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고개를 숙인 로이는 등이 살짝 굽어 있었고 표정을 보아 무덤덤해 보였지만 그 안에서 깊은 무기력함이 느껴졌다.
임유아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몸에서 지난 시간 겪어온 모든 상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그윽한 시선에 로이가 고개를 돌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나한테 묻고 싶은 거지? 세상 무서울 것 없는 보스가 왜 맹수 훈련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는지.”
그녀는 흠칫 놀라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고 싶다면 기꺼이 들어줄게. 말하기 싫어도 괜찮아. 어쨌든 그건 네 잘못이 아니니까.”
어쩌면 그의 경험을 묻는 것보다 로이라는 인간 자체가 그녀는 더 안쓰러웠을지도 모른다.
“아니, 말해줄게.”
로이는 말하면서 방 안으로 들어가 캐비닛을 열더니 도수 높은 위스키를 한 잔 따랐다.
술의 힘을 빌려 그는 강인한 겉모습을 벗고 더듬거리며 말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석 달 후, 외할아버지의 옛 부하가 나를 죽이고 싶기도 하고 고문도 하고 싶었던 모양이야. 그래서 날 맹수 훈련장에 던져버렸어. 다만 모두가 예상치 못한 건 내가 결국 살아남았다는 거야...”
“그 치타가 내 살을 뜯고 피를 마시며 즐겼어. 나는 기회를 틈타 쇠사슬로 그 목을 감아 반격했지.”
로이는 비어버린 잔을 다시 채웠다.
“내 피와 살을 미끼로 삼아 맹수 훈련장 링 위의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어. 몸에 난 상처는 80바늘이나 꿰맸지. 유아야, 다들 내가 미쳤다고 하지만 사실 나도 아팠어. 엄청 아팠다고...”
그는 약간 취기가 올랐는지 멍한 듯 임유아의 손목을 잡았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 때마다 난 너를 생각했어. 네가 나를 기억해줄까, 다시 나타나서 나를 구해줄까 하고.”
그의 말은 짙은 서러움과 고독을 담고 있어 임유아의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자신도 모르는 곳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이토록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그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자신이 퓰리처상을 받지 못했거나, 이혼하고 해외로 떠나지 않았다면 그들 사이의 교점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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