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매니저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여러분, 진정하세요.”
이때 스크린이 켜지더니 강소희의 신체검사 결과지가 나타났다. 나는 깜짝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다.
강소희는 전 세계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없는 RH-혈액형이었다. 재벌가 사람들은 이런 혈액형의 소유자를 찾기 위해 거금을 들였지만 소용없었다.
강소희는 태어날 때부터 신체검사 결과지가 기밀 사항이 되었다. 나는 그녀의 혈액형 때문에 몰려드는 사람이 많을까 봐 이 사실을 비밀에 부쳤다.
그런데 양심 없는 사람들이 그녀를 절벽 끝으로 내몰아서 공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내가 유씨 가문과 이씨 가문에 이득을 준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유진혁과 이태민이 어릴 적부터 강소희와 친하게 지냈기에 나는 언니로서 고마움을 전한 셈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어디에서 굴러왔는지도 모르는 여자 때문에 내 동생을 괴롭히고 있었다.
“하영아, 방법이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
유진혁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진하영을 위로해 주었다.
“이제는 더 이상 걸 수 있는 게 없을 거야. 우리가 너 대신 강소희를 혼내줄게.”
이태민이 진하영을 다독이면서 말했다. 두 사람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골동품,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을 걸었고 대출받았다.
하지만 강소희보다 더 많은 돈을 모으려면 턱도 없이 부족했다.
나는 유진혁과 이태민을 번갈아 보면서 피식 웃었다.
두 사람은 이를 바득바득 갈더니 진하영과 같이 신체 포기 각서를 써서 1200억을 모았다.
“전부 베팅할게요.”
그들은 강소희를 노려보면서 차갑게 말했다. 강소희뿐만 아니라 강씨 가문을 전부 집어삼키고 심씨 가문의 일부 재산에도 손을 댈 생각이었다.
내가 강소희를 위해 키운 개 두 마리가 제 주인을 물 줄 꿈에도 몰랐다.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진혁아, 태민아. 우리의 우정을 봐서라도 그만하면 안 될까? 제발 나를 가만히 내버려둬.”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유진혁과 이태민은 마음이 약해져서 비틀거리는 강소희를 부축하려고 했다.
이때 진하영이 자신의 뺨을 후려갈기더니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소희 언니, 제가 다 잘못했어요. 제가 돈이 없어서 언니의 비싼 스카프를 배상할 수 없었어요. 앞으로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일할 테니까 한 번만 봐주세요. 저한테는 욕하고 손을 대도 상관없지만 진혁 오빠와 태민 오빠를 괴롭히지 마세요.”
흔들렸던 두 남자는 차가운 눈빛으로 강소희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체념한 듯이 한숨을 내쉬더니 카드를 펼치지도 않고 떠나려 했다.
내가 손을 내젓자 김 비서는 조용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강소희가 뒤돌아서서 가려고 할 때 경호원이 그녀를 붙잡았다.
“같은 금액을 베팅하지 않겠다면 패배를 인정해. 조용히 나가면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열 명 정도 되는 경호원들은 이 판이 끝나면 강소희를 붙잡으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신체를 포함한 모든 것을 걸었기에 끝장을 봐야 했다.
딜러가 두 사람의 카드를 중간으로 가져가서 공개하려고 했다. 카드를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던 강소희가 갑자기 위층에 있는 나를 올려다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 배로 베팅하겠어요.”
현장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직원이 다가와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소희 씨는 보유한 재산이 없어요.”
그녀는 책상에 블랙 카드를 던지면서 당당하게 말했다.
“저 돈 있어요. 그러니까 두 배로 베팅하겠다고요.”
유진혁과 이태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블랙 카드를 지그시 쳐다보면서 말했다.
“강소희, 이 카드는 어디에서 난 거야? 분명 가진 것을 전부 걸었잖아.”
진하영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소희 언니, 가짜 카드로 우리를 속이려고 했어요? 이번 게임에 사람 목숨이 달려있다는 걸 잘 알잖아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유진혁과 이태민이 벌떡 일어나더니 스크린을 주시하면서 입을 틀어막았다.
“아니야. 이게 진짜일 리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