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송현우의 첫사랑 진아린이 이혼했다.
그녀의 이혼 소송은 송현우가 직접 처리했다.
그는 진아린을 우리의 신혼집에 들였고 그녀가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이유로 내 고양이를 버렸다.
심지어 임신한 나를 차디찬 물속으로 밀어 넣어 그녀의 목걸이를 찾으라 강요했다.
내가 결국 아이를 잃고 병상에 누워있을 때, 그는 진아린의 초음파 사진과 함께 올해 첫 게시글을 올렸다.
[불국사 벚꽃 만개! 그녀가 봄과 함께 찾아왔어.]
나는 조용히 그 글에 ‘좋아요’를 눌렀고 쇠약해진 몸으로 매일 우울감에 잠식되어 갔다.
그는 그런 나를 벌레 보듯 쳐다보며 악랄한 미소를 지었다.
“윤지아, 너 같은 인간은 아이를 잃어도 싸.”
“그렇게 아이가 좋으면, 같이 따라 죽지 그랬어.”
다만 그가 모르는 사실이 있다면, 내가 정말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었다.
진아린이 우리 신혼집으로 이사 오던 날, 그녀의 짐은 마치 자신의 영역임을 선포하듯 거실을 가득 메웠다.
송현우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다정하게 니트 가디건을 걸쳐주었다.
“아린이는 몸이 약해서 찬바람 닿으면 안 돼. 게다가 지금 지낼 곳도 없는데, 우리가 챙겨주는 게 맞지. 그동안 의지할 곳 없이 온갖 설움을 다 겪은 애야.”
어이가 없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송현우, 여긴 우리 신혼집이잖아...”
“윤지아, 언제부터 그렇게 철이 없어졌어? 아린이는 그냥 갈 데가 없어서 잠시 머무는 것뿐이야. 이제 막 이혼해서 한창 보살핌이 필요할 때라고.”
그는 그녀의 손을 소중하게 감싸 쥐고는 천근의 무게가 실린 약속을 내뱉었다.
“아린아, 걱정 마. 내가 있는 한, 아무도 널 내쫓지 못해.”
그는 진아린을 살뜰히 챙겼고 그녀가 내 옷을 갈기갈기 찢고 내가 아끼던 벽 그림을 훼손하는 것마저 묵인했다.
그녀는 내 고양이 보리가 자신을 할퀴었다는 이유로 보리를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 놓았다.
내가 그녀와 실랑이를 벌이자, 내게 돌아온 것은 송현우의 날카로운 손찌검이었다.
하필이면 그의 손바닥은 내 눈가의 흉터 위로 떨어져 그 상처를 더욱 흉측하고 끔찍하게 만들었다.
그 흉터는 3년 전 사고 때 생긴 것이었다.
송현우는 지난 몇 년간 수많은 분쟁을 처리하며 사방에 적을 만들었고 호시탐탐 그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나는 그를 대신해 치명적인 공격을 막아냈고 그 대가로 눈가와 오른손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얻었다.
그날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상처 입은 나보다도 더 목놓아 울었었다.
그는 말했다.
“윤지아, 미안해. 네 꿈을 망가뜨린 건 나야.”
그는 나를 사랑한다고, 나 대신 상처 입고 싶을 지경이라고 했다.
내 과거를 보듬는다며 그 흉터에 닳도록 입 맞추던 그였다.
그런 그의 손이 지금은 그 자리를 때렸다.
송현우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정말로 따귀가 내 뺨에 그렇게 제대로 꽂힐 줄은 몰랐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가 내 얼굴을 만지려던 순간, 진아린의 한마디가 그를 멈춰 세웠다.
“현우야,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나만 아니었다면 너도 지아랑 싸울 일도 없었을 텐데. 지아가 이렇게 날 싫어하니 난 그냥 가는 게 맞는 것 같아...”
송현우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의 눈에 잠시 머물던 죄책감 따위는 금세 사라졌다.
그는 일어서더니 진아린을 감싸 안았다.
“아린아, 지아는 그런 뜻 아니야. 걱정하지 마. 아무도 너보고 나가라고 못 해.”
방금 전 나를 향했던 안쓰러움은 온데간데없었다.
다시 집에 돌아온 송현우는 밤의 서늘한 공기를 휘감고 있었다. 그가 등 뒤에서 나를 끌어안았을 때 옅은 담배 향이 코끝을 스쳤다.
“지아야, 요즘 바빠서 너한테 소홀했어. 이해해 줄 수 있지. 내일 산부인과 검진, 같이 가줄까?”
그는 허리를 숙여 입 맞추려 했고 그의 손은 내 부른 배를 감쌌다. 그 눈빛엔 욕정이 서려 있었다.
나는 그의 키스를 피하며 딴소리를 했다.
“송현우, 나 아직 임신 중이야.”
그는 내가 거절할 줄 몰랐다는 듯이 순간 멈칫했다.
이내 그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패었고 표정엔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윤지아, 또 왜 이래. 진아린은 내 의뢰인일 뿐이야. 우리 사이, 아무것도 없어...”
황급히 해명하는 그의 모습에 가슴 한구석이 시렸다.
“송현우, 나는 진아린이란 이름은 입에 올리지도 않았어.”
남자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그는 결국 모욕감에 불같이 화를 냈다.
“윤지아, 나중에 돌아와 달라고 애원해도 소용없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