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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3일 후. 오늘은 웨딩드레스를 고르는 날이라 신주은은 홀로 드레스 샵으로 향했다. 그런데 시착을 완료하고 가게에서 나와 주차된 차량 쪽으로 가려던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나타나 약물이 섞인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그대로 차에 실었다. 의식을 잃은 채로 얼마나 있었을까, 신주은은 퀴퀴한 곰팡이 냄새에 다시금 눈을 떴다. 그런데 아무리 눈을 깜빡여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천으로 눈이 가려진 상태고 두 손도 의자에 꽉 묶여있는 상태였다. 찰싹! 갑작스럽게 날아든 채찍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등을 구부렸다. 너무나도 아팠다. 지금 당장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손목을 아무리 비틀어봐도 더 조이기만 할 뿐 느슨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윽...” “그러게 왜 그분을 건드려서는.” 채찍을 휘두르는 남자는 이 말만 남긴 채 또다시 사정없이 채찍을 휘둘렀다. 찰싹! 찰싹! 찰싹! 계속해서 휘둘려지는 채찍과 함께 신주은의 피부는 거칠게 벗겨지기 시작했다. 신주은은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애꿎은 입술을 피가 날 듯이 꽉 깨물었다. ‘대체 누구지? 누가 이런 짓을 시킨 거지?’ 남자의 움직임은 그녀의 의식이 거의 모호해질 때쯤에야 드디어 멈췄다. 잠시간의 침묵 후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남자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련님, 분부하신 대로 정확히 아흔아홉 번 때렸습니다.” 그러자 전화기 너머에서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고했어. 이제 병원으로 데려가.” 신주은은 순간 머리를 둔기로 세게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문재하였다. 문재하가 사람을 시켜 그녀에게 채찍을 휘두르도록 한 것이다. ‘내가 실수로 신하린을 한 대 때린 것 때문에 사람을 시켜서 내 등을 아흔아홉 번이나 때리게 해...?’ 극심한 고통과 지독한 절망감에 그녀는 끝내 기절하고야 말았다. 병원. 신주은은 병실 침대에 엎드린 채 등 쪽에서 퍼지는 따가운 통증을 느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때 살짝 열린 병실 문 틈으로 간호사들이 하는 얘기가 들려왔다. “301호에 있는 보호자 봤어? 환자 남자친구인 것 같은데 어쩜 저렇게 다정해?” “내 눈에는 호들갑 떠는 거로밖에 안 보이던데? 그냥 채찍에 한 대 맞은 것뿐인데 누가 보면 교통사고라도 난 줄 알겠어.” “에이, 그래도 무관심한 것보다는 낫지. 304호 환자 봐봐. 등이 너덜너덜해졌는데 아무도 보러 안 오잖아.” “그렇긴 해.” 신주은은 간호사들이 지나간 후 링거를 뽑아 던지고 끙끙대며 복도로 향했다. 그리고 힘겹게 301호 VIP 병실 앞에 도착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문재하와 신하린이 보였다. 신하린은 마치 공주님처럼 문재하의 극진한 케어를 받고 있었고 문재하는 그녀가 입가에 물을 묻힌 모습도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물기를 닦아주었다. 신주은은 그 광경을 보며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짝사랑은 이제 안 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왜 아직도 심장이 이렇게도 아픈지, 왜 살점이 다 뜯겨 나가는 것처럼 고통스러운지 그녀는 알 수가 없었다. ‘울지 마. 신주은, 울지 마.’ 신주은은 입술을 꽉 깨물며 스스로에게 이렇게 되뇌었다. 아프다고 아무리 눈물을 흘려도 그녀를 위해 마음 아파 해주는 사람은 없으니까. 퇴원하는 날, 신주은이 병원 밖으로 나서자마자 익숙한 발걸음이 그녀 옆으로 다가왔다. 문재하가 다시 돌아왔다.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그러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올 때쯤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고 신주은은 이에 시선을 거두며 전화를 받았다. “내일 하린이 생일인 거 알지?” 전화를 건 사람은 신성철이었다. “하린이가 너랑 꼭 화해하고 싶다고 하니까 내일 와.” “싫어.” “신주은! 어차피 이것도 마지막이야. 결혼하고 나면 더 이상 왕래도 없을 텐데 그 전에 하린이랑...” 신주은은 전화를 끊은 후 고개를 들어 문재하를 바라보았다. “내일 신하린 생일이라는데 문재하 씨는 내가 그 파티에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재하는 퉁명스러운 얼굴로 잠시 침묵하더니 별다른 감정이 담기지 않는 목소리로 답했다. “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그럼 참석하도록 하죠.” 신주은은 그렇게 말하며 차에 올라탔다. 다음날. 신하린의 생일 파티는 신씨 가문 본가의 정원에서 열렸다.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신주은까지 도착하고 나니 파티가 시작됐고 곧바로 조명이 한곳에 집중되며 핑크색 드레스를 입은 신하린이 나타났다. “언니!” 신하린은 활짝 웃으며 신주은의 팔짱을 끼려는 듯 달려들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 손길은 거부당했고 신하린은 잠시 멋쩍어했지만 금세 다시 웃음을 지으며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신주은은 정원 가득 메워진 신하린의 선물을 바라보았다. 한정판 에르메스 가방과 티파니앤코 반지, 그리고 포르쉐 차 키까지, 없는 게 없었다. “우리 하린이 때문에 내가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린이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입니다. 허허허.” 신성철은 신하린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싸며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신주은은 그런 그를 보며 아주 오래전 신성철이 자신과 어머니의 곁에 서 있었을 때를 떠올렸다. 당시의 그녀는 흰색 원피스를 입은 채 신성철에게 안겨있었고 어머니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따뜻하고 화목한 가정이었는데 그 모든 것들이 신하린 모녀 때문에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케이크를 자른 후 사람들이 저마다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던 그때 신하린의 친구들이 다가왔다. “하린아, 아까 보니까 성한 그룹의 대표도 오고 라인 호텔의 후계자도 왔던데 아버님 혹시 너 짝 찾아주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아니야. 하린이는 이미 강씨 가문의 후계자랑 혼담이 결정되어 있잖아.” 신하린은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신주은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나 그 집 후계자랑 결혼 안 해.” “역시 그렇지? 식물인간이라니, 말이 안 되잖아.” 신하린의 절친인 서다경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그러면 기왕 이렇게 남자들이 다 모인 김에 네 이상형이 어떻게 되는지 한번 얘기해 보는 거 어때? 그래야 남자들이 참고할 거 아니야.” 친구들의 말에 신하린은 볼을 빨갛게 물들이며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었다. “일단 첫 번째는 나를 이 세상 누구보다 사랑해줬으면 좋겠어. 내 이름을 가슴에 새길 수 있을 만큼. 그리고 두 번째는 강인한 사람이어야 해. 망월 절벽에 백 년에 한 번만 피는 장미가 있다던데 그걸 꼭 따다 줬으면 좋겠어. 마지막으로는...” 그녀가 마지막 조건을 얘기하려던 그때 갑자기 문이 활짝 열리며 문재하의 비서가 안으로 들어왔다. “또 뵙습니다, 아가씨. 이건 저희 도련님께서 보내신 생일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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