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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윤채원은 거실로 돌아온 후 어느새 곤히 자고 있는 딸을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아이가 강아지 그림을 손에 꼭 쥔 채 놓지 않는 것을 본 그녀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 동물보호센터라도 가봐야 하나...’ ... 배유현은 휴대폰을 소파에 던져버린 후 수건으로 아무렇게나 머리의 물기를 닦아냈다. “누구야? 이 강아지 주인? 목소리가 엄청 예쁜 걸 보면 얼굴로 예쁠 게 분명한데, 혹시 남자 친구는 있대?” 배유진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내 일에 신경 꺼.” 배유현은 그녀의 관심이 귀찮은지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누나가 돼서 어떻게 신경을 꺼?” “그런데 목소리가 예쁘면 얼굴도 예쁠 거라는 결론은 대체 어떻게 나는 거야? 누나가 뭐 초능력자라도 돼? 차라리 회사 말고 점집이나 차리지 그래?” 배유현이 비꼬며 말했다. “예쁘구나?” 배유진의 눈빛이 한층 더 밝아졌다. “안 예뻐.” 배유현은 대충 대답해 주고는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문 닫고 나가.” “네 반응 보니까 예쁜 게 맞는데 뭐.” 배유진은 동생의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예 배유현의 곁에 찰싹 달라붙어 더 끈질기게 물었다. “채원이면 이름도 예쁘네. 혹시 사진 있어? 누나한테 보여줘 봐.” “누나가 엄마도 아니고 갑자기 왜 이래?” 배유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순순히 물러설 것 같지 않은 배유진의 눈빛에 결국 원하는 대로 답변해 주었다. “그 여자 딸이 나한테 진료받은 적 있어.” “뭐야, 유부녀야? 나는 당연히 네가 관심 있는 여자인 줄 알았는데...” 배유진은 김이 샌 듯 입을 삐죽였다. 그러다 부모님의 당부를 떠올리고 다시금 입을 열었다. “도씨 가문의 딸은 만나봤어?” “응.” 배유현은 알아서 보라는 듯 휴대폰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톡도 추가했고 대화도 나눴어. 그러니까 엄마한테는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했다고 전해줘.” 배유진은 휴대폰을 건네받은 후 곧장 도시연과의 대화방으로 들어갔다. [도시연: 오빠, 오늘 바빠? 연주회 티켓이 두 장 생겼는데 나랑 같이 갈래?] [배유현: 바빠.] [도시연: 오빠, 친구가 심장이 조금 뻐근하다고 하는데 상담 좀 해줄 수 있어?] [배유현: 외래 예약하고 병원으로 오라고 해.] [도시연: 오빠, 이번 주 토요일은 출근 안 한다며? 나랑 같이 영화 보러 가자.] [배유현: 당직이야.] 배유진은 쌀쌀맞기 그지없는 동생의 답변에 머리가 다 지끈해 났다. “도시연이 마음에 안 들어서 이러는 거야? 그러면 병원장님 딸인 오수빈은 어때? 아니면 네가 원하는 이상형이 뭔지 확실하게 얘기해 봐.” 배유진은 차라리 동생의 이상형을 듣고 그에 딱 맞는 여자를 찾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유현은 그녀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조건을 얘기했다. “나는 가슴이 크고 허리는 잘록한 여자가 좋아. 그리고 피부는 하얘야 하고 다리는 길어야 해. 참, 허리가 잘록해야 한다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빼빼 마른 건 싫어. 지나치게 화려하게 생긴 것도 싫고. 키는 168cm면 딱 괜찮겠네.” 배유진은 저도 모르게 떠오르는 누군가의 얼굴에 동생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성다희...?” 예상은 했지만 배유현은 성다희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그녀를 무섭게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그녀를 내쫓았다. “나가.” 배유진은 배유현보다 나이가 훨씬 많고 현재는 배진 그룹에서 대표직까지 맡고 있지만 늘 저도 모르게 동생의 눈빛에 움찔하고야 만다. 배유현은 배씨 가문 자식들 중 유일하게 배갑수의 성격을 빼닮은 자식이었으니까. 만약 배유현이 의학이 아닌 회사를 물려받겠다고 했으면 배도겸의 자리는 진작 배유현에게로 넘어가 있었을 것이다. 배유진은 방에서 나오자마자 박영란의 손에 이끌려 옆방으로 들어갔다. 박영란은 아들의 이상형을 전해 듣더니 바로 미간부터 찌푸렸다. “여자 친구를 찾겠다는 거야 아니면 모델을 찾겠다는 거야? 일단 네 아빠한테는 아무것도 얘기하지 마. 고리타분한 영감이라 뭐라고 한 소리 할 게 뻔하니까.” “엄마, 혹시 유현이가 대학생 때 연애했던 여자애 기억하세요?” 배유진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당연히 기억하지. 그 여자애 때문에 유현이가 소영이를 해외로 보내버리기까지 했잖아.” 박영란은 그때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건 배소영이 잘못한 게 맞다는 것도 말이다. 사실 가능만 하다면 박영란은 그 여자애라도 다시 데려와 배유현에게 붙여주고 싶었다. 그래도 연애까지 했으니 새로운 여자들보다는 감정이 있을 테니까. 배유진은 박영란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부 다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래서 배유현이 아까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차마 얘기해줄 수 없었다. 7년 전, 배유현이 유학을 가고 얼마 안 됐을 무렵 갑자기 집에 택배 하나가 도착했다. 택배 상자가 열린 건 6개월 정도가 지난 후였다. 안에는 두 사람이 연애했을 때 주고받았던 것들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배유진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택배를 확인한 동생의 얼굴이 얼마나 어두웠는지. ... 일주일은 빠르게 흘렀고 윤채원은 오늘 송주시에서 열리는 패션 원단 전시회에 참석했다. 소재 모으기에 여념이 없던 그녀의 옆으로 서유림이 다가오더니 귓속말을 전했다. “도 팀장님 연애한다는 소식 들었어요? 듣기로 남자 쪽 집안이 어마어마하대요.” 윤채원은 평소 부자들 얘기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집안이 어마어마하다고 하니 저도 모르게 배씨 가문을 떠올렸다. 배씨 가문은 어디서든 인정받는 대가문이었으니까. 윤채원은 도시연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그녀의 사생활까지 뭐라 평가할 생각은 없었다. “왜 내 주변에는 대표님이랑 연애하는 사람이 없는 건지. 있으면 매일매일 밥 사달라고 할 텐데.” 서유림은 입을 삐죽이고는 윤채원의 팔을 흔들었다. “채원 씨가 한번 힘내 봐요. 믿을 건 채원 씨밖에 없어요.” 윤채원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내가 애 엄마인 건 잊은 건 아니죠?” 윤채원은 자기 스스로가 예쁘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살을 빼고 난 뒤에 동료들로부터 외모에 관한 칭찬을 들었을 때도, 길거리를 거닐 때 낯선 사람에게 은근한 눈빛을 받을 때도 그녀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어쩌면 뚱뚱했을 때 너무나도 많은 조롱과 비난을 받아 자존감과 자신감이 바닥까지 떨어진 탓일 지도 모른다. “애 엄마가 뭐 어때서요? 요즘 같은 세상에는 예쁘면 다예요.” 서유림은 그렇게 말하며 윤채원의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내가 남자면 바로 집으로 보쌈해 갈 텐데. 허리는 또 왜 이렇게 얇은 거예요? 평소에 따로 하는 운동 같은 거 있어요?” 윤채원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을 내렸다. “잡담은 여기까지만 하고 다시 카메라 들어요.” 그때 그녀의 가방 속에서 휴대폰 진동음이 울렸다. 하지만 사람이 워낙 많기도 하고 윤채원은 또 두 손으로 카메라를 들고 있어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전시회를 다 참관한 후 그녀는 서유림과 함께 근처 우동집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그제야 부재중 전화가 찍힌 것을 발견했다. 배유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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