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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은혜를 원수로

2층에서 듣고 있던 임가윤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여동생이라... 7년의 결혼 생활 동안 수많은 밤낮을 함께 했어도 결국 주어진 거라고는 여동생이라는 호칭뿐이었다. 이미 마음을 정리했음에도 심장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아래층 거실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심은숙은 황당한 얼굴로 문태오와 옆에 있는 박소혜를 번갈아 보았다. 박소혜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체념한 얼굴에는 곤혹과 죄책감이 가득했다. 문태오를 손가락질하는 심은숙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가슴을 들썩거렸다. “너희 둘! 도대체 언제부터 사귀었던 거니? 내 딸이 우스워? 결혼이든 파혼이든 애들 장난 같아? 지금은 또 박소혜랑 결혼하고 싶다고?” 이내 박소혜를 가리키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네가 귀국해서 우리 집에 있는 동안 홀대라도 받았니? 어떻게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쳐? 가윤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너를 친자매처럼 여기고 인프라며 인맥이며 아낌없이 소개해줬는데 감히 은혜를 원수로 갚아? 양심은 어디다 팔아먹은 거니? 공부를 했다는 사람이 왜 이래?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도 몰라?” 임가윤은 눈살을 찌푸렸다. 태어나서 이렇게 화가 나고 이성을 잃은 어머니의 모습은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기억 속에 어머니는 언제나 우아하고 단정한 부잣집 사모님이었다. 누구에게든 예의를 지켰고, 말투는 항상 부드러웠으며 얼굴을 붉히는 일조차 드물었다. 더욱이 막말과는 거리가 먼 분이었다. 이건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는 증거였다. 임가윤이 뒤에 서 있던 도우미에게 말했다. “아래로 내려가시죠.” 거실. 박소혜의 눈시울이 어느덧 빨개졌다. 그녀는 목이 멘 듯 심은숙을 바라보며 울먹였다. “이모, 죄송해요. 가윤의 혼사를 망칠 생각은 정말 없었어요. 하지만 감정이라는 게 마음처럼 되지 않잖아요.” 문태오가 즉시 박소혜를 막아섰다. “어머님, 소혜 탓이 아니에요. 제가 먼저 마음이 바뀐 거라 소혜는 아무 잘못 없어요.” 심은숙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내 묵묵부답하는 남편을 뒤돌아보았다. “당신! 뭐라도 한마디 좀 해 봐. 이 집안의 가장으로서 도대체 어떻게 할 거냐고!” 임동훈은 머쓱한 미소를 지었고, 딱히 분노하는 기색은 없었다. 곧이어 목소리를 가다듬고 아내를 달랬다. “여보, 일단 진정해. 우리 말로 풀자고.” 그리고 감탄 어린 눈빛으로 문태오를 바라보았다. “태오야, 예상치 못한 일이긴 하지만 젊은 사람은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운 법이지. 인연이라는 건 억지로 맺는다고 되는 게 아니야. 단지 가윤이와 함께할 운명이 아니었고, 소혜와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도 하나의 인연이지 않겠니?” 심은숙은 두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죽일 듯이 임동훈을 노려보며 실망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당신! 그게 지금 할 소리야? 딸이 파혼당한 것도 모자라 약혼자까지 빼앗겼는데 아버지라는 사람이 시비를 따지기는커녕 운명 타령이나 하고 있어? 제정신이야?” 애들 앞에서 한 소리 듣자 임동훈의 표정이 별안간 어두웠다. “말조심해. 어디 위아래도 없이!” 이내 근엄한 모습으로 으름장을 놓았다. “본인들 일은 알아서 하게 놔둬. 우리 나이에 무슨 참견이야. 멀쩡한 커플을 갈라놓고 온 집안 망신 주고 나서야 속이 후련해?” 곧이어 문태오와 박소혜를 바라보며 한결 누그러진 말투로 입을 열었다. “얘들아,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 남녀 사이는 서로 사랑해야 이뤄지는 거야. 아저씨는 이해해.” 심은숙은 임동훈을 손가락질만 할 뿐,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왔다. 이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휠체어에 앉은 임가윤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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