 바짝 몸을 기대고 얼굴을 가슴팍에 묻었다. 박재현은 그녀를 안은 채 휴게실을 나섰다.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달려오던 최민우와 마주쳤다. 최민우도 강세린의 몰골을 보고 크게 놀랐다. “무슨 일이야?” 박재현은 발걸음도 멈추지 않은 채 얼음 같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세린이가 납치당해서 크게 놀랐어.” 해청의 아름다운 정원 풍경도 그의 시선에 담긴 혐오와 살기를 달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자식, 해청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해. 이 클럽도 더는 필요 없어.” 말을 마치고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강세린을 품에 안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고성은은 룸 문턱에 서 있다가 그 장면을 고스란히 목격했다. 박재현이 강세린을 보물처럼 품에 안고 조심스럽지만 다급하게 자리를 빠져나가는 모습이었다. 그의 표정은 잔뜩 긴장되어 있었고 보호 본능이 절절히 묻어났다.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시큰했다. 씁쓸함과 시샘이 뒤섞였지만, 무엇보다 무력감이 더 컸다. 강세린을 향한 그의 애정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진심처럼 보였다. 클럽을 떠난 뒤, 육정호는 고성은을 새로 지은 초고층 빌딩 앞까지 데려왔다. 고성은은 건물을 구경하느라 고개를 한껏 젖혀 목이 뻣뻣해질 정도였다. “48층...” 그녀가 높은 건물을 보며 중얼거렸다. 육정호는 웃으며 들어가 보라는 손짓을 했다. 엘리베이터는 곧장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문이 열리자 탁 트인 공간과 압도적인 전망이 펼쳐졌다. 해청의 절반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인테리어는 미니멀했지만 곳곳에 은은한 호화로움이 배어 있었다. “선배, 진짜 사치의 끝판왕이네요? 통째로 사버린 거예요? 저는 행사 끝나면 빌린 곳 정리하고 떠나실 줄 알았는데, 이건 좀 과해요!” 육정호는 거대한 통유리창 앞에서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곧게 서 있었다. 굳게 다문 턱선 너머로 그의 시선이 멀리 향했다. 또 다른 위용을 뽐내는 빌딩, 옥상에는 배성 그룹 네 글자가 도드라졌다. 그는 입가에 싸늘한 웃음을 그렸다. “빌려서 쓰는 건 재미없잖아.” 빛이 윤곽을 따라 번지며 뿜어내는 그의 당당한 기운에 고성은의 심장이 한 박자 멎었다. “이건... 도대체 얼마짜리예요? 우진 그룹 데리고 해청에 눌러앉으려는 거예요?” 육정호는 몸을 돌려 깊은 눈동자로 그녀를 마주 보았다. “전장이 여기로 옮겨졌으니...”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또렷했다. “당연히 식량을 비축하고 무기도 갈아놔야지.” 그는 다시 배성 빌딩 쪽을 흘끗 바라보았다. 사냥꾼이 먹잇감을 겨누듯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그래야 적을 단숨에 끝장낼 수 있으니까.” 고성은은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해청 온 지 얼마 됐다고 적이라니요?” “있어. 그리고 꽤 강해.” 그가 단호히 말했다. 배성 그룹, 대표이사 집무실. 박재현은 창가에 서서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웠지만 불은 붙이지 않았다. 그는 미간을 깊게 찌푸린 채 같은 생각을 곱씹고 있었다. ‘육정호... 파랑국에서 온 거물, 우진 그룹의 실권자. 왜 하필 해청에서 글로벌 의료 서밋을 여는 걸까? 게다가 N신의 복귀까지 대대적으로 알리다니. 도대체 무슨 속셈일까?’ 이때 노크 소리가 났고 최민우가 들어왔다. “아직도 육정호 생각 중이야?” “응.” 짧게 대답한 박재현은 담배를 책상 위에 내려두었다. “우진 그룹 본업은 이쪽이 아닌데, 해청에 온 건 너무 노골적이야.” 최민우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 창밖을 함께 내려다봤다. “나 문득 생각난 게 있어.” 최민우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전에 육정호가 무심코 말한 적이 있거든. 해청에 지인이 있다고.” 박재현은 번개처럼 고개를 돌렸다. “지인?”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누군데? N신이랑 관련 있어?” 최민우의 표정도 굳어졌다. “확실하지 않아. 하지만 타이밍이 너무 딱 맞아. N신이 그렇게 오래 자취를 감췄는데, 하필 육정호가 해청에 와서 서밋을 발표하자마자 복귀 소식이 흘러나왔거든...” 말도 안 되지만 충분히 가능한 생각이 박재현의 머리를 세차게 강타했다. 그의 동공이 살짝 수축했다. ‘설마... N신이 해청에 있는 건가?’ 그 생각만으로 그의 가슴에는 파도처럼 거센 충격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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