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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너랑 상관없잖아

“엄마.” 딸을 보자 심은숙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임가윤은 어머니를 안심시키듯 담담히 웃어 보였다. “진정하세요. 이런 사람한텐 화내는 것조차 아깝잖아요.” 문태오는 휠체어에 앉은 임가윤을 발견하고 그제야 무언가를 떠올린 듯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발목은 괜찮아?” 임가윤이 고개를 돌리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내가 죽어서 한 줌의 재가 된다 해도 그쪽이랑 아무 상관 없잖아?” 그녀의 예상대로 박소혜에게 온통 정신이 팔려 자신이 왜 다쳤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문태오는 눈살을 찌푸렸다. “미안해, 네가 화난 건 이해하지만 소혜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이야. 날 용서해주길 바랄게.” 불이 났던 어젯밤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조차도 용서를 바라다니? 임가윤의 심장이 욱신거렸다. 통증이 극에 달하면 오히려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법이다. 이내 피식 비웃었다. “결혼을 앞두고 파혼하는 남자가 뭐 얼마나 잘났겠어? 문태오, 잘 들어. 지금 당장 무릎 꿇고 매달려도 너랑 결혼 같은 거 안 해!” 문태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윽한 눈동자는 임가윤한테서 떠나지 않았다. 그녀의 반응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울고불고하며 따지러 들거나 심지어 따귀라도 때릴 줄 알았다. 이게 바로 스무 살의 임가윤이 보여줘야 할 솔직하고 거침없는 모습이지 않은가? 심지어 대응책까지 생각해 두었지만 정작 우려했던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수수방관하듯 멀찍이 지켜보는 임가윤 때문에 괜히 불안하기까지 했다. ‘설마... 같이 환생했나?’ 윤태오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임가윤을 바라보는 눈빛이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이때,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를 눈치챈 박소혜가 능청스럽게 앞을 가로막으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가윤아, 미안해. 진짜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었어. 너 상처 주려는 마음은 없었어. 어젯밤 태오가 나랑 함께 있으면서 꿈속에서도 내 이름을 부르는데 어떻게 거절하겠니? 날 용서해줄래? 우리 예전처럼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는 거잖아, 맞지?” 임가윤은 눈을 흘기며 고개를 홱 돌렸다. 굳은 얼굴로 서 있는 박소혜는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채 세상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인정사정없는 딸을 보며 임동훈이 못마땅한 눈빛으로 버럭 외쳤다. “손님 도착한 지가 언제인데 이제야 내려와? 예의는 밥 말아 먹었니?” 안 그래도 화를 참고 있던 심은숙이 결국 폭발했다. “가윤이도 연기 마셔서 힘들고 발목도 다쳤어. 정작 아버지라는 사람은 딸이 돌아와서 지금까지 거들떠보지도 않고. 관심이 없는 건 둘째치고 대체 무슨 자격으로 예의를 들먹여?” “아줌마!” 이내 큰소리로 외쳤다. 집사 안희정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네, 사모님.” 심은숙은 싸늘한 눈빛으로 박소혜를 바라보았다. “소혜가 우리 집에 오래 머물 생각은 없는 것 같네요. 이미 가정을 꾸린 이상, 굳이 여기에 붙잡아 둘 이유도 없겠죠. 방에 있는 물건들 전부 정리하세요. 하나도 남기지 말고.” 박소혜를 애지중지 아낀 만큼 명품 의류, 한정판 가방, 고급 향수, 값비싼 액세서리까지 그녀와 어울릴 법한 물건이라면 서슴없이 선물해줬다. 심지어 딸이 결혼하고 나면 박소혜에게도 좋은 혼처를 알아봐 줄 생각이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도우미가 급히 대답하고 곧장 2층으로 올라갔다. 임동훈이 다급히 나서서 제지했다. “당신! 이제 좀 그만해. 이미 선물해준 물건을 치우라는 게 웬 말이야?” 심은숙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안희정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줌마가 직접 사람들 데리고 올라가요. 오늘 누가 감히 내 말에 토 다는지 두고 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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