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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그 사람이었어?

[완료! 네 사진 사촌 오빠한테 보냈더니 내일 시간 된대. 신분증 챙겨서 오전 9시에 구청 앞에서 만나재.] [워낙 답답한 거 못 참는 사람이라, 하하하!] 임가윤의 눈썹이 까딱했다. ‘속전속결형인가? 바라던 바네.’ 질질 끄는 건 그녀도 원치 않았다. 다음 날, 아침 햇살이 희미하게 비쳤다. 구청 앞에 서 있는 임가윤의 손에 신분증이 보였다. 그녀는 오늘 흰색 원피스를 입고 위에 베이지색 니트 카디건을 걸쳤다. 긴 머리를 느슨하게 묶어 가녀린 목선이 더욱 부각되었다. 강보라가 말한 대로 사촌 오빠라는 사람은 시간을 1초라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9시 정각, 훤칠한 실루엣이 햇빛을 등지고 다가왔다. 키가 매우 컸고, 눈대중으로 188cm는 넘어 보였다. 심플한 검은색 티셔츠에 작업용 카고 바지, 그 차림만으로도 넓은 어깨와 탄탄한 허리 라인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길게 뻗은 다리는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자 임가윤은 마침내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 사람이었다니? 이틀 전, 짙은 연기 속에서 그녀를 구해줬던 소방관! 두꺼운 방화복을 벗고 있어서일까, 남자의 윤곽이 더욱 선명하고 뚜렷했다. 차가운 인상이 감도는 각진 턱선, 굳게 다문 입술, 그리고 칠흑처럼 새까만 눈동자는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다.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남성미와 수컷 특유의 압도적인 존재감에 임가윤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남자는 그녀의 앞에 멈춰 섰다. 키가 워낙 커서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질 정도였다. “임가윤?” 외모뿐만 아니라 목소리까지 완벽했다. 허스키한 중저음이 마치 전류처럼 고막을 파고들었다. 임가윤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혹시 강보라 사촌 오빠...?” 남자는 고개를 까딱했다. 그녀의 얼굴을 힐긋 쳐다보다가 곧 시선을 돌렸고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서지강.” 임가윤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강보라가 이런 엄청난 사촌 오빠를 숨기고 있었다니. 이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잠시 후 그를 올려다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그날 밤... 구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서지강이 아니었다면 화재 현장에서 목숨을 잃고 환생할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게 내 일이라.” 짧고 간결한 대답에 임가윤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강보라가 얘기한 성격이 까칠하고 차갑다는 게 이런 뜻이었구나. “신분증 챙겼어?” 서지강이 물었다. “네.” 임가윤은 무의식적으로 신분증을 그에게 건넸다. 서지강이 받아들고 뒤돌아섰다. “가자.” “저, 지강 씨?” 임가윤이 그를 불러 세웠다. “우리... 너무 성급한 거 아니에요?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은데...” 서지강은 대꾸할 가치라도 없다는 듯 심드렁하게 말했다. “보라한테 다 들었어. 어차피 시간 낭비에 불과해.” 임가윤은 할 말을 잃었다. 강보라는 워낙 입이 가벼워서 그녀의 얘기를 일찌감치 몽땅 털어놨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혼인신고 전에 몇 가지는 분명히 해두고 싶어요.” 서지강은 눈썹을 까딱하며 말을 이어보라는 듯 눈짓했다. “첫째, 우리는 계약 결혼이죠. 각자 목적이 있어서 하는 거니까 서로의 사생활에 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 “둘째, 결혼 후에도 재산은 따로 관리해요. 지강 씨 돈에 눈독 들이는 일은 없을 테니까 내 물건도 탐내지 마세요.” 남자는 임가윤을 힐긋 쳐다보았다. “응.” “셋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이죠. 저는 거짓말하는 사람을 용납 못 해요. 어떤 형태든, 단 한 번만이라도 즉시 결혼 생활을 청산하는 거예요. 가능하겠어요?” 거짓말은 그녀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다. 서지강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이더니 느긋하던 표정도 조금은 진지하게 바뀌었다. 이내 그녀를 몇 초간 뚫어지게 바라봤다. 임가윤은 전혀 물러서지 않고 그의 시선을 똑바로 받아냈다. 오랜 침묵 끝에 드디어 대답이 들려왔다. “그래.” “저는 여기까지. 지강 씨의 조건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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